▲ <내겐 여전히 불편한 하나님> / 데이비드 T. 램 지음 / 최정숙 옮김 / IVP 펴냄 / 255쪽 / 1만 2000원

2003년에 내(서평자)가 쓴 책에서 하나님을 지칭하여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멀리하기엔 너무나 사랑스러운 당신'이라고 불렀다. 나에게 하나님은 그렇다. 미국 비블리칼신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치는 데이비드 램 교수도 그런 입장을 고수하는 것 같다.

신약의 예수도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동일시하였고 매일 묵상하고 이해하고 삶을 살았던 그 책도 우리가 아는 구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구분하여 전자를 오해하고 매도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데이비드 램은 6가지 면에서 현대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구약의 하나님을 변호하기로 나섰다.

1) 진노의 하나님?

하나님은 아무 때나 울화가 치밀어 화를 퍼붓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코가 크신(혹은 길다) 분'이다. 코가 크다니? 코가 크다는 말은 진노를 더디 한다는 말이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이 화를 내실 만한 상황인데도 무던히 참고 인내하는 모습들이 잘 나타난다. 게다가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인자와 진실하신 분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정의라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온 것이며 불의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애굽과 가나안과 아수르와 바벨론에 대해 참을 만큼 참으셨다.

2) 성차별주의자 하나님?

하와가 세상타락의 모든 '죄 짐' 맡음을 비통해하기에 앞서서 태초에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사람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음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은 남성의 보조자가 아니라, 도우는 자(helper)와 완결자로 창조되었다. 생육하고 번성하려면 남자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브 타락의 현장에서도 아담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오히려 아담은 금지 명령을 받은 자요, 사람을 대표하는 자요, 한 여인의 지아비였으나, 유혹의 순간이 방관자요 계명을 어기는 데 있어서 수동적 역할을 하였을 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뱀과 아담은 저주를 받았지만, 여인은 저주를 받지 않고 오히려 구원의 비밀을 받게 되었다. 여인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오며 메시아가 오리라!

3) 인종차별주의자 하나님?

노아 사건이 흑인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구절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사용되었을 뿐이다. 사실 출애굽의 하나님은 노예해방의 하나님이며 미국의 흑인 노예들도 발견한 신학적 메시지다. 이스라엘의 가나안에 대한 태도는 징벌적 측면과 영토적 측면과 종교적 측면으로 고루 갖춘 복잡한 문제다. (비록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스라엘은 전직 노예였다는 점에서 이웃을 사랑해야 했다. 또한 전체적으로 볼 때, 구약에 사용된 전쟁 용어와 전략상 유사성은 있으나, 고대 제국들의 정복과 식민 정책과 이스라엘의 이주 정책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제국주의적 정책의 희생자가 된다.

4) 폭력적인 하나님?

구약에 폭력이 난무하기에 읽으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엘리사와 곰 이야기가 그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놀렸다는 이유로 들짐승의 습격을 받는 저주가 임하다니! 이 사건은 폭력적인 아이들이 아닌 청년들(42명 이상)은 이스라엘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약점)를 조롱하였고 그들이 보여 주었던 명시적 치명적인 위협은 엘리사가 암콤 두 마리를 불러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정당한 반응을 불러왔을 것이다. 엘리사는 일대 백으로 악당들을 물리치는 무림의 '맨주먹의' 고수가 아니다!

5) 율법주의자 하나님?

하나님이 실행하기도 어려운 복잡한 규정을 많이 만들어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편견을 버리자. 하나님의 첫 두 계명은 너무나 즐거운 계명이었다. 첫 번째는 '행복한' 성관계와 '행복한' 식사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배가 부르게 맘대로 먹는 규례를 주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금지 계명은 풍족한 자유와 식도락을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었으며, 책임성을 갖게 하는 것이었으나, 오히려 뱀의 질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규례는 금지하는 것, 방해하는 것, 괴롭히는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후대에 이르러 주어진 다양한 법은 그 법 정신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구약의 법은 고대 제국의 통치자와 지배 계급의 유익을 위한 가혹하고 차별적이고 이기적인 법이 아니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구약법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안식일의 규정은 노동하는 인간을 위한 것이며 이것은 인간을 위하여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감기에는 일을 하기 위한 감기약이 아니라, 무조건 쉬면서 자기를 돌보는 게 약이듯이.

6) 완고한 하나님?

하나님은 물러설 줄 모르시는 자기 입장만 고수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항상 물러서시고 변화하시고 돌이키신다. 하나님은 인간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유연성을 발휘하신다. 그러나 그가 인간을 위하여 선을 행하시는 것이나 불의를 참지 못하신다는 점에서 호락호락하시는 분은 아니다. 오히려 구약에서 사람들은 이기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이 바뀌지 않으시거나 바뀌기를 바랄 때가 더 많다.

7) 멀리 있는 하나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하나님은 크리스마스 때만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임마누엘)'이 아니다. 우리는 위기와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지만, 그와 반대의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 문제가 우리의 느낌에 좌우하는가?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는 불평하거나 항의하거나 의심하면 안 되는가?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은 멀리서 지켜만 보시는가? 하나님은 (공간적 영역을 초월하여)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나, 우리는 (상황에 따라) 하나님과의 친밀감이나 거리감을 느낄 뿐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며 동행하시며 함께 거하신다. 그가 말씀하지 않으시며 나를 위하여 행동을 하지 않으실 때, 혹은 가시적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좀 심드렁했다. 아, 소책자인데 뭔 선한 것이 있으랴? 구약의 하나님을 변호하는 책인데 뭔 신나는 내용이 있으랴? 그런데 어라, 책을 잠깐 살펴보니, 이 책을 정녕 살 수밖에 없는 마력 같은 것이 그 속에 있었다. 그러므로 구입했노라, 읽었노라, 서평을 썼노라.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추천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