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현 목사가 9월 18일로 6개월간의 자숙을 마치고 9월 21일 새벽기도회서 인사를, 9월 22일 주일예배에서는 설교를 함으로 설교 사역에 공식 복귀했습니다. 이에 <뉴스앤조이> 독자들께 오정현 목사의 복귀 주일 설교 전문을 소개합니다. 설교는 8시 예배 설교 녹취를 기준으로 작성했고, 표현이 다른 경우 겹치는 부분 중 일부만 인터넷 설교로 정리했습니다.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내용은 같습니다. -편집자 주

오정현 목사 2013년 9월 22일 주일 설교
제목 : 사랑으로 발을 씻기는 것이 복 되도다
본문 : 요한복음 13:1~7, 15~17

6개월 만에 강단에 섰습니다. 미천한 종은 십자가 뒤에 가려 주시고 생명의 영, 부활의 영 주님께서 이 시간 임재하셔서 우리의 속사람에게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성만찬을 앞에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진실해야 합니다. 제가 지난 6개월간 우리 온 성도들 큰 아픔 드린 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제 마음에 있는 내용은 주보 사랑의 목장에 올려놓았습니다. 읽어 보시고 제가 더욱 겸손한 종이 되게 하시고 더욱 내실을 기하여 제자 훈련의 본질을 회복하고 또 사랑의교회 고통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토대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제 능력으로는 설교할 수 없습니다. 보혈이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길 바랍니다. 또 저뿐 아니라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보혈이 덮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이 시간 그리스도의 보혈이 온 예배를 덮어 주시옵소서. 본당 제천~ 다 덮어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으로 교회와 성도를 새롭게 해 달라는 마음으로. 우리를 씻어 달라고 덮어 달라고 보혈의 능력이 우리의 마음에 강수처럼 임하게 해 달라고 찬양합시다.

('보혈을 지나' 찬송)

사랑의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보혈, 사랑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피 묻은 그리스도의 보혈이 오늘 온 교회를 덮어 주시고, 모든 상처 난 것들 모든 힘든 것들을 보혈의 능력으로 치유받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복 되도다'는 제목으로 성찬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한다고요? 복 되도다.

이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복이 아니에요. 이 복은 하나님나라의 신령한 복이에요. 그렇잖아요. 우리 성도들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자격이 있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아니잖아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신령한 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본문의 배경은 세족식 사건인데요. 요한복음 13장 내용은 조금 독특합니다. 공관복음에는 이 내용이 나오지 않고 요한복음에만 나옵니다. 왜 여기만 나았을까 신학자들의 많은 견해가 있지만. 요한복음의 신학적 독특성이 있습니다. 뭐냐면 요한복음은 공관복음보다 25년 뒤에 길게는 30년 이후에 쓰였어요. 가능한 한 반복을 피하고 가능하면 복음의 깊은 신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 신성을 말씀을 통해 선포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세족식에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신성을 확인하면서 썼습니다.

상황은 바른 상황이 아니었어요. 내일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져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신성이 있지만 예수님도 인간이셨기 때문에 얼마나 답답하셨겠어요. 인생을 살다 보면 기쁨과 평안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비장한 상황이에요. 어떤 인간적으로 우울할 수 있는 상황. 더군다나 예수님을 호산나 찬양하던 사람들이 돌아서서 예수님에게 삿대질하고 예수님 막 어렵게 하는 상황이었잖아요.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어요.

더구나 제자들은 지금 3년 동안이나 훈련을 받았지만 마음은 다른 데 가 있었어요. 섬기는 자가 크다고 그렇게 말씀하시고 섬기는 자가 크다고 말씀했는데도 불구하고 발 씻길 생각을 안 해요. 이제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제자들 가운데 거의 다 배반하고 도망갔어요.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부인했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어요. 이러니 기가 막힐 상황이에요.

이 답답한 상황에서 예수님의 돌파구가 무엇이냐. 우리가 예수님이라면 섭섭하게 생각하면서, '그럴 수가 있나. 내가 3년 동안 가르친 제자들이 어떻게 이렇게 못 알아들을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늘 주님은 그 순간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세족식을 하셨어요. 이 세족식은 죄와 연약함을 씻은 것인 줄을 아셔야 합니다.

제자들은 세족식을 잘 알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당시 샌들을 신고 다녔어요. 흙길을 땀을 흘리며 다녀요. 그래서 손님을 잘 맞이할 때 발부터 씻어야지요. 그렇게 환영하고 발 씻기고 이런 아름다운 풍습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걸 보고 남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는 거예요.

제자들은 이 발 씻는 문화를 잘 알았어요. 알았는데 지금 제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 서로 누가 크냐고 싸우고 있었어요. 발을 씻겨야 하는데 왜 내가 저 사람 발을 씻겨야 하느냐, 저 어린 것이 내 발을 씻겨야지 하면서 서로 씻기지 아니하고 참 그런 경쟁심이라 할까 그런 것이 불끈불끈 올라오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니 발 냄새, 구린내, 땀 냄새 나고 오염되어 있는 분위기예요. 그런 속에서 떡만 먹고 있는 거예요. 냄새는 나고 떡은 먹고. 서로가 이렇게 발 씻는 걸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은 거예요.

자, 이걸 주님이 앞에 놓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깊이 보면 주님은 가룟 유다의 발까지도 씻겨 주셨어요. 기가 막힐 상황이에요. 그러고 난 다음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17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나중에 신학적으로 보면 오늘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랑을 받은 것이 세족식 받은 것이에요. 예수님이 본인들의 발을 씻겨 주신 거예요. 이걸 바탕으로 새 계명, 대계명을 받았어요.

사랑의교회는 대사명을 받은 교회입니다. 우리가 서로 발을 씻기는 은혜를 통하여 대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참된 복의 수혜자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17절에 뭐라고 하셨어요? (요 13:17 낭독) 특히 이 복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특히 그 자격 없는 제자들을 사랑하신 역설절인 사랑의 복이에요. 공로는커녕 허물밖에 없는 자들을 사랑하시는, 이해가 안 되는, 이해 불가의 그 은혜를 깨닫는 복이에요.

이 복의(복을 가져오는) 본질이 무엇이냐. (요 13:1 낭독) 이것이 오늘 요절이에요. 어떻게 사랑하셨다고요? 끝까지 사랑하셨다. 17절에서 나오는 이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복이 아니에요. 이 복은 비장한 순간에 우리가 연약함을 극복하고 돌파하게 하는 복인 줄 믿으셔야 합니다. 인생의 사막에서 길을 내시는 복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복을 받아 누리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이 복을 받는가. 하나에요. 우리를 끝까지 사랑의 주님의 심정을 깨닫는 복이에요.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어요. 이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에 눈을 열어야 성령이 여러분을 새롭게 하시는 거예요.

요한은 예수님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깨달은 제자예요. 이 상황에서 예수님의 심정이 무엇인가. 냄새 나고 서로 탓하고 경쟁하고 이런 상황에서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 끝까지 사랑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이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성령님을 통해 눈이 열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목회를 30년간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어요. 집회를 하고 훈련도 받고 많은 은혜도 받고 또 귀한 분들의 영향도 받았어요. 물론 순간순간 귀한 분들의 축복과 영향을 받았습니다마는 정말 저를 변화시키고 영향을 받았을 때는 저를 끝까지 사랑하는 주님의 사랑에 녹아졌을 때였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었어요. 여러분 책망이 사람을 바꿉니까. 어떤 기준이, 도덕이 사람을 바꿉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사람을 바꾸는 것은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에요. 이걸 하나님, 성령께서 주셔서 이거 하나라도 꽉 붙잡고 나가야 변화되는 거예요.

우리가 몰라서 그렇게 안 하는 거 아니잖아요. 우리가 다 알잖아요. 그런데 몸과 피를 기념하면서. 저를 변화시킨 것은 다른 사람, 상황이 아니고 끝까지 저를 사랑하신 사랑에 감동하고 녹아져서 제가 깨어진 거예요.

사랑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자격 없는 자를 사랑하시는 역설적인 사랑이에요. 공로는커녕 허물밖에 없는 자들을 사랑하시는, 이해가 안 되는, 이해 불가의 사랑이에요. 그야말로 끝없는 사랑이오, 중단되지 않는 사랑이오, 필립 얀시가 말한 대로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절대적인 사랑이요 불변의 사랑인 줄로 믿습니다.

구약으로 말하면 하나님 배반하고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베푸시는 인자하신 사랑이에요. 신약에는 십자가를 지신 아가페적 사랑이 끝없는 사랑이에요. 우리의 결점과 허물에도 눈이 먼 사랑이에요.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이에요. 이 사랑은 세상의 사랑이 아녜요. 라헬을 극진히 사랑한 야곱의 사랑, 호세아가 고멜을 사랑한 것, 보아스가 이방 여인 룻을 사랑하는 사랑도 대단하죠. 그러나 이 사랑은 이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사랑이에요.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사랑이에요. 이 사랑이야말로 찬양하는 대로, 허물 많은 베드로는 용서하고 의심 많은 도마에게 확신 주시는 '끝까지 사랑'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우리의 힘으로 알 수 없어요. 깨달을 수 없어요. 그래서 성령을 보내셔서 이 사랑에 눈이 열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복귀하고 첫 설교하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을 많이 하시는데, 여러분 오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셔서 끝까지의 사랑에 눈이 열리길 바랍니다. 다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어요.

끝까지 사랑은 엉터리 제자들, 하루도 안 되서 도망갈 제자들, 배신 때릴 제자들을 사랑하는 것이에요. 자격이 없는데도 사랑하는 거예요. 자격이 없는데도 발을 씻겨 주는 거예요. 여러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부부 싸움하고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그 부부를 주님이 사랑하시는 거예요. 저같이 부족하여 여러 성도에게 많은 아픔과 상처를 준 자격 없는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이에요. 우리 성도들끼리 마음이 하나 되지 않아서 힘들어 하는 상황도 사랑하시는 것도 주님의 사랑이에요. (부모의 기대에 부응 못하는 청년, 게임 중독된 청소년도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이에요.) 다시 말하면 자격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사랑이에요. 엉터리를 사랑하시는 거예요. 어쩌면 인생의 처절한 순간, 혹독한 터널을 지나는 순간을 사랑하시는 거예요.

지난 4월에 쓰촨성에 지진이 있었어요. 이번에 많은 분이 어려움을 당했죠. 이런데 49세 엄마가 있는데 어머니는 숨이 끊어졌는데 놀라운 것은 어머니의 품속에 7살 난 아들이 하나도 다치지 않고 살아났어요. 알고 보니 어머니가 모든 몸으로 아들을 보호해서 아들이 상처 없이 살았어요. 그걸 보면서 이 아들이 부모에게 효도를 했나, 얼마나 영리했나, 얼마나 자격 있나, 그게 보이지 않았고, 아, 그 아이는 그 어머니의 아들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을 받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인간사가 이럴진대 우리 주님의 사랑을 말로 다 표현 못해요.

인생의 처절한 순간을 지날 때 사랑하시는 거예요. 자격이 없는데도 사랑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이 사랑의 수준을 깨닫게 되면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요한1서 4장 18절 낭독) 사랑 안에 뭐가 없다고요. 두려움이 없다고요. 온전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두려움이 남아 있다면 주님의 '끝까지 사랑'을 우리가 아직까지 체험하지 못한 거예요. 우리의 사랑이 완전하지 않은 것이에요. 우리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뜻이에요. 우리를 온전하게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 하는 거예요.

오늘 이 세상이 왜 힘듭니까. 세상이 온통 사랑 결핍증이에요. 두려움을 내어 쫓는 온전한 사랑이 없으니까, 그래서 지옥이에요. 우리는 지금 수많은 지옥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 사랑의교회에 온전한 사랑을 내려 주셔서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두려움이 나가게 해 주시옵소서.

여러분, 어떤 지혜나 강함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까. 제가 묵상하면서 이렇게 지내 보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참 마음이 약해요. 안 믿는 사람은 강한데. 주님은 자주 마음 약한 신앙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하라고 하셨어요. 여러분, 하루에 몇 끼를 더 먹고 근육을 키워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강하게 해서 강하게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도 안 되는 거 같아요.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에 젖어 들어야 강해져요.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거예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 끝까지 사랑한다. 우리가 인격이 있고 격이 있으면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이 문자하면 답을 하잖아요. 부족한 인생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신뢰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문자 메시지 보내잖아요. 오늘 주님이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이 문자 메시지를 주셨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반응하세요. 주님 오늘도 내가 답답한데 자격이 없는데 주님이 나를 사랑해 주셨군요. 주님, 감사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 놀랍게 두려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아는 1.4후퇴 때 피란 온 어른이 있어요. 혼자서 오셔서 가정을 이루시고 그러다 보니, 세파에 힘들다 보니 수많은 힘든 일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자녀에게 엄격하게 대하고 그래서 부자 사이에 긴장이 감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주님의 사랑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너희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그건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해서야. 내가 사랑을 받아봤어야 사랑을 하지. 이런 복음의 신비한 사랑을 깨달을 때 두려움이 사라지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이라면 제자들을 사랑하고 싶은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어요. 오늘 성찬식에 참여한 우리가 이 사랑에 매인 바가 되길 원합니다. 이 사랑에 빚진 자가 되길 원합니다.

저는 지난 6개월 동안 주님의 사랑과 우리 성도님들의 사랑이 저를 강권하시고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 채무자가 되었습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결론을 내리고 성찬식에 참여합시다. 사랑의교회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됩니까. 사랑의 크기가 우리의 가치를 결정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세상의 흐름은 이렇게, 세상은 앞으로 이렇게 갈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압도하는 주님의 사랑을 받을 때에, 우리가 그 사랑에 반응할 때에 이 사랑의 크기가 사랑의교회 장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을 피 흘려서. 예수님은 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지만, 예수 피로써 우리를 씻어 주셨어요. 큰 사랑을 주셨어요. 이 사랑은 세상의 윤리와 기준을 다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저와 사랑의교회 장래는 사랑의 크기로 결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방향도 나올 것이고 장로님들과 연합해서 새로운 사역도 하겠습니다만은, 그러나 근본적으로 주님의 '끝까지 사랑'의 크기가 우리의 장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이름값해야 합니다. 사랑의교회입니다.

여러분 에베소 교회를 보십시오. 정직했습니다. 충성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교회를 향해 주님은 강하게 책망하셨어요. 우리가 많은 기도하고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사랑의교회가 첫사랑을 잃었다고 하시면 뭐라고 하시겠어요. 저부터 올드 멤버, 새로 오신 분까지 지난 30여 년 동안의 은혜 앞에서 주님 앞에서 감당해야 할 몫이 무엇입니까. 그 좋은 교회 놀라운 교회에게 서릿발 같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요한1서 3장 14절 낭독) 사랑하지 않는 자는 어디에 있다고요? 나는 살았다 나는 내 앞길을 간다 하지만 사실은 그건 죽음이에요. 사랑이 없는 것은 사망이에요. 저나 성도들이 이걸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의 이 사랑으로 그저 좋은 교인이 되는 데 머물지 말고 이 사랑으로 한걸음 나아가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코카콜라 사장은 자신의 몸에 피가 아니라 코카콜라가 흐르고 있다면서 코카콜라를 가지고 세상을 바꿉니다. 그렇게 해서 공산주의 국가에 미 대사관보다 코카콜라가 먼저 들어갔어요.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은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세상을 바꾸었어요. 기독교의 일은 어떤가요. 기독교 정신과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었어요. 공산주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톨스토이는 예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어요.

우리의 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신묘막측하게 지은 놀라운 창작품입니다. 이렇게 예배하며 찬양하며 나올 때 이 창조적인 것 대상은 말로 할 수 없는 거예요. 이 하나님의 창작품으로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어 봅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야기합니다마는 사랑의교회가 세상의 많은 어려운 사람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큰 사랑에 녹아져 밑바닥 인생에서도 완전히 바뀐 사람 많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장 아름다운 여성은 사랑받는 여성, 사랑받는 은혜인 것입니다. 사랑받을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유다는 유다서 1장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예수님의 형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장로님들, 모든 순장님들, 우리 모든 교회 성도들, 사랑으로 자신을 지킵시다. 교회법도 중요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도 중요합니다. 교회 방향, 비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사랑의교회가 더욱 충만하게 사랑하도록.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여러분, 6개월 동안 수많은 목회자들의 아름답고 고귀한 설교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설교였습니다. 여러분, 제가 목회자로서 여러분에게 다른 거 더 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제가 사랑하고 여러분 더 사랑하고, 우리끼리도 서로 사랑하고. 사랑의교회가 첫사랑을 잃었다면 회개하고 주 앞에 나가겠습니다.

우리가 징계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요. (히브리서 12장 6절 낭독)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뭐하신다고요? 사랑하면 징계하신다고 했습니다. 책망은 사람을 바꾸지 않지만, 사랑을 받으면 징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무대에서 온갖 우여곡절이 있어도 이 사랑 있으면 회복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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