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최근 딸네 집에서 물고기 12마리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막상 키우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망설였다. 그런데 이 물고기는 전기 산소 장치 없이 간단하게 키우기 쉽다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어항 속에서 바쁘게 노니는 물고기가 귀엽기도 했다. 꼬리를 치면서 분주하게 떠다니며 숨바꼭질하는 모습이 정겹게만 보였다. 아늑한 수초 속에서는 은밀하게 꼬리를 치며 사랑하는 모습도 보인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내 마음도 어항 속에서 함께 꼬리를 치는 듯했다. 기꺼이 키우기로 결정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나는 새 손님을 맞이하듯이 가장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어항 속에 직접 키운 수초와 예쁜 돌들을 넣어서 집 단장을 마쳤다. 물고기는 새 살림을 차린 것처럼 분주하게 다녔다.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자신들이 살 만한 집인지 살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먹을 것을 찾아 수초를 헤치며 마냥 쪼아 댔다. 마치 어린아이가 배고파 밥 달라고 응석을 부리는 것처럼.

▲ 어항 속을 떠다니는 물고기. (사진 제공 국인남)

어린 물고기들은 먹이를 가까이 가져가면 금세 알아차리고 모여 든다. 이 작은 미물들도 먹을 것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모이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잠시 후, 먹이가 있는 곳에서는 쟁탈전이 벌어졌다. 당연히 힘이 센 물고기가 더 많은 먹이를 차지했다. 작은 물고기는 가라앉은 찌꺼기를 먹고 큰 물고기를 피해 다녔다. 다행히 큰 물고기는 작은 것들을 헤치지는 않았다.

어느 사이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달이 지나도 물이 탁해지지 않았다. 궁금해서 사위에게 물었다. "이상하네, 물을 갈아 주려 하는데 물이 이렇게 깨끗할 수가 없네." 그러자 사위는 경험자처럼 말했다. "아마도 물고기들이 물이 쉴 틈을 주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항상 헤젓고 다니면서 물을 정화하며 더불어 잘 자라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매일아침 살아서 움직이는 물고기들과 만나는 것도 기뻤다.

황당

긴 장마가 계속 되던 날, 아파트 숲길을 거닐다 보니 달팽이가 보였다. 여기저기서 달팽이들이 물을 만나 소풍을 나온 것 같다. 순간 어항 속 물고기가 생각났다. '저 고기들에게 새로운 친구를 소개해 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곧바로 아담하고 사랑스럽게 생긴 달팽이 두 마리를 선택했다. 팽이에게 속삭였다.

"팽이야, 너희 둘은 사랑스러워서 선택 받았다. 아주 평안한 집으로 갈 거야. 친구들도 많아. 앞으로 행복할 거야."

이렇게 속삭이며 팽이를 조심스럽게 데려왔다. 신나게 놀고 있는 물고기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새로운 친구 팽이야, 서로 잘 지내라!"

어항 속에 넣어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작은 물고기 떼들이 집중적으로 달려들어 달팽이를 쪼기 시작했다. 달팽이는 몸을 웅크리고 껍질 속에 몸을 숨겼다. 그래도 여전히 물고기는 떼를 지어 먹잇감으로 알고 공격했다. 그냥 놓아두면 죽을 것 같아서 큰 돌 위에 올려 주었다. 돌 위에는 고기들이 올라오지 못하기에 안전 지대였다.

잠시 후, 안심하고 달팽이를 그곳에 놓아두고 볼일을 보고 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의 상황이 궁금해서 곧바로 어항 앞으로 다가 갔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물속에 넣어둔 수초를 달팽이가 벌집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수초를 맛나게 먹어 버렸다. 물고기를 피해 물위에 나와 있는 수초로 허기를 달랬나 보다.

▲ 팽이가 맛나게 먹어 버린 수초. (사진 제공 국인남)

수초를 확인하느라 여기저기 살피다가 발아래 무언가 느껴졌다. 아뿔싸, 내 발밑에 무언가 밟혔다는 느낌이 왔다. 순간 '달팽이구나!' 느끼며 주저앉았다. 한 마리는 이미 밖으로 탈출한 상태였나 보다. 그 상황을 알지 못하고 일을 저지른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남편이 한마디 했다.

"달팽이 장례 준비할까?"

상처

나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데리고 발견했던 장소로 다시 갔다. 산 자는 그 자리에 다시 놓아 주고 '잘 가라!'는 인사도 나누었다. 죽은 자는 손에 안고 풀숲으로 갔다. 미안한 마음에 달팽이를 땅에 묻어 주고 싶었다. 내가 사건의 범인이었기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풀숲에 묻어 주었다. 자꾸만 내 발에 밟힌 팽이의 원망 소리가 들렸다.

'나를 갖지 말고 그냥 바라만 봐 주지!'

어항 속을 재미있게 꾸며 보려는 내 호기심에 한 생명이 죽었던 날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나는 그날 살생자가 되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미안하다 팽이야, 흙이 되어 다시 만나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많은 팽이들이 보였다. 탐내지 않았다. 사랑은 모든 만물들이 서 있는 곳, 바로 그 자리에 놓고 그냥 바라보는 것임을 뼛속 깊게 체험했다.

내 욕심에 달팽이 한 마리만 압사를 당했다 생각하니, 지금도 비 오는 날 달팽이만 보면 트라우마(trauma,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긴다. 그러기에 상처도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많이 남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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