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다 보니, 기독교 관련한 음모론에 대해 몇 편 기사를 쓰게 되었다. 이러한 음모론은 대부분 종말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적그리스도, 666, 세계 정복을 꿈꾸는 단일정부, 로마가톨릭교 등에 집중되어 있다. 시간이 되는 대로, 이러한 주제들을 음모론과 관련하여 다루어 보고자 한다. -필자 주

2012년 4월 7일(즉 성토요일)에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Basilica)에서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참석한 가운데 행해진 부활절 철야제(Easter Vigil) 부활 찬송(Exsultet)의 가사로 인해 큰 파장이 벌어졌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천주교가 공식적으로 사탄을 찬양하고 숭배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실제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그들의 자세한 주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들의 주장은 여러 군데 우리말 사이트에서도 재인용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근거하고 있는 부활절 철야제에 행해진 부활찬가에 대한 유투브 동영상을 보면, 18분 30초부터 시작된 찬양 가운데 27분 30초쯤에 사탄, 즉 루시퍼를 찬양하는 가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동영상 출처 : http://youtu.be/ZBmxw36QzGM)

논쟁이 되고 있는 가사는 다음과 같다.

Flammas eius Lucifer matutinus inveniat:
ille, inquam, Lucifer, qui nescit occasum.
Christus Fillus tuus,
qui, regressus ab inferis, humano generi serenus illuxit,
et vivit et regnat in saecula saeculorum.

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자들의 번역은 대략 다음과 같다(참조. 우리말본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라틴어를 영역한 것의 번역이다.  http://blog.naver.com/esedae/90143227858).

Flaming Lucifer finds Mankind
불타오르는 루시퍼가 인류를 찾으신다.

I say: Oh Lucifer who will never be defeated
내가 말하노니: 오 루시퍼여 당신은 결코 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Christ is your son who came back from hell, shed his peaceful light is alive and reigns in the world without end.
그리스도는 당신(루시퍼)의 아들입니다. 지옥으로부터 돌아와서 평화로운 빛을 비추었던 그는 살아 있고, 그리고 영원히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논하기에 앞서서, 부활절 철야제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로마가톨릭이 지켜 오는 부활절 철야제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의식은 유월절 초를 켜는 것으로 시작하여,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는 그리스도의 빛 되심을 기념하며 그의 구원을 감사하고 세례 하는 의식을 통해 나타난다. 이 의식의 핵심은 빛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에 대한 찬양과 세례다. 그런데 그 와중에 루시퍼를 그리스도와 연관시키다니, 이 얼마나 경악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언급되는 '루시퍼'가 사탄을 말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면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사탄을 배워 왔던 사람들은 "그럼 루시퍼가 사탄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원래 루시퍼라는 말은 '빛을 가져오는 자(lucis+ferre)'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샛별 혹은 비너스, 계명성(啓明星)을 의미한다. 382년 다마스쿠스 1세가 히에로니무스(영어명 제롬)에게 구라틴어 성경을 개정할 것으로 요구하였고 5세기에 완성되어 점차적으로 라틴 교회에 수용되었다. 계명성의 특징은 깊은 어두움을 깨고 새벽 여명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지만, 나중에 밝아 오는 태양의 찬란한 빛에 그 광채가 가리어지기도 한다.

구약 이사야서 14: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에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자, 바벨론 왕(의 멸망)을 지칭할 때 계명성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헬렐 벤 샤하르'가 사용되었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라틴어 성경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루시퍼 자체는 특정한 영적 존재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는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타락[墮落]의 문자적 의미로서) 존재로서의 언급에 대한 또 다른 구절은 에스겔서 28:11~19이다. 여기서는 두로의 멸망을 노래하고 있는데, 의인화된 두로를 '기름부음받은 그룹(14절)'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타락한 천사장, 루시퍼에 대한 이야기는 중세에 들어서서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여행하는 내용을 다룬 단테의 신곡(Divine Comedy)과, 타락한 천사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결국 에덴에서 추방되는 내용을 다룬 존 밀턴의 실낙원(Paradise Lost)에서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신약은 이 계명성을 그리스도에게로 적용한다. 이것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즉 베드로후서 1:19가 그것이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여기서 언급되는 샛별은 포스포로스 즉 그리스도다. 이것뿐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이 새벽별도 '아침의 빛의 별(호 아스테르 호 람프로스 호 프로이노스)'이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중세 교회에 두 가지 전통이 존재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루시퍼는 사탄, 신약에서 루시퍼는 그리스도. 물론 사탄으로 여기는 전통은 전통일 뿐,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부활전야제에 부르는 찬송(Exsultet)의 가사는 몇 가지 다양한 전통을 보인다. 즉 루시퍼, 혹은 계명성(Morning Star)로 번역하여 부른다. 작년 부활절 전야제에 부른 찬송은 좀 더 전통적인 것이고 최근에 사용하고 있는 찬송에는 계명성이라고 번역하여 부르는 경향이 있다. 또한 흥미로운 사실은 이 부활찬송을 (비록 내용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로마가톨릭뿐만 아니라, 루터교나 성공회 그리고 일부 개신교에서도 동일하게 부활절전야제 때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계명성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찬양을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성경을 제대로 알고 세계 교회사의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는 혹은 그러한 노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2012년 부활절(찬송)과 관련하여 로마가톨릭이 사탄을 공식적으로 '숭배'한다는 증거로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전통은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는데, 2012년에 와서야 비로소 논란이 되었다는 것도 매우 이상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이 논란에서 발견되는 문제는 이와 같은 '음모론'의 배후에 로마가톨릭이 요한계시록이 예언한 적그리스도라고 믿고 있으며 그들이 여전히 지구 정복과 기독교 파괴의 숨은 '주범'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로마가톨릭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것은 의심의 정도가 아니라, 맹신의 수준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위에서 언급한 이사야 본문과 에스겔 본문은 다음 기회에 자세하게 다루려고 한다).

참고 자료: 부활절 전야제 찬송(Exsultet)의 유래와 내용에 대해서는 여기를 보라.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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