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영봉과 김형국, 그리고 김남준까지 세 명의 김 씨 성을 가진 목회자들이 연달아 주기도문에 관한 책을 냈다. 나 역시 평화주의 3부작의 일환으로 산상수훈을 집필할 계획을 갖고 있었고, 내가 섬기는 로고스교회 예배에는 항시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터라, 언젠가 주기도문을 글로 풀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시쳇말로 주기도문 대전이 벌어지는데 나라고 빠질쏘냐. 허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관전자로, 그러나 시샘 어린 시선이 겹쳐져서인지, 나의 '공격적 책 읽기' 본능이 되살아나서인지 조금은 날 선 비판자로 읽었다.

2.

▲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 / 김영봉 지음 / IVP 펴냄 / 216면 / 1만 원
김영봉의 귀환을 열렬히 환영한다. 개인적으로 그의 저작을 보면서 못내 아쉬웠다. 김영봉은 자신만의 어젠다가 있고, 그것을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도와 성경이다. 기도에 관한 책이 주목받는 것에 비하면, 그의 주석이나 성경 텍스트에 대한 설교들은 대중의 반응이 약했다. 그래도 그가 학자적 역량을 동원해서 시대의 아픔과 문제를 정확하게 치고 들어가는 모습은 가히 전사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의 그는 소위 베스트셀러, 즉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는 책들을 논평하는 해설자였다. 선도자에서 평론가를 자처한 셈인데, 글쎄, 모르겠다. 본인의 속 깊은 생각을 짐작하기 어려우나, 그것은 김영봉 개인으로는 재능의 소비이고, 기독 출판계 전체로서도 손실이다. 그런 그가 그만의 고유한 주제를 다시 천착하게 되었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기도와 성경이 환상적으로 통합된 접점이 바로 주기도문이니, 김영봉은 과연 녹슬지 않았다.

김형국의 전진을 뜨겁게 지지한다. 김형국을 특징짓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하나님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이다. 찬찬히 따져 보면 둘은 하나일수도, 다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읽어야 하고,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지평을 잃으면 교회는 방향을 잃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반면 하나님나라가 교회라는 현장을 잃으면 하나님나라는 모호하고 그 모습이 사라지려 한다. 그러니까 칸트의 어법을 빌려 말한다면, 하나님나라 없는 교회는 맹목적이고, 교회 없는 하나님나라는 공허하다!

김형국은 <때가 찼다>는 하나님나라를, <교회를 꿈꾼다>와 <교회 안의 거짓말>은 교회를, 그리고 이번 책은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기도를 다룬다. 최근 하나님나라 복음의 관점에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동역자들을 위해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자신의 교회와 책만이 아니라 동역자를 세우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인데, 바로 그런 점에서 김형국은 잠시 주춤하거나 곁눈질한 김영봉에 비해서 자신의 어젠다를 갖고 일관된 길을 걷고 있다.

3.
두 저자는 상당히 유사한 경력과 이력을 갖고 있다. 둘 다 유학파이고, 신약성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의 수도인 서울과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에서 목회를 한다. 게다가 몇 권의 저서를 썼고, 소위 복음주의나 개혁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속을 들여다보면 다른 점도 있다. 김영봉이 보다 학자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면, 김형국은 목회자 스타일을 풍긴다. 그것은 아마도 김영봉이 신학대학에서 교수로 강의한 경험 때문일 것이고, 김형국은 곧장 목회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각자의 책을 보면 학자적 목사인 김영봉은 조직신학적인 냄새가 더 나고, 목회자 스타일 목사인 김형국에게서는 성서신학적 냄새가 더 난다. 두 사람이 주로 참조하고 독자에게 도움이 될 책을 추천한 것에서 이 같은 것을 맡을 수 있다. 김영봉은 헬무트 틸리케, 정용섭,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책을 소개했는데, 그러니까 조직신학자들이다. 정작 본인은 복음서를 연구한 학자로서 그들과 다른 각도로 접근하겠다고 했는데, 김형국의 것과 비교하면 이론적이고 성찰적이다.

반면 김형국은 딱 한 권을 언급했다. 김세윤의 <주기도문 강해>이다. 김세윤은 알다시피 풀러신학교에 재직 중인 한국인 신학자다. 이 책은 철저히 성서신학의 연구에 기초해서 주기도문을 해설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주기도문>은 김영봉의 것과 비교하면 성경적이고 현장적이다. 그런 점에서 두 권을 같이 읽으면 서로 보완이 될 것이다.

4.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이야기할까 한다. 나의 첫 책이 <공격적 책 읽기>(SFC), 그러니까 기성 작가들의 책에 뭇매를 던졌지만, 서평가에서 저술가로 무게 이동을 한 지 오래인 지금, 비판을 하기란 나 역시도 껄끄럽다. 그러나 아무리 못 쓴 글도 잘 쓴 것이 하나는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잘 쓴 글도 흠은 있는 법이다. 그리고 독자에게 각 책을 평가할 수 있는 나름의 기준을 제공하는 것도 서평의 몫일 테니 - 물론 그것은 서평자의 시선이 투영된 것임을 감안하고 읽어야 하겠지만 - 두어 가지 지적해 볼까 한다.

일단,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부터. 첫째, 1부의 제목은 '하늘을 향하는 기도'이고, 2부는 '하나님을 향하는 기도'이다. 간단히 묻자. 주기도문에서 그리고 마태복음에서 하늘과 하나님은 다른 존재이거나 별개의 것인가? 마가와 누가는 '하나님나라'라 했고, 마태는 '하늘나라'라고 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불경이니까 가급적 피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하늘'이다. 그런데 왜? 내 경험상, 이는 저자보다는 편집자의 몫인데, 좀 더 세심하게 관찰했으면 좋았겠다 싶다.

둘째, "세상은 악하고 인간은 약하다"(10장)에서 시험과 악은 유혹자와 악한 자를 가리킨다. 그 실체는 '정사와 권세'이다. 그것을 김형국(289~303쪽)은 그 챕터의 절반 이상 정사와 권세를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룬 반면에 김영봉은 고작 두 문단(180~181쪽)이다. 물론, 10장의 군데군데, 사탄과 사탄의 전략을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분량만 갖고 글을 논할 바는 아니다. 얼마나 잘 녹여냈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그럼에도 일차적으로 텍스트가 의미하는 바를 잘 설명하는 것이 목사와 저자의 일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7장을 읽으면서 뭐랄까, 당황했다고 해야 하나, 황당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건 아니다 싶었다. 주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소극적으로는 하늘 뜻이 아니라 내 뜻을 하늘 뜻인 양 기도해서는 안 되고, 보다 적극적으로는 하늘에 이미 이루어진 뜻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기도하라는 뜻이렷다.

그런데도 저자는 줄곧 우리 인간이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그 뜻을 알기보다는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믿음의 길을 가는 일에서 가장 조심할 것이 '확실한 것'을 찾는 일입니다(133쪽)."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경우가 더 많(134)"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믿고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텍스트인 주기도문에서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믿고 기도하라는 것인가?

내 생각은 이렇다. 그것은 주기도문과 아무 상관없는 해석이다. 그 말을 하고 싶으면 다른 텍스트에서 할 것이지, 왜 주기도문인가? 이 기도문은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멀리 마태복음 전체를 샅샅이 훑을 필요는 없어도, 가깝게 산상수훈 안에서만 보아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기도할 수 있을까, 그것이 이 주기도문에 적절한 해석인가? 내가 보기에 그것은 김영봉의 생각일 뿐, 성서 텍스트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주기도문으로 드리는 기도를 주문 기도라고 비아냥거리는 이들이 많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중얼중얼거린다고 참 기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뜻 없이, 뜻 모르게 드리는 기도를 지양하고, 철저히 성경에 기반한 성경적 기도, 성경으로부터 나온 기도를 하자는 것이 주기도문일진대, 그 뜻을 모른다고, 그 뜻을 단정하면 안 된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풀어낸다는 것은 주기도문을 주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5.

▲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주기도문> / 김형국 지음 / 죠이선교회출판부 / 363면 / 1만 4000원
다음은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주기도문>을 볼 차례다. 앞서 내가 김영봉에게 들이댄 기준으로 김형국을 보자면, 문제 삼을 것이 딱히 없다. 이 글의 제일 앞에서 두 저자를 비교하면서 말한 대로, 김형국은 "주기도문에 담긴 하나님나라의 비전과 하나님나라 백성의 정체성"이라는 책의 뒤표지에 실린 문구처럼 마태복음의 맥락과 하나님나라의 관점 속에서 주기도문을 조망한 때문이리라. 이 점은 '당신의 뜻'에 관한 부분을 보면 된다. 김형국은 우리가 당신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203~204쪽),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기'(205~209쪽)를 말한다. 이것은 누차 말한 대로 주기도문에 대한 바른 이해이고, 그것이 책 전편에 일관되게 잘 나타난다는 점에서 합격이다.

그러나 애써 흠을 잡는다면, 조금은 장황하다는 느낌이다. 주기도문 해설서 치고 좀 많다 싶다. 물론 김남준 목사의 <깊이 읽는 주기도문>이 460쪽인 것에 비해 360쪽이면 그다지 많지 않다. 이 글의 비교 도서인 김영봉의 것(215쪽)과 견주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남준은 아예 책 제목에 깊이 읽는다고 했으니 자연 길어질 수밖에. 그리고 하나님나라, 마태복음, 그리고 구약성경과의 관련 속에서 주기도문을 짚어야 하니 응당 길어진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어찌되었건 장점이 단점이고, 단점이 장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촌평을 하나 더 덧붙인다면, 책의 문장에 관한 것이다. 이 또한 보기 나름인데, 이 책이 애초에 나들목교회의 예배에서 선포된 설교라는 것을 감안하면 술술 잘 읽히고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미덕이다. 심오하지만 쉬운 기도가 주의 기도이다. 그러니 잰 척하지 않고, 무난하게 읽히도록 풀어낸 것은 장점이다. 동시에 주기도는 압축적인 기도이니 만큼 풀어냈다가 다시 밀도 있는 언어로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래도 이 점에서는 김영봉의 책이 문장이 좋다.

6.
주기도문은 내가 보기에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 가능하다. 하나는 산상수훈의 맥락 속에서, 다른 하나는 기도라는 주제로 풀어낼 수 있다. 그러나 주기도문이 산상수훈 안에 위치한 이상, 산상수훈이 말하는 하나님나라와 하나님나라 백성의 제자도 맥락하에서 주기도문과 기도를 따져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김영봉과 김형국, 두 분의 책에 대한 평가 곧 서평의 잣대는 산상수훈이 묘사하는 하나님나라다. 그 나라는 게르하르트 로핑크가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와 <산상설교는 누구에게>(분도)에서 말한 바, 한편으로 세상과 구별되는 대조사회이자 다른 한편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만민사회이다. 우리의 기도 속에 은밀하게 내장되어 있는, 그리고 주기도로 떡칠해 버린 세상의 욕망을 폭로하고, 나의 기도가 아닌 주의 기도, 나의 뜻이 아니라 주의 뜻, 나의 나라가 아닌 그의 나라를 소원하는 기도로 이끌어 가는가, 바로 이 점이 두 책을 읽는 관건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고, 산상수훈을 따라 산다는 말이다. 복음 중의 복음을 흔히 로마서라고 하고, 나 또한 동의하지만, 산상수훈을 빼놓을 수 없다. 주기도문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는 마당에 두 권의 책을 읽고, 주의 기도로 참된 기도를 드리는 계기를 삼고, 한편으로는 산상수훈 연구와 실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