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실업 100만 시대라고 한다. 우리나라 현실은 젊은이가 꿈꾸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길도 좀처럼 보이지 않고, 꿈도 꾸기 힘든 시대다. 이때 이 사람을 만난다면 무슨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까. 지금의 젊은 세대보다 좀 더 앞서서 걸음을 뗐던 이 사람이라면 나름 해답이 있을까. 최소한 속이라도 풀릴까.

동기들보다 조금 빠른 교수 임용

안성 한경대학교 김규호 교수, 그는 전기공학 박사다. 1996년 2월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해 안산공과대학 교수로 임용이 되었다. 그 학교에서 13년 정도 있었고, 지금의 학교에선 5년을 있었다.

처음 교수로 강단에 서던 날, 그는 무척 떨렸다고 했다. 떨림의 이유? 그건 처음 하는 일이라 떨리는 것도 있었지만, 나름 이유가 있었다. 교수 임용 당시 나이 31세, 동기들보다 조금 빠른 출발이었다.

▲ 김규호 교수. (사진 제공 송상호)

김규호 교수, 그가 젊었을 때, 길을 몰라 헤맬 때, 주변의 선배와 동기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결과, 길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그들을 자신의 멘토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젊은이들도 마음만 열면 주변 가까이에 멘토가 있다고 했다.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로 임용되기까지 주구장창 공부만 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소위 현장 경험이 부족했다. 공부만 하던 그에게 전력 현장 경험의 기회가 없었던 것. 그렇기에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어 좋은 것도 있었지만, 엄청난 부담도 있었다고 했다.

야간 대학 학생들을 처음 만난 그는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했다. 주경야독하는 학생들은 낮에 전력 현장에서, 밤에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들 중 만학도도 상당히 있었다. 그는 학생들과 전력의 원리와 이론을, 학생들은 그와 현장 경험을 서로 나누었다고 했다. 부딪치니까 되더라고 했다.

세 멘토들의 영향이 그를 만들었다

그도 처음부터 이렇게 빠른 출발은 아니었다. 입대를 미루고 있었으니, 오히려 동기들보다 처지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대학 3학년 무렵, 4학년 선배로부터 한 가지 조언을 들었다. 대학원에 도전해 보라는 거였다. 그는 선배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도전했다. 첫술에 배부르지는 않았다. 두 번째 도전에 성공했다.

대학 진학 때도 그는 전기공학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영향이라 했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 한국전력공사에서 일한 사람이었다. 그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영월 화력발전소에서 근무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라난 그에게 전기공학 쪽은 친근했다.

"제가 사실 학과를 이쪽으로 선택한 건 아버지의 영향이지요. 그리고 교수가 된 건 어머니 덕분입니다. 어머니가 평생 초등학교 교직에 계셨거든요. 그러고 보니 제가 두 분의 영향을 반반씩 받았네요. 하하하하하"

그가 박사가 되고자 결심한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석사 장교(당시 6개월 복무)를 하면서 군대 동기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군대 동기들은 모두 "앞으로 박사 코스를 밟을 거네, 유학을 갈 거네"라며 떠들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로 하여금 은근히 경쟁심을 유발시켰다고 했다.

군을 제대했다. 이를 악물고 공부에 매진했다. 드디어 1996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를 받던 날, 부모님은 감격스러워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직업을 이어 간다는 기쁨으로, 어머니도 자신의 직업을 이어 간다는 기쁨으로 말이다.

그는 말했다. 세 멘토들 영향에 이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대학원 진학은 선배들, 박사 학위 취득은 군대 동기들, 교수직 선택은 부모님 등. 그는 늘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고 말을 한다고 했다.

막막할 때, 마음을 열면 멘토가 보인다

하지만 그라고 고민이 없었을까. 대학교 3학년 때, 군대도 가지 않고(많은 동기 친구들은 벌써 입대한 상태였다), 길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무얼 해야 할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 막막했다.

그때 그의 옆에서 선배가 손을 잡아 줬다. 고등학교 선배이자 대학교 선배였다. 대학원 진학을 권유하면서, 그것이 좋은 점을 일러 줬다고 했다. 석사 장교를 하면서도 앞으로 공부를 더 해야 할지, 취직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군대 동기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를 자극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일러 "공부를 잘하는 타입은 아니다"고 했다. 연구를 하다가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는 그만두고 싶었다고 했다. 밤늦게까지 공부를 할 때는 지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건 바로 공부였고, 그것도 전력에 대한 공부였다는 것을. 이왕 이 길에 들어선 것이니 계속 가 보자는 각오였다고 했다. 그의 장점이 있다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주변을 탓하지 않고, 혼자서만 고민하지 않고, 주위에 눈을 열어 길을 발견했다는 것이리라.

이렇게 살아온 그는 이제 자신 있게 후학들에게 늘 말하곤 한다고 했다. 그의 삶을 걸고 하는 말이니 귀 기울여 들으면 얻을 게 있을 듯하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애쓰지 말라. 남들이 다하는 스펙 쌓기에도 전념하지 마라(예컨대 토익 점수 높이기 등). 그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발견해서 그것을 극대화시키도록 해라. 그리고 지금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혼자 고민하지 마라. 마음만 열면 그대 가까이에 멘토가 있다. 그의 도움을 받으라. 그런 후에 당신도 누군가에게 멘토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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