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의 젊은 여사장님이 보청기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 줬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보청기 시대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

안경광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줄곧 안경사 직원으로 일했던 그녀. 2008년에 드디어 안성 공도에 자신의 안경원을 냈다. 33평형에 꽤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매장이었다. 금은방도 같이 했다. 주위에선 좀 더 큰 안경원을 경영해서 돈을 벌어 보라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던 그녀가 2013년도에 현재의 자리(안성 구 터미널)로 갑자기 이전을 했다. 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안정적이던 매장을 포기하고 옮기게 된 사연은 뭘까.

▲ 양미연 대표의 미소와 미모가 빛나는 것은 치열한 삶을 접고 여유로운 삶을 택한 데서 오는 열매이리라. (사진 제공 송상호)

요즘 그녀는 행복하다고 했다.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인생을 배운다고 했다. 보청기 하나로 인생 공부를 하는 그녀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인생의 전환', 바로 그것이었다. 돈만 벌려고 치열하게 사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고 했다. 안경원은 쉬는 날이 별로 없었다. 쉬는 날이 없으니 점차 지쳐 갔다. 금은방은 하나라도 더 팔려고 감언이설(?)을 동원해서라도 손님을 설득해야 했다. 오로지 돈만 벌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자신이 느껴졌다고 했다. 삶의 언저리에서 맴돌던 변화의 열망이 이제 그녀의 삶의 한가운데로 물밀듯 밀려온 게다.

그럼 이젠 어디로 가야 할까. 무얼 하며 살아야 할까. 그때 평소 지인으로부터 들어 왔던 보청기 판매가 그녀의 맘을 두드렸다. 그래 바로 그거다. 당장 보청기에 관한 공부를 끝낸 후 지금의 자리로 매장을 옮겼다. 안경원에서 보청기점으로 바뀌었듯 그녀의 삶도 보청기 시대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으로 구분이 된다고 했다.

보청기 가게야! 어르신들 상담소야!

그녀는 요즘 매일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 이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어서란다. 하고 싶은 것이란 돈도 벌고 보람도 있는 일이었는데, 그 일이 바로 보청기 파는 일이라는 것.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란 가게에 오시는 어르신들이란다. 그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공부까지.

요즘 그녀는 인근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보청기를 팔면서 만난 어르신들 덕분이란다. 어르신들은 보청기 상담을 하다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마구 풀어내 놓는다고. 사업하다 망한 이야기, 사기 당한 이야기, 시집 산 이야기, 자식 이야기 등이다.

어르신들이 그런 이야기를 풀어 놓게 되는 이유가 뭘까. 어르신들 자신의 핸디캡인 보청기를 맞추는 일이다 보니, 자신 삶의 핸디캡마저도 술술 이야기하게 된다는 거다. 자연스레 들어주는 상담이 이루어진다고. 그런 일로 인해 좀 더 전문적인 영역을 배우고 싶다는 욕구와 실천으로 이어진 게다.

처음 매장에 오신 어르신에게 그녀는 항상 말한다. "아버님, 어머님. 앞으로 계속 저와 만날 거니까 우리 친하게 지내요"라고. 보청기는 보청기 청소, AS 등 차량 관리와 똑같다. 그러다 보니 한 번 인연 맺게 된 어르신과는 평생 만나야 한다.

"보청기를 당당하게 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보청기가 좋아서 끼는 어르신은 아무도 없어요. 처음엔 싫다고 하던 어르신도 보청기를 귀에 끼자마자 표정이 확 살아나는 걸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뒤에는 보청기가 없으면 화를 내시더라고요. 호호호호"

그녀는 어르신들이 보청기를 끼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보청기를 하지 않으려는 심정은 이렇다. '내가 이제 장애인이 되는구나. 이제 나도 다 됐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귀속형' 보청기를 선호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하려는데 있다. 반면, 외국엔 '귀걸이형' 보청기가 많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도 나이 들어서 보청기를 하게 된다면 당당하게 '귀걸이형'을 할 거라고 했다.

어르신들은 진즉에 보청기를 왜 안 했을까. 십중팔구 반응이 그렇다고 했다. 귀가 어두워도 참고 참다가 겨우 오는 어르신들. 그들은 청력이 많이 약해져 보청기가 소용없을 지점에 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했다. 정말로 안타까운 경우라 했다.

"너, 살판났네. 살판났어."

"요즘 너 살판났구나"란 말을 자주 듣는다는 그녀. 자신은 어르신들과 궁합이 맞단다. 그들을 통해서 인생 공부를 제대로 한다고 했다. 돈을 주고도 들을 수 없는 그들의 인생 이야기는 자신의 삶을 자꾸만 성숙시킨다고 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저는 예쁘게 늙고 싶어요"란 말이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니다. 어르신들을 보며 깨달은 삶의 진실이다. 어르신들에게 단지 보청기 하나를 주는 거지만, 자신은 그들로부터 참 많은 것을 얻는다고 했다.

▲ 현재 보청기 가게에서 유일한 패밀리 안종미 실장이다. 양미연 대표는 그녀가 있어서 오늘도 든든하다. (사진 제공 송상호)

그녀가 예쁘게 늙는 것을 생각한 건 순전히 보청기 가게에서 어르신들을 만나고부터다. 돈만 벌려고 치열하게 살았던 안경원 시절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젊었을 때 고생을 엄청 했어도, 늙은 후 밝고 여유로운 얼굴의 어르신을 보면서 교사로 삼는다는 거다. 반면, 여전히 삶에 찌들려 노년을 즐기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반면교사로 삼는다고 했다.

한쪽으로 흘러가던 삶의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바꾼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녀는 그런 용기를 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보청기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보청기가 인생 스승(어르신들)들을 만나게 해 주었으니까. 오늘도 그녀는 가게에서 어르신들과 신나는 수다를 떨고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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