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과 세습?

▲ <세습 목사, 힐링이 필요해?>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지음 / 홍성사 펴냄 / 224면 / 8000원
언뜻 보기에는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명제가 아담하게 생긴 한 권의 책에서 만나 왁자지껄한 한판 수다로 버무려진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출간한 <세습 목사, 힐링이 필요해?>가 바로 그 수다의 현장이다.

느헤미야의 팟캐스트 '에고에이미'에서 신학자, PD, 활동가 등 다소 '고리타분한' 인상을 풍기는 이들이 만나 벌이는 수다의 장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다. 그러나 그 가벼움은 주제의 묵직함과 의미를 놓치지 않고 있기에 그 현장의 수다를 그대로 옮겨놓은 책인 <세습...>이 다루는 이야기들은 결코 시시껄렁하거나 쉽게 넘길 만한 주제들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힐링 공화국?

수년 전부터 무슨 치유, 마음 열기, 아버지학교 혹은 연원을 알기 어려운 영성 프로그램 등 일종의 상담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사업가 출신 대학교수를 포함한 저명인사들이 사회적 '멘토'를 자임하고 나섰다. 그러더니 TV에서, 수련회 프로그램에서, 심지어 맛집 소개에서도 '힐링'은 그야말로 약방의 감초, 흥행의 보증수표처럼 자리하는 화두가 되었다. 2013년의 한국은 그야말로 '힐링 공화국'이라 말해 볼 만하다.

이와 같은 '힐링' 신드롬을, 개인을 넘어 사회·경제 등의 구조적 불안감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이야기꾼들은 보고 있다. 한국교회가 신자유주의와의 습합을 통해 성장과 성공을 최우선 가치로 두게 둠에 따라, 이와 같은 사회와 구성원들의 집단 불안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적어도 80년대 이후로 한국교회가 신자유주의에 깊이 들어가게 되고 정치와 밀착된 다음부터 고지론 등 기존 체제 안에서 모범적이고 성공적이고 유능한 아이들을 키워내는 정신적 지원센터로 기능해 왔다는 게 큰 것 같아요. 한국 사회가 과도하게 물질화되고 유물화되는 것에 목사님들이나 교회가 저항하면서 대안 문화를 만들거나 운동을 하려는 대신 체제 안에서 어떻게 더 빨리 서핑할 것인가, 파도타기를 할 것인가에 치중하면서 테크닉 혹은 시스템들을 축복해 온 거죠.(본문 76~77쪽)

아울러 이야기꾼들은 사회적 힐링 열풍이 담고 있는 메시지 중 '다 괜찮아'식 처방은 자칫 문제의 본질을 비껴갈 수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동시에, 아프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만나는 것과 함께 개인적-사회적 아픔의 본질을 직면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기독교적 힐링'의 필요성도 놓치지 않는다. 이야기꾼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아픔이 늘 말랑말랑한 위로만으로 해소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 물려주지 누굴 물려줘!"

이어지는 이야기 마당에서는 한국교회의 중대한 병폐 중 하나인 '세습'을 정면으로 들고 나온다. 1997년 1호 세습인 충현교회를 필두로 광림교회, 왕성교회 등 지금까지 한국 교계에서 벌어졌던 대형 교회 세습의 사례를 조목조목 열거한 이야기꾼들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여러 활동 현장에서 얻게 된 경험의 나눔과 함께 성서적-신학적 논의의 장으로 나아간다.

2002년인가 2003년에 소망교회 세습 반대할 때 제가 교회 앞에서 가서 시위를 좀 했는데, 아,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중략) 반대하는 소리들을 완전히 악마로 여기며 처단하고, 그때 사무국장 멱살 잡히고 저희들 길바닥에 내쫓기고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완전 조폭들에 에워싸였던 기억들이 있네요.(본문 113쪽)

저희가 왕성교회 세습 반대 운동을 하는데요, 공동의회가 진행 중일 때 바깥에서 1인 시위하고 있는데 공동의회장으로 들어가시는 할머니 권사님이 1인 시위를 하는 분한테 하신 뼈아픈 말이 있죠."아들 물려주지 누굴 물려줘!" (본문 161~162쪽)

구약 자체는 세습되는 왕권에 관해 부정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구약에서 아주 정당하고 합법화된 제도로서의 왕정조차도 구약 내에서 그렇게 곱게 보지 않거든요. (본문 157쪽)

아울러 이야기꾼들은 "성경에 세습을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교회 안정론과 심장 이식론, 업적론, 간섭 불가론, 성직 세습은 자연 순리, 선교 방해론, 용어 순화론' 등 세습 옹호론자들의 주장을 열 개 유형으로 분류하며, 그에 대한 문제 제기를 유쾌하게 풀어 가기도 한다.

"아들이 해야 교회가 안정된다. 그리고 교회의 심장이 목사님인데 그게 잘 전수돼서(중략) 근데 왜 심장만 이식해요? 간장도 있고 위장도 있는데"(본문 172~173쪽)

이 책에서도 언급되듯 세습을 옹호하는 이들은 말한다. "성서를 봐라. 어디에 세습을 반대한다는 말이 있느냐? 그리고 성서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세습한다. 아브라함을 봐라! 제사장들을 봐라! 다윗과 솔로몬을 봐라!" 그러면 나는 또 짐짓 처음 듣는 척 준비된 답변을 하겠다. '그렇지요. 하지만 성서가 쓰인 시대와 달리 지금은 왕정과 혈연 중심 계급사회가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지니는 공화정의 시대라고요. 당신들이 그토록 좋아하시는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말 모르시나요?' 지금을 사는 우리들은 거의 대부분 왕이 다시 있어야 하겠다거나 (혈연적) 귀족이 다시 출현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금의 그 가치는 성서집필 시대의 그것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꾼들과 같이 이와 같은 논쟁이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습이 교회 공동체를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은 아마 성서에 '세습을 반대 한다'는 말이 나온다면, 그 땐 오히려 내 말을 가져다 사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성서에는 그렇게 쓰여 있어도 그건 당시의 상황이고, 지금은 그 의미를 살리되 상황에 맞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라고….

그런 측면에서 한국교회가 섬기는 모습, 내려앉는 모습, 이런 것들을 보여 주면 그게 얼마나 좋을까, 그런 기대를 해 봅니다. 근데 솔직히 제 마음으로는, 교회가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거 같아요. 세습에 관해 제가 너무 비관적이라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가 않아요.(본문 213쪽)

이들에게 세습은 누가 뭐라 해도 꼭 해야 할 일이고, 그건 자신의 신념과 동일시되는 신앙으로부터 이미 오케이 사인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안감의 자리에서 만나는 힐링과 세습

<세습...>에 등장하는 이야기꾼들은 '힐링 열풍의 시대'를 통해 개인과 사회에 팽배한 불안감을 읽는다. 확신 없는 미래, 끝없이 이어지는 경제적 어려움, 벗어날 수 없는 경쟁 구도 등 2013년의 한국 사회가 지닌 불안함은 이제 개인을 넘어 사회구조적 문제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불안감의 왜곡된 해소 욕구, 즉 '왕 목사님의 아들이 와서 변함없이 안정적으로 교회를 번영시켜 주소서'식의 '교인 욕망'은 자신이 지닌 불안한 권력의 영구한 보장을 염원하는 '목회자 욕망'과 만나 세습의 구체적 과정을 밟아간다. 이 과정 속에서 1세대 목회자들과 교회는 미국 유학을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황태자'의 스펙 관리에 들어간다. 물론 그에 따른 모든 비용은 교회가 책임진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미국 박사 출신의 목사는 영원히 잘 나가는 교회의 구성원이고 싶은 교인들의 욕망과, '알토란 같은' 내 교회와 권좌를 계속 지키려는 목사의 욕망과 맞물려 '대형 교회의 세습'이라는 전염병과도 같은 '영적 치매'가 전체 교회 공동체에 퍼지게 된다.

"우리 딸이 새 성전에서 결혼해야 하는데 도대체 왜 반대하는 거냐!"

수년 전, 사랑의 교회 건축이 한창 논란을 빚고 있을 즈음, 교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그때 딱 봐도 매우 '강남스러운' 차림의 중년 여성이 경멸의 시선과 함께 우리에게 던진 한마디는 이후에도 두고두고 가슴에 남았다. "우리 딸이 새로 지어지는 넓은 성전에서 결혼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

언젠가 누가 말했다던가? '한국인은 크게 강남에 사는 사람과 강남에 살고 싶은 사람으로 나뉜다.' 대형 교회 지향, 화려한 외관, 나눔 없는 성장주의 등을 세습의 전(前)단계적 징후라고 본다면, 너무 섣부른 판단일까? 이것들이 세습에 부정적인 이들의 마음 어디인가에도 자리 잡고 있다면, 회자되는 몇 개의 교회가 천만다행으로 세습을 하지 않더라도, 이는 결코 해결되지 못하는 난제로 남게 될 것이다. 어쩌면 세습은 개인과 사회가 빠져 있는 성장과 성공이라는 욕망의 개신교적 증상일 수 있을까?

가볍고도 편안하지만 깊이 있는 고민에 이르도록 널리 읽히기를

이 작은 책 <세습...>은 이렇게 사회와 교회, 교인들이 지닌 불안감과 그로 인한 욕망이라는 측면에서 힐링과 세습, 교회의 대물림과 힐링 신드롬을 하나의 이야깃거리 삼고, 그 이야기 속에서 만나며, 회자되고, 웃는 가운데 깊은 생각을 열게 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바라건대 깨어 있는 평신도 양성과 이를 통한 교회 개혁을 기치로 출발한 느헤미야의 수다스러운 시도가, 독자들로 하여금 한 손에 쥘 만큼 가볍고도 편안한 가운데 깊이 있는 고민에 이르게 하는 촉매제가 되기를 바란다.

김애희 /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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