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가 3월 31일 대한문 앞에서 열렸다. 찬 바람이 부는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500여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배 현장을 찾았다. ⓒ마르투스 이명구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지만, 작년 (이 자리에서) 성탄절 예배 때 드렸던 기도가 이뤄지지 않아 다시 오게 됐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셔서 승리를 선포하신 것처럼, 노동자들을 죽이고 노동자들을 고난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죽임의 세력들을 향해서도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고, 승리를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의 준비위원장인 진광수 목사의 말이다. 화창한 3월의 마지막 날.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렸다. 예배 시작이 20여 분 지연되고, 꽃샘추위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지만, 대한문 앞에는 500여 명의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지난해 부활절과 성탄절에 이어 이번에도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예배 모임은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이것은 고난 당하는 모든 백성을 위한 주님의 몸, 노동권을 빼앗겨 신음하는 노동자의 몸, 신자유주의 지배 질서에 죽임당한 민중의 몸, 고공 농성하는 민중들의 아픈 진실입니다."

▲ 박득훈 목사(새맘교회)가 성만찬을 집례했다. 박 목사는 힘겹고 어려울수록 성만찬이 그대들을 지킬 것이라는 본 회퍼의 말을 인용했다. ⓒ마르투스 이명구

성만찬을 집례한 박득훈 목사(새맘교회)는 떡을 네 조각으로 나눠 한 조각씩 들고 외치며 예수의 부활을 기념했다. 집례자의 떡과 잔 의례에 이어 회중들이 나와 농성장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주님의 평화가 있기를 빌며 빵과 포도주를 나누었다.

▲ 김정우 쌍용자동차 노조 지부장이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됐다. 그는 "많이 맞고, 많이 죽고, 그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마르투스 이명구

부활절 예배가 진행된 대한문 옆에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농성장이 있다. 5년째 이어진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극심한 생활고와 강제 진압의 상처, 한국 사회에 대한 환멸과 좌절을 안겨주었고, 지금까지 24명의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날 이야기 손님으로 함께한 김정우 쌍용자동차 노조 지부장은 "많이 맞고, 많이 죽고, 그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서 살아가고 있다"며 함께한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는 많이 지친 얼굴이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고, 예배를 찾아온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을 요청했다.

이날 부활절 예배는 1부 연합예배와 2부 노래와 이야기 나눔으로 진행됐다. 시대의 증언을 한 손달익(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장은 "부활하신 예수님은 힘없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오늘 이 자리도 부활하신 예수가 찾아와 희망과 새로운 용기로 약동하게 하시고, 새로운 꿈으로 부활하게 하실 것입니다"라며 지친 노동자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예배가 끝나고 2부 노래와 이야기 나눔이 진행됐다. 이날 노래 손님으로는 향린교회 합창단 ‘향기로운 이웃’과 다원예술팀 소속 '꼬꼬뮨(Co-Comune)밴드', 그리고 김성만 노동가수가 왔다. 이야기 손님으로 김정우 쌍용차 노조 지부장과 김숙경 기독여민회 총무가 함께했다.

"추운 날씨에 고생하시는 노동자 분들이 빨리 집으로, 일터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많은 어른들이 고통받는 이분들께 관심 갖길 희망해요." 향린교회 합창단 '향기로운 이웃'의 조하진 양의 말이다. 조하진 양은 올해 10살로 해맑은 눈과 밝은 미소를 가진 소녀다. 추운 날씨에 몸을 많이 떨면서도 조하진 양은 끝까지 예배를 함께하며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 향린교회 합창단 '향기로운 이웃'이 봉헌 특송을 드렸다. ⓒ마르투스 이명구
▲ 철거 당시 현장을 지키고 있던 유명자 재능교육 노조 지부장이 "법을 지켜야 할 행정기관이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마르투스 이명구

한편, 모든 순서를 마치고 주최(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 준비위원회) 측은 남은 사람들과 함께 시청 앞 재능교육 농성장으로 이동해 천막을 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대기하고 있던 경찰 병력에 의해 무산됐다.

"지난 26일 중구청은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농성장을 철거했습니다. 그때부터 전경차 1대가 24시간 대기하며 우리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철거 당시 현장을 지키고 있던 유명자 재능교육 노조 지부장이 억울함을 토로했다. 법을 지켜야 할 행정기관이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경찰버스 1대를 동원해 24시간 농성장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대한문 앞에서 시작한 부활절 연합예배는 재능교육 농성장에서 마지막 기도회를 진행하고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마무리됐다. 세 시간의 길었던 예배였지만, 100여 명의 사람들이 끝까지 남아 힘없고 고난받는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전했다.

▲ 부활절 예배 참가자들은 노동 가수 김성만과 함께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불렀다. ⓒ마르투스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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