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난주에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습니다. 지긋지긋하게도 후원을 또 요청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는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을 읽고 이메일과 댓글로 격려해 주신 분도 계셨고, 전화로 길게 대화를 나눈 분도 계셨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후원 약정을 해 주신 분들이 짱입니다요.

여러분의 격려와 후원에 힘입어 뉴욕에 있는 기자는 LA를 잘 다녀왔습니다. 제가 바라는 정도로 정보를 풍성하게 확보하지 못해서 야단을 좀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허탕만 치고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취재한 내용들은 앞으로 두고두고 쓸 일이 있을 것입니다. Ph. D. 표절, D. Min. 표절, 설마 이것이 전부이겠습니까.

며칠 동안 후원을 약정하시거나 바로 후원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중간보고(결산보고가 절대 아닙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를 드리는 것이 도리다 싶어서 지난 주말에 책상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서 망설이다가 글을 쓰지 못한 채 일주일을 넘겼고, 이번 주말에 다시 책상에 앉았지만 똑같은 고민에 잠겼습니다.

그동안 40여 명이 적게는 1만 원에서 많게는 20만 원까지 매월 정기적으로 후원하겠다고 약정하셨습니다. 총 110만 원 정도입니다. 또 70여 명이 적게는 1만 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까지 일시불로 후원하겠다고 약정하셨습니다. 총 1000만 원 정도입니다. 그중에는 매월 1만 원씩 후원하다가 5만 원으로 통 크게 500% 증액해 주신 분도 있습니다. 해외에서 입금 방법을 문의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전체 후원 액수를 월평균으로 나누니까 대략 200만 원입니다. 매월 500만 원 정도 조금 더 필요한데, 40% 가까이를 며칠 사이에 채워 주신 것입니다. 엄청난 격려와 지지를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갈 길이 아직 멉니다. 그래 봐야 150만 원 수준의 봉급을 유지하는 정도입니다. 저희가 더 풍족하고 배부르게 살려고 후원에 목을 매지는 않습니다. 13년 동안 그렇게 살았듯이 앞으로도 가난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생존이 저희의 존재 목적이 아니고, 연명이 후원의 이유가 아닙니다.

하지만 더욱 양질의 기사로 한국교회를 개혁하는 데 기여하려면 지금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양질의 기사를 쓰려면 기자들의 경력이 더 쌓이고 훈련을 더 많이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 예리하고 날카로우면서도 깊이 있게 비판하고 대안을 생산하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 안정이 필수 조건입니다.

많은 교계 언론들이 교권의 눈치를 보고 금권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언론들이 한국교회를 망가뜨리는 주범은 아닐지라도 공범 혐의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금권과 교권으로부터 독립한 대안 언론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13년 동안 그 정신은 변질되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혹독하지만 각별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이처럼 정신력으로 버티었습니다. 하지만 단기전에는 정신력이 효과적일지 몰라도 장기전에서 이기려면 체력이 필수적입니다. 체력을 보강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여러분에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제가 쓴 글을 읽은 사랑의교회 교인 중 한 분이 제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자기가 교인들에게 후원 요청 글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영향력이 작지 않은 분이기에 그분이 나서면 반향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의 계산은 저도 할 줄 압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사양했습니다. <뉴스앤조이>를 읽는 분들에게 제가 직접 호소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오늘까지 고민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새벽, 사랑의교회 교인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 어느 교인이 '장기전에 대비하는 방안의 하나로, 뉴스앤조이 후원을 제안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쓰셨습니다. 실제로 며칠 동안 몇 분이 후원 약정을 하셨습니다. <뉴스앤조이>를 후원해 주신다는 마음은 감사한데, 그 전에 후원의 의미를 충분히 공감하고 공유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조금 서둘러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가 그분의 제안을 사양한 이유, 그리고 이 글에서 말하려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선, 본질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저희도 오해를 받고 교인들도 역공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습니다. 무수한 거짓말을 Ctrl+C(복사하기)해서 Ctrl+V(붙여 넣기)를 하고 있으니, 무슨 말이든 지어내지 않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오정현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를 보니, <뉴스앤조이>를 이단 사이비, 지라시, 사랑의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만든 매체 등 온갖 비방 글이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랑의교회는 이 땅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억장 무너지도록 마음 아픈 현실을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저희가 교회 이슈를 터뜨리고 한쪽 교인들의 주목을 끌어서 그들의 지지를 받은 다음 주머니를 노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싫습니다. 대형 교회 사건이 터지면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촌지를 노리는 사이비 언론들이 교계에 얼마나 많은지 여러분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아마 조만간 등장할 것입니다. 그들과 똑같은 취급을 당하기에는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2009년 8월에 복귀해서 보니 사랑의교회로부터 매월 50만 원씩 후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는 개미 코딱지 수준이겠지만, 저희로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11월부터 건축 문제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고, 그 즉시 후원이 끊긴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의 교회 헌금 수십억 원 횡령 사건의 경우는 그해 9월부터 지금까지 지겹도록 써 오고 있습니다. 그 교회도 그때까지 매월 50만 원씩 후원하다가 이내 끊었습니다. 졸지에 매월 100만 원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비일비재합니다.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고액 후원 싹둑 잘라내는 글재주가 있다는 칭찬은 좀 듣는 편입니다.

저희는 마치 더 이상 후원하지 말라고 압력이라도 넣는 양 망설임 없이 기사를 썼습니다. 저희를 후원해 주는 상대라도 흔들림 없이 비판 기사를 썼고, 후원해 주지 않는다 해서 앙갚음을 하거나 보복성 기사를 써 본 적이 없습니다. 저희가 너무 과격하고 거칠고 편향되다는 비판은 받지만, 돈 주면 안 쓰고 돈 안 주면 쓴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연전에 저희를 음해하는 단체가 '후원금 횡령'이니 '탈세'니 하면서 검찰과 국세청에 고발한 적이 있고, 이단 옹호 언론이 얼씨구나 하면서 저희를 비난하는 글들을 난사했습니다. 국세청에서 장부를 다 압수해서 일주일 동안 조사한 결과 무혐의 처리가 되었습니다. 검찰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데가 어디 있느냐는 속설이 무색해지도록 떳떳하게 보여 줄 수 있는 곳이 한국교회에 몇 군데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정신으로 버티어 왔는데, 돈 뜯어내는 언론처럼 비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사랑의교회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각성으로,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뉴스앤조이>가 꼭 필요하구나, 살아 있어야 하는구나, 더 잘해야 하는구나', 이런 마음으로 각자 알아서 후원해 주실 때를 기다리겠다고 그분에게 답했습니다.

제자교회 담임목사 횡령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보도했을 때, 교인들도 '<뉴스앤조이>가 아니었으면 횡령 목사가 감옥에 가는 결과가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고마워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희가 아니어도 범죄를 저질렀으면 벌을 받는 것이 세상의 상식입니다. 다만 저희가 진실을 알리는 스피커 역할을 했고, 그것이 교인들에게 격려가 되었겠지요.

제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말로만 고마워하고 물질로는 고마워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후원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라면, '하나님께 마음으로만 감사하지 말고 물질로 감사하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하고 설교할 텐데, 저희마저 그런 사기를 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교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면 <뉴스앤조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참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기대도 안 하고 믿지도 않습니다. 그런 공수표를 13년 동안 받을 만큼 받아 보았습니다. 저희 보도를 통해서 문제가 해결된 교회들 중에서 진짜 나중에 도와준 교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만약 약속대로 되었다면 저희는 5년 전에 이미 빌딩 하나를 샀지, 건물 주인이 해마다 임대료를 올릴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지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분들의 마음은 고맙게 받아들이지만, 말은 믿지 않습니다.

왜 그런 말이 공수표가 될까요. 싸움의 목표와 목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분쟁에서 진짜 싸움 대상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의 왜곡된 신앙입니다. 이 싸움의 승리는 상대방을 쫓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잘못되어 왔던 내 신앙을 바로 세우는 것, 이것이 바로 싸움의 본질이고, 거기서 승리해야 합니다.

제가 매주 고정으로 출연하는 CBS TV '크리스천 NOW'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몇 주 전에 제자교회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녹화를 끝낸 다음 우연히 그 교회 교인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서 영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교인들끼리 고성을 지르면서 싸우는데, 장로 한 분이 집사에게 반말을 하면서, '장로에게 대든다'고 야단치는 장면이었습니다. 무소불위와 절대 권력을 누리다가 부패하여 교회가 파탄되게 만든 목사와 싸우는 분의 입에서 '장로에게'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목사와는 치열하게 싸우지만, 자기와의 싸움에는 소홀하구나" 생각했습니다. 녹화 전에 보았다면 방송 때 한마디 일침을 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 사랑의교회 문제를 방송할 때 이렇게 마무리 발언을 했습니다. "한 목회자가 인간의 욕망을 소명으로 포장해서 하나님을 이용해 자기를 드높이는 것은 영적인 범죄행위입니다.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교회 교인들이 '사랑의교회'니 '제자 훈련'이니 하는 브랜드에 자기 욕망을 투영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욕망과 욕망이 만나 이런 결과를 빚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욕망을 이번 기회에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목사를 쫓아냈다고 해서 진정한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닙니다. 설령 목사에게 되치기를 당해서 내가 쫓겨난다 하더라도, 이러한 싸움을 통해서 나의 잘못된 신앙을 깨닫고 다시 일으켜 세운다면, 내쫓김이 진정한 승리이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부패한 목사를 쫓아낸 다음 승리한 사람들끼리 자기 의에 빠져서 논공행상을 하면서 분열하고 더 심하게 찢어지고 심지어 신앙을 내다 버리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상대와의 싸움에만 골몰하다가 자기 자신의 싸움에서 패배한 경우는 조금의 예외도 없이 더 처참하게 망가지는 것을 쉽게 목격합니다.

그렇게 상대와의 싸움에서만 이긴 분들은 <뉴스앤조이>를 후원하지 않습니다.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비록 상대와의 싸움에서 졌더라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분들은 저희를 후원하십니다. 그분이 다시 변하거나 저희가 변질되지 않는 한 10년 넘게 '묻지 마 후원'을 해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승리는 돈으로 비교할 수 없는 값비싼 은혜이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믿음의 해방과 자유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들을 통해서 저희를 지금까지 책임져 주셨습니다.

저희를 후원하는 분들이 아직 2000명이 조금 덜 됩니다. 저희 이사들께서는 7000명을 목표로 삼자고 하셨습니다. 그건 제 나이 70이 될 때까지 달성 불가능한 숫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그렇습니다. 엘리야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7000명을 숨겨 놓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한국교회에 7000명이 어디 있나, 2000명도 기적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뉴스앤조이> 홈페이지 맨 아래를 보시면 '목표 2000명'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 정도 믿음밖에 없어서 죄송합니다.

여기서 2000명, 7000명이 무슨 의미입니까. 겉으로는 상대에게 지더라도 속으로 자기에게 이기려고 몸부림치는 분들이 7000명까지 되고, 그런 분들이 <뉴스앤조이>를 후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자기 쪽을 편들기 때문에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싸움을 함께 싸우고 함께 승리하기를 꿈꾸는 분들이 후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들을 '후원자'라고 부르지 않고 '길동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욕망과 집착과 미련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예수님이 가셨던 그 길을 올곧게 걸어가려고 몸부림치는 이들이 서로서로 길동무가 될 수 있도록 만나는 가교 역할을 <뉴스앤조이>가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의교회든 제자교회든, 사람의 제자 목사의 제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많은 분들이 길동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분들이 7000명이 된다면 한국교회에 정말 희망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희망을 찾을 것이 아니라 희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너무 낭만적이지요? 이런 낭만 덕분에, 때로는 비틀거릴지언정 궤도에서 완전히 탈선하지 않고 꾸역꾸역 견디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런 저의 낭만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남들에게는 그저 낭만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낭만적인 믿음의 길동무', 느낌이 괜찮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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