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

"할머니, 귀여워!!"
"할머니가 뭐가 귀여워?"
"할머니가 많이 좋아, 우리 또 인형극 보러 가자!!"

 
▲ 귀여운 꿈나무들. (사진 제공 국인남)

지난주 딸아이가 둘째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큰아이인 32개월 된 손녀딸과 함께 지낸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어 놀다 보니 아이에게 귀엽다는 말도 듣는다. 고된 노동에 임하면서도 아이 재롱에 녹는다.

첫째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 곁을 떠나왔기에 해질녘이면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잠자리에 들어서면 이불을 껴안고 눈물을 삼킨다. 삼킨 눈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면 목메어 울기 시작한다.

"흑~흑~흑!!, 으~아앙!!"

애처로운 그 모습을 보면서 결국 나도 운다. 지금 저 아이에게 엄마는 생명줄 아닌가. 그 생명선이 잠시 단절되었으니 아이는 죽을 지경이다.

잠시라도 위로가 될 것 같아서 아이를 데리고 인형극을 보러 갔다. 아이는 겁먹은 얼굴로 내 손을 꼭 잡고 열중했다. 나도 함께 손뼉 치고 춤추며 네 살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혀를 짧게 굴리며 어눌한 4살짜리 흉내를 냈다.

튼튼 아저씨가 튼튼해~~
엉덩이를 씰룩 씰~룩
튼튼 아저씨는 튼튼해~

여기저기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을 보면서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난 것 같다. "할머니 엄마!! 무서워, 깜깜해!!" 조명등이 꺼지자 나를 향해 '할머니 엄마'라 불렀다.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 주위를 살피더니 내 품에 꼭 안겼다.

# 둘

과거 젊은 시절에 "나는 절대로 손자 손녀는 봐 주지 않을 거야, 내 일도 바쁘고 나도 힘든데 왜 애들을 봐 줘야 해"라는 논리로 살았다. 가끔 손자 손녀를 데리고 공공장소에 오거나 교회에 오는 사람들을 볼 때 주책없어 보였다. 교회가 어린이집도 아니고 놀이터도 아닌데.

정말 그때는 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였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처지가 바뀌니 과거의 나는 간 곳이 없다. 저 어린 생명들이 하나님의 선물로 다가오며 감사의 열매로 풍성하기만 했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겪어 보지 않고서는 정확한 답을 말할 수가 없나 보다. 말은 말로서 끝나며 그때그때 변하는 팔색조인 것 같다. 그러나 행동은 행함으로만이 답이 되는 것을 알았다. 믿음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신을 치장하는 장식품이다.

지금 나는 딸네 집에서 극기 훈련 중이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딸과 갓난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내 스스로 전형적인 대한민국 친정 엄마의 자리에 앉았다.

# 셋

큰 아이는 갑자기 나타난 엄마가 마냥 반가웠다. 그러나 엄마 품에는 낯선 아이가 안겨 있다. 엄마의 품을 빼앗긴 큰 아이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투정을 부리고 이유 없이 슬피 운다. 빼앗긴 사랑 때문에.

그토록 기다렸던 엄마, 눈물을 삼키며 엄마만 기다렸는데, 엄마는 다른 아이를 안고 들어왔다. "엄마 품에는 내가 안겨야 하는데…." 입을 삐죽거리며 서운함을 나타낸다. 아이의 허전함을 달래 주고 미역국 준비, 빨래, 시장으로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조건 없는 노동에 시달린다.

잠시 거울 속 자신을 본다. 며칠 사이에 주름이 깊어졌다. 세수할 시간, 머리 빗을 시간도 없다. 한마디로 인생 훅 가는 소리가 절로 난다.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 나의 모습은 또 무엇인가? 그때의 나는 누구이고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이가 나를 부른다.

"할머니, 나 쉬 마려워!!"
"응, 그래 아이고 우리 다애 착하다."
"할머니도 같이 쉬하자!!"
"응, 그래 어디 앉을까?"

응아도, 쉬아도 손녀딸과 함께하며 4살 아이가 되어 함께 뒹군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의 나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친정 엄마' 자리로 내려앉았다.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이 삶이고, 이것이 거저 주어야 할 사랑이기에.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