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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생명 농부' 원경선 선생님 흙으로
'소유' 대신 '나눔'의 무소유 공동체 운동 추구한 분
  • 류기석 (jebo@newsnjoy.or.kr)
  • 승인 2013.01.10 12:46

   
▲ 원경선 선생님은 풀무원 공동체에서 '날마다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농사를 짓는 농사꾼 전도사'로서 생명을 살리는 '바른 농사'를 실천했다. (사진 제공 류기석)

오늘 아침 비통한 소식을 접했다. 대한민국 생명 농부의 원조 원경선(향년 100세) 선생님이 별세한 것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의 김중권(정농회장)·원혜덕 선생님 댁에서 뵙고 예배도 함께 드렸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원경선 선생님은 생명을 사랑하는 농사꾼이자 땅을 살리고 올바른 먹거리를 위한 농사, 이웃과 함께 공동체 일구기를 즐기고 바랐던 분이다. 99세의 연세에 비해 아직도 정정한 비결인 현미식을 즐기고 있음을 항상 자랑으로 여기셨는데 말이다.

원경선 선생님은 1997년 겨울, 하루를 살아도 자연과 더불어 생태적 가치와 자립하는 삶으로 귀농하려고 준비하는 단계에서 만났다. 장소는 정직하게 농사를 짓는 기독교인들의 모임인 '정농회' 정기 모임 장소인 경기도 양주 풀무원 공동체다.

그는 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번동리 황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였기에 가족들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늘 굶주림 속에서 시달렸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세상 사람이 인정하는 술고래였기에 집안엔 편할 날이 없었고, 결국 아버지는 선조들의 손바닥만 한 땅뙈기마저 빼앗기고 반 거지 신세로 황해도로 이사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고작 11세 되던 해였다.

아버지는 당시 소 두 마리 값인 40원의 빚을 고스란히 가족에게 안기고는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삶을 지탱하여 준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다고 고백했던 음성이 귓가에 생생히 남는다. 어린 시절 아이들과 무작정 교회당 종소리에 이끌리어 생애 첫 예배를 드린 일,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 아버지, 주님, 예수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모든 사람이 미쳤다고 생각했었다고도 회고했다.

술 먹고 가산을 몽땅 탕진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그러나 또 다른 보이지 않는 대상의 '아버지'를 체험하면서 그것이 하나님께로 이끌림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 말씀을 마치시고 당시를 회상하는 듯 "내 뜻대로 된 것은 없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제나 이끌어 주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다르다"는 말씀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길을 하나님께서 높은 곳에서 보시고 미리 예비해 주신 것 같다고 회고했던 1년 전의 원경선 선생님이 눈앞에 선하다.

   
▲ 1997년 겨울, 나는 귀농을 준비하며 원경선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사진은 2011년 포천에서 원경선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제공 류기석)

1953년 맨손으로 모은 돈을 가지고 부천시 소사동에 1만 평의 농장을 마련, 열심히 농사지으며 젊은이들과 스스로 자립하는 생활을 하면서 김포공항 인근 미군부대(군목)와의 인연으로 하우스보이를 데려와 한 식구가 된 것이 공동체를 이루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때 '풀무원'이라는 말이 처음 생긴 것으로,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삶의 터를 제공한 것이 풀무원 공동체의 발단이 된 것이다.

풀무원 공동체에서 '날마다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농사를 짓는 농사꾼 전도사'로서 생명을 살리는 '바른 농사'를 실천했다. 그의 유기농 개념은 일본의 '애농회'라는 단체의 영향이 컸다. 당시 정부는 생산량을 늘려 가며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독려하던 시기였는데, 이러한 방식이 되레 땅을 죽이는 '독약'이라는 내용에 그는 말 못할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얼마 후 미국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일본을 찾아 '애농회'를 이끌던 '고다니 준이치'를 만난 것이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마련했다.

그로부터 살아있는 생명들을 지키려면 유기농 밖에 없다는 확신을 깨닫고 필생의 과업인 유기농에 매달렸다. 이 때 '정농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졌고, 3년간의 고투 끝에 유기농을 성공시켰던 그는 아들을 시켜 서울 압구정동에 가게를 낸 것이 지금 풀무원 식품의 효시라고 한다.

부천의 풀무원 공동체는 1975년까지 계속됐다가 정농회 공동체 텃밭이 1976년 경기도 양주로 옮겨진 후 우리나라 유기농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로부터 부천 풀무원에서 양주 한삶회로 이어지고 또다시 괴산 청천의 '평화원마을'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원경선 선생님 뒤에는 언제나 나서지 않으시고 풀처럼 나무처럼 싱그럽게 살다가 돌아가신 부인 지명희 님도 우리사회의 위대한 어머니로 반드시 기억해야 될 분이다.

마지막까지 넷째 따님이 살고 있는 포천과 병원을 오갔던 원경선 선생님…언제나 찾아오는 손님들을 반기고, 귀가 잘 들리지가 않아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사리판단은 분명해서 말씀 전해주기를 좋아하셨는데…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원경선 선생님은 '나눔과 비움'의 신념을 간직하고 이웃 사랑, 생명 사랑을 실천한 분으로 우리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사진은 2010년 찍은 사랑방교회 모닥불사랑방 식구들과 원경선 선생님. (사진 제공 류기석)

그는 지금까지 큰 상 4개를 받았는데, 1992년 녹색인상과 1995년 UN글로벌500상 그리고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 2009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창립 20주년 기념 공로패 등이다. 특히 글로벌500상은 유기농 생명 사업에 평생을 바쳐 온 원경선 님에게 의미가 크다. 지구 살리기와 환경보호에 앞장선 사람과 단체에 주는 글로벌500상은 환경 분야의 노벨상으로 통한다.

아름다운 농부 원경선 선생님은 '나눔과 비움'의 신념을 간직하고 살면서 시험에 걸릴 때 마다 어김없이 '소유나 집착의 허망함'을 버린 즉, '소유' 대신 '나눔'의 무소유 평화 공동체를 추구하면서 이웃 사랑, 생명 사랑에 대한 역사를 이끌어 오신 분으로 우리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02-3410-6915)이며, 장지는 인천시 강화군 파라다이스 추모원. 영결식은 10일 오전 9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다. 가족으로는 장남 혜영, 차남 혜석, 장녀 혜옥, 차녀 혜진, 삼녀 혜주, 사녀 혜덕, 오녀 혜경 등이 있다.

류기석 / <당당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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