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박근혜 당선인을 순수하게 여성으로 볼 수 있는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어쨌든 생물학적 여성이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회는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일 만큼 의식이 바뀐 셈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교계의 남녀평등 의식 수준은 부끄러울 만큼 낮습니다. 저는 2년 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총회를 취재하러 가서 총대들에게 한 번도 '기자'라는 호칭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저를 부르는 첫마디는 '아가씨'였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는 간사로 불렸습니다. 카메라와 취재 수첩을 들고 인터뷰해도 목회자나 장로들은 아가씨나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성희롱을 당하는 일도 있습니다. 한 여기자는 여성이라고는 자신밖에 없는 장소에서 목사들이 들으라는 듯이 성적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시덕거리는 시간을 버텨야 했습니다. 취재원이 건넨 돈 봉투를 거절하자, "그러면 데이트를 해 줘야 하나?" 하는 말을 들은 기자도 있죠. 당황한 여기자는 깔깔대며 웃는 목사들을 뒤로한 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도망치듯 현장을 나왔습니다.

서글픈 건 여성을 차별하는 의식과 태도가 교회 개혁을 표방하는 우리 회사 안에도 있다는 겁니다. 정준모 예장합동 총회장이 노래방 도우미와 함께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을 무렵, 성 접대를 주제로 수다를 떤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남성 기자가 "목사들이 아줌마를 부르는 건 그래도 봐 줄 만한데, 어린 아가씨를 부르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여성을 결혼 여부와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하는, 돈을 주고 여성을 사는 목회자의 의식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발언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자는 나이가 많으면 안 된다느니, 연애 좀 해서 부드러워지라느니 따위의 말, 외모를 지적하는 말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딱 한 번을 빼고 취재 현장이나 회사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웃고 애매한 대답으로 순간을 넘기거나 침묵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가부장적 관점에서 스스로 검열하고 있는 거죠.

저를 아가씨, 자매로 불렀던 사람 중에 많은 이가 박근혜 당선자를 지지했겠죠. 여성 대통령을 뽑은 분들이 이제는 여기자를 대하는 태도를 좀 바꾸실까요. 성추행 목회자를 비판하고, 여성 목사 안수를 지지하는 기사를 쓰는 남성 기자들이 올해는 일상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 줄까요. 저는 당당하게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을까요.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등장했다고 호들갑 떠는 세상에서 조용히 질문을 던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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