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멘토링사역원이 2013년 2월 4~6일 제1회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를 경기도 가평 필그림하우스에서 개최합니다. 건강한 목회를 꿈꾸는 100명의 예비 목회자들과 2박 3일 동안 먹고 마시고 웃고 울며, 교회란 무엇이고 목회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려고 합니다. 컨퍼런스에 멘토로 참여하는 목회자들을 <뉴스앤조이>가 미리 만나 봤습니다. - 편집자 주

인천 계산동 해인교회의 김영선 목사는 제1회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멘토 가운데 유일한 여성 목회자다. 2004년부터 해인교회 담임목사를 맡아 온 김 목사는, 그의 남편인 이준모 목사(기독교사회적기업지원센터 총괄본부장)와 격주씩 번갈아 가며 주일예배 설교를 하고 있다. 원래 이 목사가 담임이었지만, 한국기독교장로회 복지선교부 일을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김 목사가 시무하게 됐다.

제1회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 참가와 관련해 김 목사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신학생을 만나게 돼 기쁘다. 또 여러 목사님을 볼 기회여서 거는 기대가 크다"고 반가워했다. 집회 형식이 아닌 질의응답과 소그룹, 자유로운 대화로 진행되는 컨퍼런스 방식에 만족감을 드러낸 김 목사는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가 이벤트성 행사가 아닌 지속적인 사업으로 발돋움하길 바란다"고 했다.

▲ 제1회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 참가와 관련해 김 목사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신학생을 만나게 돼 기쁘다. 또 여러 목사님을 볼 기회여서 거는 기대가 크다"고 반가워했다. ⓒ뉴스앤조이 유재홍

숙명여대와 감리교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한 김 목사는 애초 목사가 될 생각이 없었다.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다 이 목사를 따라 한국기독교장로회로 이명했고, 조직 교회로 변모한 해인교회의 첫 여성 담임목사가 됐다.

김 목사는 꾸준히 가정 상담을 하고 현장 경험을 토대로 목회상담학을 공부해 이론적으로도 정리한 경험을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에서 전해 주고 싶다고 했다. 김 목사는 "목회자는 상담을 통해서 사람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게 필요하다. 상담을 통해 내담자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목회의 길을 걷기로 한 신학생들을 향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김 목사는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제도화된 한국교회로 들어가는 것"이라면서, 제도권 안에서 획일화의 구심력에 빠지지 말고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제도화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신학생들이 다양성을 추구하고, 때로는 모험심을 가지고 새로운 목회 형태를 찾아 도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여성 신학생들을 향한 조언도 덧붙였다. 김 목사는 "여성 신학생들이 목회자가 되기로 했다면, 자신 있게 밀고 나가라"고 주문했다. 대개 목회자가 되는 것보다 한 목사의 아내이자 사모로 사는 여성 신학생들이 많다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그는 목회 사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서 "결혼의 여부와 상관없고,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은 중요치 않다"고 했다. 한편으로 김 목사는 "부부가 목사인 경우가 있는데 여 목사가 사모로 남는 경우가 많다"면서 "동역 목회가 인정되는 법이 만들어지길 소망한다"고 했다.

지역사회 섬기는 해인교회

해인교회가 기독교 사회복지를 실현한 시기는 IMF가 터진 1997년 말 즈음이다. 교인 1/3이 실직하는 등 침체기를 겪자, 교회는 '실직자를 위한 기도회'를 시작했다. 기도회 이후 교인 상당수가 재취업에 성공했고, 여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실직자를 위한 자활 및 쉼터'를 진행했다. 이는 훗날 사단법인 '인천내일을여는집'으로 성장했고, 노숙인 쉼터, 쪽방 상담소, 공부방 등의 사업으로 이어졌다.

▲ 김 목사는 "목회자는 상담을 통해서 사람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게 필요하다. 상담을 통해 내담자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유재홍

김 목사가 섬기는 해인교회는 '해방 인간', '해방 인천'이라는 뜻을 담아 1986년 노동자들이 세웠다. 영성의 갈급함을 느낀 노동자들이 자비를 모아 목회자를 청빙해 왔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해인교회는, 1994년 이준모 목사가 부임하며 변화의 바람도 함께 불어왔다. 이 목사는 민중 선교를 지향하며, 지역사회를 위한 사업들을 하나둘 시행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위한 '내일을위한여성의집'도 세웠다. 가정 폭력 피해 여성과 오갈 곳 없는 여성을 위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아이들을 포함해 여성 17명이 함께 지내고 있다. '자활'을 기치로 내건 노숙인 쉼터도 운영하고 있다. 규칙적인 생활과 '무조건' 취업 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갖게 돼 있기 때문에 부랑 노숙인은 들어갈 수 없다. 약 40여 명의 노숙인이 함께 지내고 있다. 사업 시행 초반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노숙인들이 음주·폭행으로 경찰서에 자주 드나들면서 김 목사 내외도 덩달아 따라다녀야만 했다. 김 목사는 "다행히 지금은 잘 정착해 이 같은 문제는 거의 없다"면서 "노숙인들은 수요 예배와 주일예배에 참석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해인교회는 지역 노인을 위한 무료 급식을 14년째 이어 오고 있고, 노인을 위한 일자리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노인을 위한 일자리 사업은 무료 급식을 하던 중 한 노인이 "밥만 주지 말고, 일자리도 달라"는 요청에서 비롯했다. 이준모 목사가 노인들의 일자리를 지원하는 시니어클럽을 만들었고, 현재 해인교회와 연계된 600여 명의 노인이 일자리를 갖게 됐다. 이들은 지역 아동 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봉투와 볼펜 조립, 택배, 식당 등에서 일을 한다. 김 목사는 "어르신들이 용돈 수준의 급여를 받아가서 죄송할 따름이다"고 말했지만, "정작 어르신들은 '좋다, 고맙다'고 한다"고 전했다.

사회복지와 선교를 병행하고 있는 만큼 애로 사항도 적지 않다고 김 목사는 고백했다. 그는 "인천에 노숙인 센터 5곳 중 4곳을 교회에서 운영했다. 그러나 몇 년 못 가 모두 문을 닫았다"면서 "결국 '힘이 들어' 문을 닫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영적 싸움"이라고 밝힌 김 목사는 "경제적인 어려움 등의 문제는 기도하는 가운데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