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당신이 좋아> / 김병년 지음 / IVP 펴냄 / 196쪽 / 8000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가족의 고통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 고통이 '진행형'일 때는 위로하기도 바라보기도 외면하기도 참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인생에는 즐거움과 슬픔이 함께하고, 행복과 불행이 함께한다. 누군가 고통을 당할 때, 기독교인들은 쉽게 단정하기도 하고 판단하기도 한다. 이것은 일상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심각한 신학적 난제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21세기 욥의 자서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신앙적으로 난관을 적극적인 사고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기적적으로' 극복했다는 최근의 '흔한' 이야기가 아니다. 혹은 그로 인해 큰 회개와 시련을 겪었으나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는 '전통적인' 성공담도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당황은 우리의 당황이기도 하고 저자의 당황이기도 하고 주변인들의 당황이기도 하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독자들이 직접 이 책을 통해 알아보기를 바란다.

다만, 나는 이 서평을 통하여 고난과 고통의 문제에 대한 저자의 깊은 통찰과 영성의 문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얇은 책이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신앙인이 겪는 고난과 고통에 관한 현대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어느 날 갑자기 단란했던 목회자 가정에 닥친 고난, 아내의 돌이킬 수 없는 뇌경색(腦硬塞), 그로 인한 식물인간 상태-현재는 손가락과 눈썹의 움직임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상황에 빠지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완치되고 회복되기를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가족에게 닥친 '돌이킬 수 없는' 고통. 사람이 다치면 아픈데, 그 아픔을 무시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도 신앙적인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기에게 닥친 고통의 원인인 고난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더 나은 단계로 이르게 하는 필요악이나 하나의 시험으로 여기는 것도 문제다.

사람들은 우리의 삶에 닥치는 다양한 '고난'의 정확한 원인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쓰거나 의심하거나 정죄하는 일에 쉽게 참여하기도 한다. 욥의 친구들처럼 숨겨진 죄를 찾아 헤매는 '영적인' 수사관을 자인하기도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감기와 같은 사소한 질병이나 선천적 혹은 후천적 영구 장애에 대해서는 영적으로 '관대한' 편이나, 암이나 불치병에 대해서는 영적으로 '냉혹한' 편이다. 기적적인 완치를 위한 신앙을 통한 초인적인 노력을 유일한 신앙행위로 요구하기도 한다. 약이나 병원을 멀리하고 기도원에 들어가 사생결단으로 매달리거나 치유 은사 집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오직 믿음'의 (실패한) 해결책으로 인한 씻을 수 없는 신앙적 상처를 받거나 회의론자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고난의 존재를 인정하고 슬퍼하며 울며 탄식하였다. 여전히 고난이 저자의 가족에게 있지만, 이제 그는 고통을 받아들였고 고통을 이겨 나갔다. 중간에 여러 가지 회의도 겪었지만(참조, 138페이지 이하), 그는 비록 고난을 빗겨가거나 극복하지 못했지만, 결국 고통을 이겨 갔다. 욥과 그의 친구들의 질문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이해 불가능의 존재로 남아 계신다. 비록 욥처럼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고난 가운데 있으나 고통을 이겨 내는 사람들은 나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재발견하게 되고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이 되게 만든다. 하나님에 대한 재인식으로 '회개'하는 것이다. 감사는 경험적으로 등장하는 거지, 평안과 위로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 되뇌는 내용도 알지 못하는 '염불'이 되지 말아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하나님은 개인에게 임한 고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고난과 함께함으로써 고통을 극복하게 하신다.

고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진정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고통을 주시는 분인가? 함께 아파하시고 동참하시는 분인가? 고난을 당하는 자는 현실을 수용하고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하나님 안에서 찾는다. 그것은 기적일 수 있지만, 기적이 아닐 수도 있다. 광야 생활과 같이 느린 치유나 변함없는 상태도 가능하다는 것을 수용할 필요도 있다. 게다가 예수의 생애 심지어 엘리야-엘리사의 생애 속에서 모든 사람이 고침을 받고 모든 사람이 온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병들어 죽은 나사로는 살아났지만, 예수를 믿었던 많은 사람들은 병들거나 나이가 들거나 순교하거나 그 여하한의 이유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에게 크고 작은 질병과 어려움과 사고가 발생한다. 감당하기 쉬운 것들은 간과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신학적인 혹은 영적인 '조사(investigation)'가 들어간다. 원인은 다른 사람의 과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과로나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도 있고, 가족력일 수도 있고, 자연과 사회적 환경 탓일 수도 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거나 실제적인 도움을 얻어 완화시킬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손을 보아야 할 것도 있다. 아직 의학적으로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불치의 질병이라 하더라도,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하고 친구가 되어 주는 것만으로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는 것도 있다.

이 책을 통하여 한 가족에게 임한 고난과 고통은 단지 우리의 '유익'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또한 이러한 일이 '극복된' 체험 신앙의 중요한 레퍼토리로 남아서도 안 된다. 오히려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대부분의 신앙인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고난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고통을 수용하며 나누고 함께 하는 것만이 신앙인의 본문이라는 것을 배운다(특히 161페이지 이하를 참조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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