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는 박용규 교수는 20년 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시한부 종말론에 대한 신학적 평가를 내놓았다. 박 교수는 "이단의 전성시대를 맞아 한국교회가 지난 역사를 깊이 반성하고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1992년 10월 28일 밤. 전국 166개 교회 8000여 명의 다미선교회 교인이 흰옷을 입고 모여 휴거를 기대하며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약속 시점인 자정이 되어도 예수가 재림하거나 신도들이 공중에 들려 올라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휴거론 장본인 이장림 목사는 사기 혐의로 구속됐고, 신도들은 이혼과 가출, 직장 포기 등 개인적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렇듯 세기말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시한부 종말론은 한국교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시민들은 교회에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고, 교회는 재림을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그런 상황을 틈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등 이단들은 다른 형태의 왜곡된 종말론으로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는 박용규 교수는 다미선교회 재림론 사건 20년을 맞아 '1992년 10월 28일 재림론 20년, 비평적 평가'라는 글을 발표했다. 잘못된 재림론이 등장한 배경과 한국교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분석한 글이다. 박 교수는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단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위기의 시기를 맞아 지난 역사를 깊이 반성하고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7일 사랑의교회 1층 커피숍에서 박 교수를 만나 20년 전 재림론의 문제와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찰해야 할 지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박용규 교수는 지난 10월 25일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 다사랑에서 '1992년 10월 28일 재림론 20년, 비평적 평가'라는 글을 발표했다. (사진 제공 교회와신앙)

-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장림의 재림론을 비평하는 글을 발표했다.

"1991년 총신대 교수로 임용되었을 때, 학교 본관 앞에 'Jesus is coming'이라는 큰 글자가 적혀 있었다. 시한부 종말론이 기승을 부릴 때였다. 나는 한국교회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잘못된 종말론을 잘 연구하여 언젠가는 역사적으로 정리해야겠다는 소명 의식을 가졌다. 그래서 이장림의 책, 다미선교회에서 만든 전도지, 신문 스크랩 등의 자료를 모았다."

- 왜 하필 이장림의 재림론인가.

"재림론이 한국교회에 미친 파장이 너무 크다. 오늘날도 형태를 달리하여 또 다른 아류들이 한국교회 적잖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교회에 안에 '천국과 지옥'에 관한 간증이 범람하고 있고, 신천지·하나님의교회 등 이단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만성 목사는 여전히 시한부 재림론을 주장하고 있다."

- 시한부 종말론이나 천국과 지옥에 관한 간증이 범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들이 객관적인 성경의 기록보다는 기록되지 않은 부분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특히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과 그때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예수님 당대에 제자들도 그날과 그때에 관심을 보였다. 아울러 피부에 와 닿는 체험 신앙을 선호하다 보니 꿈과 환상을 통해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는 식의 간증이 인기를 끌게 된다."

- 20년 전 이장림의 재림론에 사람들이 매료됐던 이유는 무엇인가.

"세기말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관심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공존했다. 따라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 받는다는 이장림의 주장은 매력적인 도전이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학생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입시를 앞두고 시험공부에 찌든 학생들은 입시도 없고 도서관·기숙사 등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다는 천국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 이장림이 말하는 1994년 10월 28일 재림론의 근거가 무엇인가.

"직통 계시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꿈과 환상과 음성을 통해 받았다는 계시다. 이장림은 처음엔 40명, 나중에 70명이 모두 1992년 10월 재림론을 예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약시대와 사도 시대에 계시를 주신 하나님께서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때에 사랑하는 신부들에게 깨어 준비하도록 계시해 주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느냐'며 지금도 직접 계시가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장림은 이러한 직접 계시를 근거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EC 연합, 무화과나무 비유, 왜곡된 세대주의적 성경 해석 등을 덧붙이며 자신의 재림론을 합리화했다."

▲ 박용규 교수는 1992년 재림론이 있던 해부터 이장림에 관한 자료를 모으며 잘못된 재림론에 대한 연구 발표를 준비해 왔다. (사진 제공 교회와신앙)

- 신학적으로 이장림의 재림론은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잘못된 계시관이다. 기독교는 계시를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로 나누고 있다. 이장림이 주장하는 그날과 그때에 대한 적시는 직통 계시인데, 성경은 그러한 계시가 영속된다고 보지 않는다. 정경 확정 이후 추가된 계시를 말하면 이단이다. 이러한 잘못된 신학은 신천지, 신사도운동 등과도 맞물려 있다.

왜곡된 세대주의적 종말론도 문제다. 이장림은 소위 아이들이 받았다는 1992년 10월 28일 24시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세대주의적으로 도식화시켜 그 연도에 끼어 맞췄다. 인류의 역사를 7세대로 보는 세대주의 틀 안에서 구약 4000년, 신약 2000년, 천년왕국 1000년, 도합 7000년이라고 본다. 1992년 휴거는 천년왕국이 도래하는 1999년에서 대환란 7년을 뺀 결과다."

- 재림론이 한국교회에 끼친 부정적인 결과는 무엇인가.

"1992년부터 한국교회 교세가 급격히 감소했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완만한 성장을 하던 한국교회가 1992년에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이장림의 휴거는 KBS, MBC 등 주요 언론사에서 연일 생방송으로 보도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됐다. 믿지 않는 사람이 볼 때 재림론은 기독교와 동일시되었고, 가출, 학업 중단, 이혼 등 사회적 문제가 부각되며 기독교에 대한 일반인의 반감이 커졌다. 가장 큰 타격은 청소년에게서 일어났다. 부모들은 방송을 보며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려 하지 않았다.

아울러 휴거설 이후 반기독교적 정서가 확산됐고 교회 부패 이미지가 심화했다. 9월 24일 사기 혐의로 구속된 이장림의 집에서 34억 원 가량의 달러와 엔화 등이 발견되어 기독교는 종교를 빙자해서 이권을 챙기는 이미지로 비쳤다. 이때부터 주요 일간지나 방송도 기독교의 부정적 모습을 보도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 박 교수는 " 10월 28일 재림론은 양적 성장에 치우친 한국교회가 교인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 재림론을 교세 감소의 원인으로 볼 게 아니라 한국교회의 병폐가 잘못된 재림론으로 드러났다고 봐야 하지 않나.

"그렇다. 10월 28일 재림론은 양적 성장에 치우친 한국교회가 교인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그날과 그때는 모른다는 것과 특별 계시는 종료됐다는 점만 제대로 가르쳤어도 사람들이 재림론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병폐는 어떤 사건을 통해서 표출된다. 교회 내 다양한 병폐들이 있었고, 그 병폐들이 하나의 주목할 사건으로 표출한 것이 이장림의 재림론이다.

아울러 한국교회가 이단이 확산되는 데 직접 공조한 것은 아니지만 제 역할을 못함으로써 이단 확장을 방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단에 대해 한국교회가 단호히 맞섰다면 상황은 달랐을 거다. 몇몇 교단에서만 이장림에 관해 논의했지, 교파를 초월하여 연합 기구적인 차원에서 이장림에 대해 대처하지는 못했다."

- 이장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생긴 병폐는 무엇인가.

"이장림 재림론 이후 이단이 전성시대를 맞았다. 다락방의 류광수, 평강제일교회의 박윤식 문제가 뒤를 이었고 신천지가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일어나는 천국과 지옥 신드롬이나 베리칩 사건은 모두 재림론 이후에 발흥한 이단들이다.

교회 내부에서 발생한 병폐는 종말 설교의 실종이다. 종말론 신앙은 기독교 2000년의 역사에서 생명줄과 같다. 초대교회 제자들도 당대에 주님이 다시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님 맞을 준비를 했다. 또한 많은 선교사가 주님의 재림을 앞당기기 위해 천국 복음을 만방에 전파했다. 모두 재림 신앙으로 무장한 결과이다. 하지만 이장림의 재림론 사건 이후 종말론적 신앙이 무장해제되었다. 사단의 고도 전략에 넘어간 것이다."

- 시한부 종말론을 막기 위해 교회가 할 일은 무엇인가.

"교회가 재림에 관한 바른 신학을 가르쳐야 한다. 목회자들이 이단에 대해 우리 교회와는 별개로 생각하지 말고 이단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특히 재림과 관련하여 기독교는 그날과 그때에 관한 관심보다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잘 가르쳐야 한다. 이장림의 재림론 사건을 한국교회가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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