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간에 또 하나의 찬송가 출판 문제로 혼잡을 야기한 사건이 있었다. 이유는 가사 수정에 불만을 업고 이권을 노리는 출판사들과 소외당한 찬송가위원들의 소행에 교단들이 휘몰린 듯하다. 10년 걸려서 645장의 <21세기 찬송가>가 졸작으로 출판되었는데 어떻게 1, 2년 사이에 또 하나의 짝퉁 찬송가가 편집 출판될 수 있는지 아연질색이다. 찬송가공회에 속한 '기독교용어연구위원회'와 찬송가 음악 전문 편집위원들은 전문성이 미숙한 명예욕에 눈먼 이들인가? 교수나 작곡가라고 또는 교회음악사를 배웠다고 찬송가를 안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찬송가를 부를 수 있다고 찬송가를 아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편집한 645곡 찬송가를 분석한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성가대를 위한 송영들의 비중이 과다한 점은 회중을 위한 찬송가인지 목적이 의아하다.

그나마 찬송가 사용이 점점 미약해져 가는 현실에서 <21세기 찬송가>는 <통일 찬송가> 중에서 496곡과 한국 작가 찬송가 128곡, 그리고 새로 선택한 외국 찬송가 21곡만이 선택된 총 645곡으로 증판 편집되었다. <21세기 찬송가>가 젊은이들이 즐겨 부를 수 있는 찬송가들로 편집되었기를 기대했으나 옛 모습 그대로이며 그나마 은혜로운 찬송가는 다시 부를 수 없도록 삭제되고 말았다. 아마추어식의 찬송가공회는 새로이 탈바꿈하여 전문적인 찬송가 편집 기관이 교단의 인준하에 사설 전문 기관으로 탄생되어야만 한다.

<21세기 찬송가> 중에 '경배와 찬양'에 속해 있는 10곡 중에서 5곡만이 회중 찬송가로 인정받을 만하다. 세계 각국의 훌륭한 찬송가들이 한 곡도 편집되지 못한 이유는 찬송가에 문외한들이 찬송가 편찬위원들로 구성된 데 있다. 1200만 성도들을 위해 작가나 작곡가가 창조한 찬송가는 회중 찬송으로 불릴 때 '재창조'(recreate)의 영적 예술로 성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송가는 악보가 아니다. 악보는 Autographic Image(작가의 상징적 자필)인 것뿐이며 악보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감정과 느낌에서 영적 호흡이 있는 찬송으로 불릴 때 곧 '찬양하는 예술'(praising art)로 성화되는 것이다.

나는 현재 교회에서 <통일 찬송가>에 비해 <21세기 찬송가>들이 얼마나 불리고 있는지 통계를 집계 중에 있으며 11월경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통일 찬송가>가 1990년 미국 한인 교회들과 2003년 한국교회들이 지난 5년간 부른 통계를 작성하였다. 놀랍게도 어느 교회는 지난 5년 동안 47곡만 사용한 목회자가 있는가 하면 110곡을 예배에 사용한 목회자도 있다. 새 찬송가가 없어서 못 부르는 것도 아니다. 찬송가에 대한 무관심에 있다. 설교만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며 은혜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재미 한인 교회와 한국교회가 사용한 모두를 합한 통계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찬송가가 50곡에 달하며, 단 한 곡만 불린 찬송가는 21곡에 머물렀다. 한편 통일찬송가 중에서 재미 한인 교회는 123개의 찬송가를, 한국교회는 88개의 찬송가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문제는 새로 찬송가를 출판하는 데 있지 않으며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 찬송가를 소화하고 교인들에게 은혜의 찬송으로 예배를 인도하느냐에 있다. 찬송가를 아무리 훌륭한 목적으로 출판해도 부르는 찬송가는 제한적이다. 교인들만 경제적 부담을 갖는다. 진정으로 찬송가의 개혁을 원한다면 내 교회 지휘자, 내 식구 감싸기를 위하는 것을 포기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헌신적인 목표가 확실한 전문가의 지도 아래 사설 '찬송가편찬협회'를 인준하여야 할 것이다.

사설 '찬송가편찬협회'의 신설

목회자들의 찬송가 교육이 전제 조건으로 선행한다면
1. 국제적으로 출판해도 손색없는 새로운 찬송가를 교단별로 편집 출판할 것.
2. 모든 찬송가 가사의 통일을 주관하며 저작권을 관장함.
3. 한국 작곡가의 찬송은 <통일 찬송가> 중에서 가장 많이 불리고 있는 검증된 찬송가만을 편집할 것.
4. '편찬협회'는 우수한 한국 찬송가들을 해외로 홍보 수출 널리 보급할 것.
5. 해외 선교 국가에 해당하는 각국의 찬송가를 출판 찬송가 선교 운동에 적극 참여.
6. 교회음악을 전공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불하고 차세대의 한국교회 음악가들을 육성시킬 것.
7. 각 교단별 목회자 수련회와 영성 수련회 등에 '찬송가 바로 부르기' 연수 과정 설립.
8. 속도 표기는 일체 제거할 것.
9. 기타 코드를 삭제할 것.
10. 각양각색의 찬송 성경의 출판을 금지할 것.

찬송가는 각 교단별로 출판

통일된 하나의 찬송가가 필요한지는 재검토되어야만 한다. 출판으로 오는 이권과 혼란을 덜기 위해 교단별로 출판하는 것을 제안한다. 교회 연합 행사의 편리를 위한 선의의 통일찬송가 시대는 지났다. 각 교회와 교단별 교세별로 연합 집회도 뿔뿔이 흩어져 있으며 심지어 점보 스크린을 사용하고 있다. 찬송가 가사와 '장' 수의 혼선을 통일하기 위한 이유의 통일찬송가는 상술에 이용당하기만 하고 있다. 은혜롭지 못하다. 소위 말하는 '한기총'도 완전 연합도 아닌 단체마저 이유야 어쨌든 탈퇴한 실정이다. 대형 교회나 목회자들의 연합과 탈퇴는 걷잡을 수 없이 분산되면서 찬송가의 통일을 논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찬송가는 목회자들의 '봉'인가. 수익은 각 교단이 분할하는 실정이 볼썽사납다.

<21세기 찬송가> 진단

1. 번역 가사의 수정과 음절의 문제점

현대인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수정한 가사로 인해 숨겨진 깊은 영적 예술적 은율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태양으로부터 밝다고 하는 것보다는 따듯함을 느껴야 하며 꽃의 아름다움보다는 향기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음악)에 '느낌'이 없다면 예술이 아니다. 가사가 음률과 상치된 번역으로 '느낌'을 저버렸다면 조화를 보고 즐기는 것과 같다. 찬송가 가사 수정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즉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격의 번역들로 영안을 가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예) 305장(405) '나 같은 죄/인 살리신'으로 그토록 은혜로운 찬송이 부르기에 숨차고 힘겹다. 실은 '나 같은 죄인/살려 주신'으로 문장이 선율과 일치했어야 했다. 찬송가 한 곡씩 검토 연구하는 첫째 주간에 발견한 예를 들고자 한다.

(예) 292장(415) '주 없이 살 수 없네'의 둘째 단 마지막 가사를 '구속하소서'로 수정하였다. 이런 엄청난 실수가 있을까? 결코 '구속하소서'가 아니다. 영어 가사에는 'redeemed'로서 '구속하셨다'이다. 영어 가사도 모른 채 '구속하소서'로 번역한 '기독교용어연구위원회'들이여 세상적 학문에 의한 가사 수정이 아니라 두렵고 떨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임했어야 할 것이다. 3절 둘째 단에 '지혜도 없으니'를 ' 없도다'로 수정함으로 연속적 문장을 분산시킨 의도가 무엇인지?

(예) 542장(340) '구주 예수 의지함이' 1절 둘째 단 '허락하심 받았으니'를 '영생허락 받았으니'로 수정하였다. 작사자의 신앙고백은 'Just to rest upon His promise'로 그의 '약속, 허락'의 뜻을 포함한 'Just to know, "Thus saith the Lord'의 문장을 의미 깊게 수정했어야 한다. 원어를 이해하지 못한 '영생'단어 추가는 한심한 아마추어 수준.

(예) 65장(19) 역시 영어의 표현은 'Praise My Soul"의 강한 호소력 있는 동사 '찬양하라'로 시작한다. 그러나 '내 영혼아 찬양하라'는 평범한 문장 풀이의 언어적 표현은 잠자던 성도들의 영혼을 일깨우는 것이 아니다. 4절의 둘째 단 '성도들아 모두 주께 경배하여라' 수정은 너무 평범한 표현으로 영적 호소력이 강한 좀 더 폭넓고 격상된 표현이 매우 아쉽다. 즉 'Saints triumphant, bow before Him, Gathered in from every race'를 기독 문학가들이라면 얼마든지 놀라운 감격적 표현이 나올 것이다. 마지막 문장의 '내 영혼아 찬양하라'를 'Hallelujah'로 반복한 수정은 잘된 것이나 'Alleluja' 원어대로 수정하였다면 하는 아쉬움이다. 만약에 시작 가사가 '찬양하라 내 영혼아'로 수정되었다면 '찬양하라, 찬양하라' 반복으로 놀라운 영적 화답을 이루었을 텐데.

또한 한영 찬송가에서 영어 가사들이 즐비하게 나열한 비전문적 편집 문제들도 시정되지 않은 점들은 자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영혼의 호음인 찬송가가 찬송가공회나 출판사들의 한갓 상품으로 전락된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국가적 영어 교육의 중요성이 이해되었다면 영어 가사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번역 편집되어야 하였다.

2. 편집상의 불균형

1. '영창과 기도송'이 20곡이나 편집되었다. 성가대를 위한 찬송가 편집이 아니기 바란다. 2~3곡으로 족하다. 특히 '주기도' 편곡은 진미는 빠지고 '짝퉁 주기도'로 전락했다.
2. 한국 찬송가 128곡(81명의 작곡가) 중 16곡을 제외한 모든 곡은 검증 없는 곡들로 삭제되어야 한다.
3. 제목 분류는 '새로운 찬송가로 착각할 법한 것 이외에 '장' 번호들이 바뀌었고, '행사와 절기'에 관한 44곡 중에서 감사절 7곡, 어린이 10곡 등 5곡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4. '예식'에 속한 찬송가 18곡 중에서 10곡만이 적절하다고 예측한다면 582장으로 축소된다. 그중에서도 한국교회 정서에 맞지 않는 곡들을 제한다면 520장 정도의 찬송가가 될 것이다.

3. 조립식 19세기형의 <21세기 찬송가>

<21세기 찬송가>는 제목 분류에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 영어 제목 찬송가 첫 줄 가사 index가 없어 엄청난 어려움에 처했다. <통일 찬송가>에서 498곡과 새로 편집한 21곡과 10여 곡을 제외한 검증되지 않은 한국인 찬송가 128곡(16곡은 검증됨)이 편집 출판되었다. 총회 산하 찬송가공회 조직은 새로운 모습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1200만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찬송가를 출판한 실책은 누가 책임 질 것인가?

(1) 무성의 또는 무식의 결과로 편집한 제목 분류

<21세기 찬송가>를 제목 분류에서 잘못 편집된 찬송가들을 발견하고, 어이없는 실수들을 지적하면서 더욱 실망하게 된다. 즉 '성탄곡'을 '경배와 찬양'의 곡으로 분류하는가 하면 '감사' 찬송을 '창조주'의 부류로, '창조'를 '섭리'의 찬송으로 분류한 용감한 유식(?)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암담하기만 하다. 찬송가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집자들께서 번역된 가사만 읽고 영감으로 편집한 것인가?

(예) 66장 '다 감사드리세'의 tune name은 'nun Danket'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불리는 유명한 감사 찬송이다. 제목 분류를 한다면 '감사'에 편집되어야 할 찬송이다. 그러나 21세기찬송가에는 '창조주'분류에 잘못 편집됨으로 인하여 감사 절기와 감사에 관한 찬송으로 불리지 못하는 실책을 범하였다.

(예) 78장 '저 높고 푸른 하늘과'의 tune name은 Creation으로 하이든이 작곡한 불멸의 오라토리오 Die Schöpfung(천지창조)중 합창 No.13-하늘이 주 영광 나타내고-을 하이든 자신이 편곡한 찬송가이다. tune name자체가 '천지창조'인 찬송가를 '창조'에 수록하지 않고 '섭리'로 분류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예) 622장 '거룩한 밤'의 tune name은 cantique de Noel로서 '노엘 찬송'라고 명시되어 있으므로 '성자'(80~181)분류 중의 '성탄'(106~129)에 편집되어야 할 찬송이 어찌 '경배와 찬양' (614~624)에 편집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2) 회중 찬송가 조성의 재검토와 음정의 수정

회중 찬송가 조성을 재검토하기를 강력히 건의하였으나, 몇 곡의 수정에 그쳤으며, 20여 년간 연구한 필자의 결과 보고는 허무하기만 하였다. 조성을 재검토하여야만 하였던 이유로는 특히 새벽 기도회와 주일 아침 7시와 9시 예배를 위한 회중 찬송을 참고할 때 음이 높거나 불편한 조성으로 회중찬송 부르기가 부담스러운 경우와 어느 교인은 한 옥타브 낮게 부르는 교인도 있으며 또는 조성이 낮아 어느 음은 노래할 수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반음 아래로 내릴 찬송가; 180, 274, 284, 318, 331, 337, 404, 410, 444, 447, 467, 469, 470, 482, 506, 541, 543등과, 온음 내릴 찬송가; 185, 235, 236, 326, 342, 348, 354, 364, 448 등, 그리고 반음 높일 찬송가; 289장과 온음 높일 찬송가; 183, 245, 249등이다.

(3) 찬송가 템포의 재검토와 편집 배치

찬송가 속도 표기와 metronome(박절기) 숫자 표기를 완전 제거하여야 한다. 최근 경험한 합동 249장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 할 때에'의 행진곡형의 힘찬 찬송가가 '조금 느리게'로 표기되어 있어 지루하게 끌려가는 찬송으로 전락되었다. 이 찬송가의 Tune이름은 'Marching to Zion'이다. 즉 '시온성으로의 행진곡'에 가사를 붙인 찬송가이다.

(4) 찬송가 해설과 Guitar chord 기입 문제

그 어느 나라의 찬송가에도 해설을 기록하지도 않았으며 해설(?)도 아닌 상업 수단은 자제하였어야 할 것이다. 또한 Guitar chord는 삭제하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orchestra part보와 같은 형식의 악보에 Guitar chord를 기입하여야 하였다.

4. 작가의 창작 자산 보호받아야

참신한 작가들의 창작 재산을 교묘한 방법으로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며 상대방과 불공정한 거래 행위를 자행한 공회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차세대의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장려하기 위하여도 작가의 창작 재산은 법으로 보호받아 마땅할 것이다.

5. 외국 교포 교단도 편집위원으로 동참하여야

해외에 있는 많은 한인 교포 교회들이 한국에서 출판한 <통일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으나 1.5세, 또는 2세들에게는 가정 예배, 구역 예배, 심방 예배 때마다 다른 문화권의 차이로 찬송을 부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2세 젊은이들은 미국 교회로 출석하며 부모와는 다른 교회로 출석하는 어려움이 있다. 한편 해외 한인 교포 교회도 교단별로 크게 교세가 확장되어 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민 생활을 통한 신앙 간증의 작사 작곡이 수집되어 21세기찬송가 편찬에도 동참하도록 기회를 배려하였어야 한다. 한국 교단별로 찬송가 수익을 분배하고 있다면 해외 교포 각 교단에도 수익 배당은 분배되어야 마땅할 것 아닌가?

6. 찬송가공회의 사명

통일된 찬송가 편집에 집착하지 말고 찬송가공회는 국제 수준격의 전문 연구 기관으로 탈바꿈하기 바란다. 찬송가공회는 교단 대표와는 무관하게 전문성을 가진 독립 사립 재단으로 설립되어야 하며, 전문 편집자로 구성되어 맞춤 주문의 찬송가, 또는 각 총회마다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찬송가로 편집 제공함으로 불필요한 분쟁과 교회를 빙자한 출판사와 불미스런 사업이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찬송가공회는 세계 각국의 귀한 찬송가들을 발굴하여 번역하고 통일된 하나의 가사를 사용하도록 감독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본 기관은 저작권과 작가를 보호해 주며, 차세대 교회 음악가를 키우는 장학 제도에 전력을 기울이며, 한국 찬송가의 국제화를 한류 찬송가 문화 교류를 위한 홍보와 보급으로 작가들의 권익을 보장해 주는 노력이 절실하다. 소위 음악 전문가의 교단 파송 제도는 찬송가 발전을 저해하고 있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찬송가공회는 교단과 무관한 사설 단체로 운영되어야 한다. 각 교단별로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출판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찬송가를 편집 출판하여야 한다.

<통일 찬송가>를 기반으로 음악적 변화를 통하여 젊은 영적 세대와 호흡을 같이하는 새로운 편집으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7. Descant 찬송가 출판의 위험성

Descant 출판을 추진한다는데 매우 우려스런 착상이다. 예배를 혼란스럽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지 심히 염려스럽다.

8. 접는 글

21세기찬송가는 초라한 찬송가로 전락하였다. 바라기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욕망과 명예욕을 버리고 1200만 성도와 오고 오는 젊은 영혼을 하늘나라로 초대하는 엄숙한 작업을 위하여 기도하며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정성껏 zero-ground에서 다시 편집하기 바란다.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참회와 감격한 기도로 작업에 임하는 신앙 자세로 재편집되기를 기원한다.

목회자들은 예배 찬송을 바로 이해하고, 폭 넓고 다양한 찬송가 선택의 능력을 위하여 각 목회자 세미나 등에서 찬송가 연수 과목을 섭렵하기 바란다. 상업 목적으로 다양한 크기의 찬송가 출판은 멈추기 바란다.

백효죽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회음악 초빙교수,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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