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이 하는 말이라면, 그것이 강단에서 외쳐진 것이든 아니면 사석에서 한 말이든, 무조건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예전과는 달리 사람들의 의식이 깨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목사님들이 상반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할 것이다. 서로 다른 메시지 속에서 무엇이 더 성경적인 메시지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의 삼일교회라는 대형 교회로 임지를 옮기게 되는 것이 확정된 송태근 목사님의 인터뷰 기사가 <뉴스앤조이>라는 인터넷 매체에 실렸다. 송 목사님은 삼일교회에 부임하여 어떻게 교회를 이끌고 나갈 것인가를 포부를 밝히는 과정에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은 1%의 고지를 정복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저지대로 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에둘러 고지론(高地論)을 비판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이 짤막한 인터뷰 기사에 대하여 고지론과 청부론(淸富論)의 전도사라 할 수 있는 김동호 목사님이 페이스북에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논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목회자인 송태근 목사님에 대하여 이 시대의 강한 논쟁꾼(?)인 김동호 목사님의 반격은 날카롭다. 한마디로 저지론(低地論)은 저지에 가 본 적이 없는 책상에서 나온 몽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말 팔 걷어붙이고 저지에 들어가서 그들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다 보면 정말 깨끗한 부자가 되고 1% 상위의 신실한 부자가 되어 그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애절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나처럼 진짜 현장으로 들어와 보라고 도전한다.

고지론의 메시지는 주로 자본가들이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파이가 커져야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지금은 나누는 것보다는 파이를 키워야 할 때라는 것이 자본가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파이는 계속 커져 가는데 커진 파이의 열매는 자본가들이 차지하고 노동자들은 계속되는 인플레 속에 그들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지만 고지론을 주장하는 분이 다른 분이 아니라 어느 정도 한국 사회에서 그 진실함을 인정받은 김동호 목사님이라는데 차이가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실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지만). 그래서 이분의 메시지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눔을 모토로 하는 공산주의 사회는 이미 몰락해 버렸고 성장을 모토로 하는 자본주의가 이미 승리해 버린 이 시대에 어쩌면 고지론이 더 잘 먹혀드는 것 같다. 그래서 젊은 시절 저 낮은 곳으로 갔던 어떤 목사님은 이제는 분당으로 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름대로 고지론도 일리가 있고 저지론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철저하게 상반되어 보이는 이 이론들이 사실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내용들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며, 모두가 인간 사랑이라는 아주 중요한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고민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사회가 분배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전히 공산주의를 강령으로 삼고 있는 나라에서조차도 시장경제를 인정하는 것처럼, 이 이론들은 양립 불가한 것들이 아니라 함께 균형을 맞추어야 할 이론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의 문제를 고지론과 저지론으로 보는 프레임 자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아쉽게도 고지론과 저지론은 공히 돈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성경의 관점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깨끗한 부자가 되어 가난한 자들을 먹여 살림으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성경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으며,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가 해답이라 말하지 않고, 예수님이 해답이라 말하는 것이다.

보리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깨끗한 부자가 되어 그들이 번 돈으로 인류의 가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시지 않았다. 반대로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 털어서 나누어 주어서 모여든 군중의 배고픔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은 떡이 해답이 아님을 강조하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6~27)."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떡은 예수님을 가리키기 위한 비유였다. 그런데 떡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왕으로 옹립하려고 했던 당시 유대인들처럼, 아직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지 않고 떡만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강단에서도 떡을 만드는 비법이나 전하거나, 떡을 나누는 아량에 대해서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제쳐 두고 전해야 할 메시지는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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