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를 건 교회개혁'을 외쳐온 동안교회 김동호 목사가 6월 17일 주일예배 설교를 통해 동안교회의 분립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고 있다.

김동호 목사는 이날 교회설립 43주년을 맞아 '건강한 교회'란 주제의 설교를 통해 작년 장년 성도 1500명의 잠실중앙교회가 분립 개척한 사실을 사례로 들면서, 주일을 앞둔 6월 16일 긴급 소집한 당회에 동안교회의 분립 개척 안을 내놓았으며, 현재 심의 중이라고 밝혔다.

김동호 목사는 설교를 통해 동안교회가 작년에만 1000명의 성도가 새롭게 늘어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러한 급속한 성장의 원인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질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많은 대형교회들이 대개 담임목사 한 사람 때문에 성장하며, 성장한 교회엔 소위 유명한 목사가 있다. 이런 교회들은 대개 교회는 크고 성장했지만 도리어 약하다. 그것은 목사 한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교회를 건강하고 좋은 교회라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동안교회도 이런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김동호 목사가 성장의 끈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해봐야 하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동안교회는 이름뿐인 교회이며 실상은 죽은 사데교회와 같다"고 우려했다.

1991년 12월 동안교회에 부임한 김 목사는 올해로 꼭 10년째 동안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으며, 입법 행정 감사 등 3권이 모두 당회에 쏠려 있는 불합리한 교회제도가 개혁되지 않으면 진정한 교회다움을 회복할 수 없다며 한국교회에 [생사를 건 교회개혁]이란 단행본을 내놓기도 했다. 이날 설교를 통해 김 목사는 동안교회에서의 이 개혁 실험은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제직회 기능을 강화하고, 행정, 교육, 선교 등 전문영역을 담당한 전문목사를 영입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통해 개혁의 가능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이 때문에 개혁의 실험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동안교회에서의 장기 목회가 자칫 "잔치상만 받아 먹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은 김 목사가 지난 6월 16일 동안교회 게시판에서 한 성도의 편지에 답장형식의 글을 올리는 가운데도 잘 나타나 있다. 김 목사는 이 글에서 '자리와 인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내가 죽었을 때 칭찬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교훈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려면 교만해져선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선 자리와 인기에 연연하면 안 된다. 인기와 자리는 사람들에게 로마시민권과 같으며 바울이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 이 권리를 사용하였듯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동호 목사 6월 18일 주일설교 전문

제목:건강한 교회(마태복음 16:13-20)

오늘은 우리 교회가 창립 43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지난 43년 동안 우리 동안교회를 이끌어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신 여러분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하나님께서 그 모든 분들과 그 분들의 후손들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만은 제 사무실 책상 유리판 밑에는 청량리 중앙교회 사진이 있습니다. 청량리 중앙교회는 제가 어려서 다닌 제 모 교회입니다. 청량리 중앙교회도 우리 교회와 마찬가지로 세 번의 건축을 하였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사진은 제가 어려서 주일학교를 다닌 제일 첫 번째 작은 예배당입니다. 저는 그 교회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 어렸을 때 이렇게 좋은 교회를 다닐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참으로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저는 그 하나님의 복의 뿌리가 청량리 중앙교회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려서 좋은 교회를 만나고, 그 좋은 교회에서 좋은 믿음의 어른들을 만나게 되고 그와 같은 복된 만남을 통하여 믿음이 생기게 되고 그 믿음 때문에 제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량리 중앙교회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사의 기도가 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 교회 사진을 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 사랑하는 아이들이 제가 받았던 복을 받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우리 동안교회 교인들이 제가 받았던 복을 받게 해 주십시오"

저는 우리 동안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동안교회의 뜰을 밟는 모든 사람들이 제가 받은 복, 아니 그 이상의 복을 받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좋은 교회란 과연 어떤 교회일까요? 교인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재정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무조건 교회가 크다고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가 무조건 크다고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교회의 사이즈는 좋은 교회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좋은 교회는 믿음이 좋은 교인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좋은 교회의 기준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당신이 친히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의하면 교회는 우리 인간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세우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우는 교회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친히 세우시는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은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운 교회로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데나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지 않습니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시는 반석은 믿음입니다. '주는 그리시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믿음의 고백이 있는 곳에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외의 것들을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을 믿는 경우도 있고 사람을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약한 사람이 됩니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82년도에 영락교회 부목사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영락교회의 부목사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저는 그때 32살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개 다른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하시다가 영락교회 부목사로 오던 그 당시에 영락교회 부목사가 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그 쉽지 않았던 교회의 부목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임택진 목사님의 전화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영락교회 당회장에 전화를 거셔서 '김 목사는 내 아들 같은 목삽니다'라고 추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영락교회 당회장이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시는 임 목사님이 그렇게 추천해 주셨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자리에 들어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영락교회 부목사를 거쳐 승동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을 때 임 목사님이 어느 교회에서 설교하시다가 혈압 때문에 쓰러지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저는 정말 가슴이 철렁하였습니다. 즉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목사님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그 기도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온 기도가 문제였습니다. "저 앞으로 10년은 더 봐주셔야 되는데요" 저는 그 기도를 하고 나서 하나님께 참으로 죄송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하나님보다 임 목사님을 더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옳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즉시 하나님께 회개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고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그 줄을 끊겠습니다. 목사님을 앞으로 제 아버지처럼 섬기고 존경은 하겠으나 절대로 제 목회의 끈과 빽으로 삼지는 않겠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목회 하겠습니다"

그 기도가 84년 6월 달의 기도였습니다. 지난 17년 동안 저는 그 기도를 지키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였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붙잡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의지하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저는 제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성공을 이룬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가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줄로 알고 있습니다. 저들도 제 실력에 비하여 제가 엄청난 성공을 하였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려서 저는 오늘날의 이런 성공을 거둘 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그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운이 좋아서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성공한 것은 절대로 운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지 모르지만 저는 제법 하나님을 믿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이해가 되도 믿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습니다. 제가 가끔 사람들이 보기에 엉뚱한 일을 잘 하는 까닭도 제 딴에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믿음으로 한 모든 일이 성공하였습니다. 믿음으로 한 일 중에 단 한번도 저는 실패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것이 오늘과 같은 저를 만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하나님만 믿고 살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만 끈을 삼을 것입니다. 하나님 외의 그 어떤 것도 제 믿음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성공과 비교할 수 없는 성공을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와 우리 동안교회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 교회의 성장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 동안도 계속 꾸준히 성장해 왔습니다만 최근에 들어서 그 성장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 교회는 장년 출석만 1,000명이 늘었습니다. 성장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장한다고 무조건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성장의 원인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교인들의 믿음 때문에 성장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만 끈을 삼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 성장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한번 냉정하게 우리 동안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성장이 과연 건강하고 바람직한 성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교회가 과연 하나님에게만 의존해 성장하는 교회입니까? 혹시 사람에 의존하여 성장하는 교회는 아닙니까? 한국 교회의 많은 성장한 교회들 중에 특별한 카리스마와 은사를 가진 목회자 한 사람의 영향력에 의해 성장한 교회가 많습니다. 많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입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사실은 다른 나라도 대개는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대형교회는 담임목사 한 사람의 영향력에 의하여 성장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동안교회는 과연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는 그런 면에서 문제가 없는 교회입니까?

지난 주 어느 집사님 한 분이 인터넷 교회 게시판에 아주 좋은 글을 올리셨습니다. 찬양예배와 수요기도회에 관한 말씀이었는데 우리 교회는 찬양예배에 찬양이 약하고 수요기도회에 기도가 약하다는 내용의 말씀이었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아주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를 한번 분석하고 연구한다면 그와 비슷한 많은 문제들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별로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계속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와 같은 약점과 문제점들이 즐비한데도 교회는 계속 성장을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동안교회 성장의 핵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무엇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제가 참으로 바보 같은 소리를 한번 하겠습니다. 여러분 혹시 그것이 '저' 아닙니까? 많은 교회가 대개 담임목사 한 사람 때문에 성장합니다. 성장한 교회에는 대개 소위 유명한 목사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예를 들지 않아도 여러분 쉽게 생각이 나실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는 대개 교회는 크고 성장했는데 도리어 약합니다. 그 목사 한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교회를 건강하고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패턴을 밟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교인 수도 늘고 그에 따라 재정도 늘어나니까 좋기는 하지만 이렇게 성장하는 것이 과연 교회와 교인들에게 좋은 것인지 이제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동안교회의 끈이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김동호 목사입니까? 제가 이렇게 질문하면 지나친 것입니까? 착각하는 것입니까? 지금 담임목사 줄이 끊어지면 당장이라도 혼란에 빠질 교회가 우리 한국에 하나 둘이 아닙니다. 우리 동안교회는 그렇지 않은 교회입니까? 교회의 성장과 김동호 목사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까? 혹 상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영향력은 그다지 염려할만한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우리 교회도 심각할 수 있는 것입니까? 김동호 목사는 동안교회의 끈 아닙니다. 김동호 목사가 동안교회의 끈이 된다면 동안교회는 살았다하는 이름만 있는 교회일 뿐 실상은 죽은 사데 교회와 같은 교회입니다. 동안교회의 끈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끈을 잡지 아니하고 김동호 목사라는 끈을 붙잡고 우리 동안교회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 저는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제 줄을 끊으세요. 저를 신뢰하지 마세요. 의지하지 마세요. 목사 한 사람의 영향력에 의해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부인하세요. 그 줄을 끊으세요. 그 줄을 끊어야만 동안교회가 살고 여러분이 살고 제가 삽니다. 그렇지 못하면 교회가 죽고 여러분이 죽고 제가 죽습니다.

작년에 고신측 장로교회인 잠실중앙교회가 분립개척을 하였습니다. 그 교회는 개척을 시작할 때 장년 출석 1,500명이 넘으면 분립개척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작년에 출석 교인이 1,500명을 넘어 2,000명 선에 이르게 되자 분립개척을 실천하였습니다. 보통의 경우 교회가 부목사에게 개척을 시켜 내 보내는 것이 상식인데 이 교회는 본 교회를 부 목사님에게 맡기고 담임목사가 직접 분립개척을 하여 나갔습니다. 담임목사가 교회가 지원해 준 개척자금 얼마와 교인 몇 백 명을 데리고 나아와 개척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우리 한국 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올 초에 그 담임목사가 개척한 교회에 가서 제가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는데 본 교회와 분립한 교회가 모두 다 아주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담임목사를 내 보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개척하여 성공한 교회를 버리고 담임목사가 개척하여 밖으로 나간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잠실중앙교회는 믿음으로 그와 같은 일을 잘 감당하였고 결과는 아주 대성공이었습니다. 본 교회도 더 건강해지게 되었고 분립해 나온 교회도 아주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제 저녁 급히 장로님들을 소집하여 동안교회 분립 개척 안을 내어놓았습니다. 잠실 중앙교회와 마찬가지로 우리 동안교회도 담임목사가 분립개척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안이었습니다. 너무 갑자기 그리고 충격적인 안을 내어놓았기 때문에 장로님들이 많이 당황하셨지만, 그래서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릴 수는 물론 없었지만 저는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좋은 결론을 내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동안교회의 끈이 되어서도 안 되고 동안교회가 제 목회의 끈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럴 위험이 있다면 피차 그 줄을 끊어야만 합니다. 이제까지 동안교회는 제 목회의 실험장이었습니다. 91년 12월 1일 동안교회에 부임할 때 저는 동안교회를 말씀의 연구소로만 만들지 않고 말씀의 실험장으로 만들겠다고 설교를 하였었습니다. 그리고 그 설교대로 목회 하려고 하였습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생명을 걸고 피나는 싸움을 하면서 실험을 하였습니다. 한 때는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 교회에 사표를 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교회를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식과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매우 중요한 실험과 싸움이 끝났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실험과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동안교회는 제게 생사를 걸고 목회와 신앙을 실험하는 실험장이기보다는 실험의 성공과 전투의 승리로 말미암은 열매를 따먹는 잔칫집과 같아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몰라도 사람들에게 저는 성공한 목사입니다. 성공한 목사가 성공한 현장에서 인생을 마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희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잔칫상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에서 잔칫상을 받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근사한 잔칫상을 받기 위하여 저는 이 세상에서 잔칫상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다시 전장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수요일 여호수아서를 설교하면서 저는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히 여호수아 14장에 나오는 갈렙에게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 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 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 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이제 몇 달 후면 제가 동안교회에 부임한지 꼭 10년이 됩니다. 저는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면 동안교회의 목회를 10년으로 정리하고 한 십 년 동안 열심히 새로운 싸움을 싸워보려고 합니다. 저는 동안교회의 끈을 끊고 여러분은 김동호 목사의 끈을 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믿는 믿음으로 열심히 살아 동안교회는 지금 보다 더 건강하게 성장하고 저도 지금 보다 더 건강한 목회자가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2신>김동호 목사의 '분립 개척에 대한 생각정리' 전문

김동호 목사는 6월 18일 월요일 오전 교인들의 질문과 반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글을 게재했다. 동안교회 게시판에 오른 김 목사의 글을 전문 인용한다.

1.설교인가 광고인가?

광고처럼 들렸을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분명한 설교였다. 사람마다 설교에 대한 정의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설교를 단순한 성경강해로 보지 않는다. 성경강해는 성경강해이지 설교가 아니다. 설교란 성경강해 + 설교자의 삶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설교를 '예수 믿고 사는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어제 설교는 분립개척에 대한 광고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광고와는 다르다. 내가 분립개척에 대한 생각을 하게되고 그것을 결심하게 된 원인이 내 개인적인 계획과 야망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는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 그리고 하나님의 식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광고처럼 들렸을 수도 있지만 분명히 설교였다.

나는 내가 분립개척을 결심하게 된 것을 신앙이라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신앙적으로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도 동안교회를 쉽게 떠나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쉽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동안교회를 떠난다는 것이 그렇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나로서는 분립개척이 내 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결과가 아니고 하나님의 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결과이다. 분립개척이 꼭 하나님의 뜻과 식이냐에 대해서는 혹 의견이 다를 수도 있고 그러므로 그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논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엽 집사님의 글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분립개척을 나의 인간적인 또 다른 야망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오해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2. 분립개척과 그냥 개척.

지금 내가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은 '분립개척'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나의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때 나는 '그냥 개척'을 하게 될 것이다.

분립개척은 엄밀한 의미에서 동안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안교회 목회의 새로운(우리 교회로서는) 패턴일 뿐이다. 그것은 동안교회를 우뚝 선 거목처럼 키울 것인가 아니면 그 힘을 위로 뻗지 아니하고 옆으로 뻗게 하여 포도원처럼 키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인데 나는 동안교회의 목사로서 동안교회를 후자로 이끌어 가는 것이 지금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분립개척이 교회와 당회로부터 받아들여진다면 나는 동안교회를 떠나지만 동안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닌 것이 된다. 나는 지금 서울의 동안교회를 떠나지만 보다 큰 의미의 동안교회를 건축하여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분립개척이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나는 새로 개척하는 교회의 이름에 '동안'이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한다.

그러나 교인들 중에는 이번 기회에 내가 완전히 동안교회를 떠나 동안교회와 상관없는 새로운 개척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그와 같은 의견이 많다면 그래서 나의 분립개척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나는 '그냥 개척'을 하게 될 것이다. '분립 개척'과 '그냥 개척'을 구별하여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여야 나와 나의 생각에 대하여 큰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왜 분립개척을 하려고 하는가?

나는 그것이 동안교회와 나를 더 건강하게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것은 어제 설교에서 충분히 이야기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붙인다면 지금부터의 동안교회 목회는 현재 상태에서 크게 변함없이 그냥 흘러가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목회자는 누구나를 막론하고 almighty가 될 수 없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도 목회적인 장점이 있다. 나는 나의 목회적인 장점을 동안교회에 쏟아 붓기 위하여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동안교회 성장의 한 모퉁이를 담당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목회적인 장점을 동안교회에 쏟았다. 이제는 그 장점의 한계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동안교회에 더 있는다는 것은 솔직한 생각으로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는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안교회는 성장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까지 동안교회가 성장한 것은 김동호 목사가 유명한 목사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김동호 목사가 가지고 있는 목회적인 은사와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그 은사에 충실하였기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 동안의 성장에 대해서는 별로 부끄러움과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의 성장은 그렇지 않다. 나의 목회적인 은사가 다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는 성장할 것이다. 어제 주일 설교 중에도 밝힌바와 같이 많은 약점과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나도 속기 쉽고 동안교회도 속기 쉽다.

4.분립개척 준비.

내가 분립개척을 구체적으로 생각한 것은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어느 청년이 쓴 것과 같이 나는 실제로 분립개척 할 장소까지 생각하고 있다. 나는 마음으로 결정이 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약속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그곳에서 개척을 할 것은 어느 정도 결정된 것이나 진배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장소를 생각하고 추진하게 된 것도 불과 한 달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오래 전부터 분립개척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준비해 왔다는 말은 옳지 않다. 나는 나도 이렇게 빨리 이런 일이 진행 될 줄은 몰랐다.

구체적인 분립개척은 생각하지 않았지만 분립개척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동안 몇 번의 설교를 통해서 이미 교인들에게 말씀한 것이다. 나는 한 5년 정도 후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이번에 구체적으로 분립개척을 생각하면서도 최소한 분립개척을 하려면 2-3년 정도의 준비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 의지와는 달리 일이 빨리 진행이 되고 있다. 나도 그에 대해서 놀라고 있다.구체적인 분립개척에 대한 계획은 없었지만 분립개척에 대한 준비는 벌써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나는 전임목회제도라고 생각한다. 전임목회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리더쉽의 자연스러운 이양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내가 동안교회를 떠날 때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맡을 수 있는 사람이 교회 밖이 아닌 교회 안에서 준비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어느 청년이 게시판의 나의 설교와 목회를 비판하면서 자기는 나보다 어느 전임목사의 설교를 더 좋아한다고 솔직히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내가 교회를 떠나도 교회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그 청년이 하나 알아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우연히 된 일이 아니라 내가 그와 같은 일을 내다보고 전임목회제를 생각하고 그리고 그 청년이 좋아한다고 하는 목회자를 그 자리로 모셔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청년은 다른 것은 몰라도 그 하나만 가지고도 나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통의 경우 교인들이 자기보다 더 좋아 할만한 목회자를 교회로 청빙 하는 일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는가? 그리고 실수로(?) 그와 같은 목회자가 교회에 오게 되면 긴장하고 견제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나는 내 양심을 걸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좋은 목회자를 청빙 하려고 하였고 할 수 있는대로 그에게 목회적인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였다. 언제든지 나를 대신하여 동안교회 당회장이 되어도 좋다는 마음을 가지고 목회를 하였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분립개척이 급박하게 이루어짐에도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5.신축과 개축.

나는 내 나름대로의 분명한 목회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철저히 그 목회관을 가지고 소신껏 목회를 하려고 하였다. 적당히 타협하는 목회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 때문에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아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지 않은 기성교회를 그 목회관에 맞추어 목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았다. 그러나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둘째는 당회원들과 교인들의 이해와 협력으로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아 보였던 일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 교회에서 당회의 중요한 기능을 제직회로 이양하고 안식년 제도를 실시할 수 있었던 일 그리고 전문목회를 실천할 수 있었던 일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다고 스스로 나는 생각한다.

당회원들의 많은 이해와 협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안교회 안에서의 개혁은 신축이 아닌 개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동안교회의 개축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감사한다. 그러나 개축만으로 내 목회의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소명처럼 주신 목회철학에 따라 신축을 해보고 싶다. 분립개척이 되든 그냥 개척이 되든 내가 개척을 하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이 주신 목회철학의 실현이다. 나는 하루 두끼를 먹어도 그 일을 하고 싶다.

동안교회에서 그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안교회는 이 정도의 개축만으로도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개축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셔야만 한다.

교회개혁은 동안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동안교회에서 완성되지 못하였다. 교회개혁의 완성은 개척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6. 목회적 성공 (?)

많은 사람들이 내가 설교 중에 쓴 '목회적 성공'이라는 표현때문에 시험에 드는 것 같아 보인다. 내가 설교 중에 사용한 '목회적 성공'이라는 말은 '소위 목회적 성공'을 의미하는 것으로 긍정적이 표현이 아니다.

목회적 성공은 훗날 하나님만 판정하실 수 있는 일이다. 나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소위 목회적 성공'인데 그것 때문에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뜻에서 사용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7. 목회와 선교.

나는 '그냥 개척'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개척은 아니다. 나는 분립 개척을 기도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개척자금과 교인을 확보한 가운데 편하게 개척을 하려고 그런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건방진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지금 나에게 그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아무런 목회적인 배경이 없는 젊은 목사가 개척을 하면 생짜로 고생을 하게 되지만 나처럼 목회적인 경력과 배경이 있는 사람이 개척을 하면 그다지 큰 고생을 하지 않는것이 보통이다.

내가 분립개척을 기도하는 것은 나는 그것이 아주 건강하고 아름다운 목회의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이고 사적인 감정인지 모르겠으나 나도 여러분들 못지 않게 동안교회를 사랑한다.

내 기도대로 분립개척이 된다면 전임목사님 중에 한 분이 동안교회 담임을 맡았으면 한다. 그러나 그 결정은 당회가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전임목사님 중 어느 분이 동안교회를 맡아도 능히 교회를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전임목사 중 한 분으로 담임을 결정하면 나는 다른 전임목사님과 함께 나아가 분립개척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새로 개척하는 교회의 당회장은 나와 함께 나가는 전임목사님에게 맡기려고 한다.

나는 설교목사가 되든지 아니면 선교사가 되든지 하려고 한다. 동안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교회 목회는 끝을 내고 싶은 것이 요즘 내 마음이다. 나는 내 나머지 인생을 교회 목회가 아닌 선교로 끝을 맺고 싶다.

지난 부흥 2001년을 보면서 선교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사람들과 연합을 이루고(이미 그와 같은 연합을 이루어져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그와 같은 연합의 중심에 놓여져 있다) 믿는 청년들 부흥집회만 말고 믿지 않는 청년들과 청소년들의 '전도 집회'도 얼마든지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립개척하여 나가게 되면 나는 교회는 다른 목사님에게 맡기고 있는 힘을 다해 전도하러 다니려고 한다. 나는 지금 그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당회장도 관심없고 노회장도 관심없다. 물론 총회장도 관심없다. 그것은 내 은사가 아닌 것이 틀림없다. 나는 나의 마지막 인생을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하다가 마치고 싶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그와 같은 기회를 주시려고 하고 있다.

그와 함께 나는 사람 키우는 일을 할 것이다. 전에 영락교회 있을 때 나에게 100억을 준다면(그때 영락교회가 100억을 들여서 교육관을 짓겠다고 하였을 때다) 나는 그 돈으로 교육관을 짓지 않고 사람을 키우겠다고 설교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김진홍 목사님이 두레연구원을 만드시고 지난 10년 동안 훌륭한 기독인재를 키우신 것을 늘 부러워하고 있었다. 사람에 따라 그것도 비판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김 목사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다. 나도 앞으로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싶다.

목회는 동안교회로서 내 할만큼을 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 목회의 한계와 약점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물론 노력하면 되겠지만 그것보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은 분립개척이 되어도 할 것이고 그냥 개척을 하여도 그렇게 할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어느 정도 내 영향력이 교회에 미치겠지만 할 수 있는대로 나는 그것을 탈피하여 동안교회와 개척교회가 모두 다 나 없이 잘 되는 교회를 이룰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오늘 내가 하려고 하는 분립개척에 대하여 바른 평가를 내려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8. 나와 나의 생각을 이해하려고만 하지 말고 믿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일이 얼마든지 틀릴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내가 하나님과 교인들 앞에 자신있게 내 세울 수 있는 것은 내 나름대로 이 일과 생각에 순수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나는 복선을 깔고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오해를 받을 때 나는 제일 비참해 진다. 믿어 주지 않아도 할 수 없지만 할수만 있다면 나를 믿어주고 위해서 기도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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