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 교정에 세워진 단군상을 처단(?)한 목사 장로님들께서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세속 법정에 의해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불씨가 되어 단군상 처단의 십자군 행렬이 이어질 거라는 교계 신문들의 격문 같은 보도도 읽었습니다.

저는 그림 두 편을 떠올립니다.

첫째가 과거의 십자군 전쟁입니다. 200년에 걸쳐 8차례의 대 원정군이 동원된 십자군 전쟁을 조목조목 들여다 볼 수도 없고 역사적 평가도 다를 수 있겠지만, 배운 걸 더듬어 보겠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예루살렘과 성묘를 이슬람교도의 지배로부터 탈환하려던 것으로, 셀주크투르크족의 위협을 받고있던 비잔틴제국이 로마교황에게 군사원조를 요청하면서 시작됩니다.

무역하는 사람들이나 여행자들이 시시때때로 오고가기야 했지만 유럽과 아시아, 기독교와 회교…, 당시로는 인류의 두 축이자 두 형제인 그들은 그렇게 전쟁터에서 첫 만남을 시작합니다. 정벌군을 보내달라기 보다는 용병이나 적당히 보내달라는 요청이었지만 로마교황청은 제멋대로 커나가는 골치 아픈 기사계급을 교황의 손아귀에 휘어잡을 좋은 기회라고 여겨 대대적인 파병을 획책합니다.

전쟁은 1차 원정에서부터 꼬입니다. 깃발에도 가슴에도, 말안장에까지 십자가를 그려 넣었건만 참패가 계속됩니다. 어찌 유일신 여호와의 십자군이 질 수 있단 말입니까? 십자군은 패배를 콘스탄티노플 황제의 배신과 그리스정교회의 이단성 탓으로 돌립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유대인, 이슬람인, 심지어 그리스정교도들에게까지 자행되는 탄압과 학살, 약탈에 대해서는 굳이 나열할 필요가 없으리라 봅니다.

교황이 900년 후인 2001년 5월에 찾아가 사죄의 뜻을 밝힐 정도니까요. 아랍과 서유럽,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의 운명적인 적대감은 이렇게 시작되어 그 깊은 골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교회와 카톨릭의 소원함도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그림은 아마도 장자의 것이리라 기억되는 것인데 안개가 낀 강에 배 한 척이 떠 있고 잠시 후 또 다른 배 한 척이 상류에서 미끄러져 내려옵니다. 또 한 척의 배를 향해 정면으로 말입니다. 뱃사공은 놀라서 고래고래 소리칩니다. 그래도 뱃머리를 돌리지 않자 욕설도 퍼붓고 저주도 합니다. 그러나 그 배는 빈 배였습니다.

교정의 단군상은 빈 배일까요, 아니면 단군교의 척후선인가요? 교활한 적도가 배 밑바닥에 몸을 숨기고 있는 걸 꿰뚫어 보신 겁니까? 언제부터 단군교가 한국교회의 성지를 갉아먹는 라이벌 사라센 제국이 된 겁니까? 궁예와 왕건 시절에도 힘썼단 얘기를 들어 본 적 없는 단군교가 21세기에 와서 개신교의 라이벌이 되겠습니까? 그런 게 있기나 한 건가요? 그저 민족정기 운운하며 옛 설화라도 사업에 끌어다 쓰려는 장사꾼과 별 생각 없는 교육 관계자의 빈 배는 아닙니까? 영혼 없는 빈 조각상이 그리도 두렵습니까? 한국교회가 언제부터 이토록 자신감을 상실한 채 칼을 빼어들고 핏발을 세운 걸까요?

모를 일입니다. 십자군 전쟁에서 교권의 약화와 기독교 제국의 도덕적 붕괴를 만회하고 제 세력의 눈을 돌리기 위해 십자군 전쟁을 부채질했던 그 불행한 역사의 시나리오가 오늘 우리 사회에 차용돼 그대로 쓰일지도, 돈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큰 교회 목사는 교회를 세습하고 기관의 목사는 감투에 연연해 분란을 일으키는 타락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 여러분을 십자군에 독려할 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중 누군가는 그 전장에서 장렬히 산화하는 무명용사가 되고, 누군가는 배신자가 되어야 할 겁니다. 삼가 헤아림이 있으시길 당부합니다

어떤 종교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혹세무민하여 사람들을 착취하고 노예로 전락시키는 사교(邪敎)가 아니라면 '이웃 종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웃 종교인들은 '타인'이 아니라 '이웃'이구요. 원하기는 사도 바울의 당부처럼 "모든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 지를 알고 깨달아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에베소서 3장 18-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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