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분파주의와 개교회주의가 '연합과 일치'라는 대의명분을 한낱 구호로 전락시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근 케이블TV와 위성방송 시장의 과열 과당 경쟁 또한 '연합과 일치' 이전에 자리잡고 있는 뿌리깊은 분파주의와 개교회주의 산물이다.

일정한 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케이블 TV 사업자가 될 수 있도록 3월 31일 방송법시행령이 바뀜에 따라 기독교TV(사장:감경철 장로)가 독점하고 있던 기독교 케이블TV 시장은 이전투구의 혼란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새롭게 바뀐 방송법시행령에 따르면 자본금 5억원 이상과 주조정실 부조정실 종합편집실 송출 등 최소한의 시설만 갖추면 누구나 PP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TV외에 기독교방송(CBS, 사장:권호경 목사)과 기독교위성방송(C3TV), OSB위성방송(대표:신동호) 등이 발빠르게 등록을 마쳤으며, 온누리텔레비젼(대표:하용조 목사)과 CEN위성방송(대표:이상운 장로)도 조만간 등록절차를 마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여러 개 업체가 한꺼번에 케이블TV 시장에 몰리는 것은 결국 올 10월 이후 본격화되는 위성방송 시장 선점을 위한 사전 포석이다. 70여 개로 한정된 위성방송 채널권 가운데 기독교계가 얻어 낼 수 있는 티켓은 고작 1장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 한 장의 티켓을 최종적으로 낙찰 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장 점유율과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기독교TV 외에는 아직 TV 프로그램 제작업자로서 경험이 부족한 타 교계업체는 본격적인 위성방송 시대에 접어들기 이전에 나름대로의 방송경력을 쌓기 위해 부산을 떨고 있는 것이다. 이런 치열한 자유 경쟁체제는 필연적으로 무리한 출혈 경쟁은 물론 타 업체의 도산과 중복 투자를 불러 올 것은 뻔하다.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은 모두 막대한 재원과 고급 인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 또 공적 개념인 '방송 전파'를 책임진다는 측면에서 특정인이나 개 교회가 끌고 갈 수 있는 분야도 아니다. 그러나 현재 교계 여러 방송업체들은 기독교 몫으로 배정된 '위성방송 채널'을 따내기 위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위협사격을 가하고 있다. 즉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케이블TV 시장만 해도 조만간 교계 방송업체간의 경쟁이 초래한 부작용 때문에 큰 고민을 안게 된다. 케이블TV는 PP사(프로그램제공업자)인 방송국이 SO(지역종합유선방송국)로부터 받는 프로그램 수신료 수입은 거의 '제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독교TV의 경우 지난해 SO로부터 받은 프로그램 수신료는 전체 수입의 50%에 해당하는 14억원에 달했으나, 올해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 8억원 밖에 받지 못했다. 수신료 격감의 이유는 PP사의 공급 과잉이라는 방송환경 변화가 SO사의 입지를 크게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계 신생 방송사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각 지역의 SO(지역종합유선방송국)를 상대로 덤핑 공세와 로비 경쟁을 펼칠 경우, SO측은 느긋하게 교계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출혈 경쟁을 지켜보며 칼자루를 더욱 공고하게 움켜쥘 것이다. SO사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3대 종교 채널을 의무적으로 방송해야 하지만, 여러 개 방송업체가 기독교 몫으로 등장할 경우 SO사는 입맛에 맞는 업자를 선정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큰 문제점은 교계 방송사의 과당 경쟁이 성도들의 귀중한 '헌금'을 매우 소비적인 형태로 낭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TV만 해도 초기 자본 150억원을 포함해 현재까지 230억원 이라는 막대한 금액이 투자됐다. 또 10억원 가까운 돈이 후원금 형태로 매년 꼬박꼬박 흘러 들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공교회 연합 방송사인 CBS 역시 한국교회 힘으로 세워졌으며, 아직까지 제대로 자립구조를 이루지 못해 매년 교회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C3TV는 자본금 23.9억원 중 곽선희 목사(소망교회)가 지분 60%를 갖고 있는 사실상 개인 방송국이다. 그러나 곽 목사가 최대주주지만 C3TV의 근원적인 자본 출처는 소망교회 성도들의 헌금 봉투다. 그리고 소망교회 외에 명성교회(김삼환 목사)가 또 다른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 OSB는 재일동포 사업가로 알려진 김종필 씨가 자본금 15억원을 전액 출자했다.  

이들 여러개 업체들은 현재 쏟아 부은 자본 이상의 추가 자본을 계속적으로 투자해야만 케이블TV 분야에서 제대로 자리 매김 할 수 있다. 이 자본 중 상당액수는 중복 투자에 해당하고, 또 낙오되는 업체에 쏟아 부은 자본은 자칫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케이블TV 분야에 수백억원의 추가 자본을 조성해야 하는 힘겨운 '제로섬 게임'의 희생자는 한국교회 성도들이다.

과거 케이블TV가 처음 출범할 당시에도 기독교계는 사업자 선정을 놓고 횃불선교재단(이사장:최순영 장로)측과 CBS가 갈등을 빚었고, 결국 타 방송사보다 수개월 늦게 출범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교단 컨소시움 형태로 단일화에는 성공했지만 당시 한국교회 분파주의가 빚어낸 혼란을 극심하게 체험한 바 있다.

현재 전개되는 교계 방송시장 쟁탈전 제2라운드는 과거보다 훨씬 경쟁이 치열할 것은 물론 업체의 사활이 달려 있다는 면에서 보다 심각하다. 우선 기나긴 산고 끝에 출범한 기독교TV 만해도 심각한 재정난과 교단간 갈등 그리고 대주주교단 사이의 신경전 등을 차례로 겪고 최근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분야에 불어닥친 무한 경쟁 속에서 또 다시 불황의 늪 속으로 빠질지도 모르게 됐다.

라디오 분야만으로는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CBS의 TV 진출 역시 장기적인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다. 공교회 연합기관이라는 위상과 직원 250명 그리고 20층 건물을 가진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매체 다변화는 필연. 또 C3TV도 인터넷 방송만으로 만족하기엔 너무 큰 규모를 갖고 있다. 기독교TV와 엇비슷한 60명의 인력 그리고 ENG 카메라 등 고급 장비를 갖추고 있어 TV 분야를 욕심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해 놓았다. 또 다른 업체들 역시 기존 투자 자본 유지 및 신 수익 창출을 위해 디지털 시대 흐름을 따라 잡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결국 이들 업체들은 이런 이유들로 인해 한사코 기독교TV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것. 그러나 교계 방송업체들의 출사표가 자유경쟁 체제의 적자생존 법칙을 적용시키기에 앞서 성도들의 희생을 동반한 제살 깎아먹기 식의 출혈경쟁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1장의 위성방송 티켓을 거머쥐기 위한 '이전투구'보다는 한국교회라는 뻔한 주머니 속에서 나오는 한정된 재원 및 이미 투자된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긴밀한 연대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