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주최한 '목회자 세금 납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목회자 세금납부 설명회 문건 중 기윤실 집행위원인 최호윤 회계사의 주제 발제문입니다. (편집자 주)

▲ 목회자 세금납부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기윤실 공동대표 김동호 목사. 우측 인물이 최호윤 회계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제공)
1. 들어가는 말

최근 성직자의 소득세 납부와 관련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갑론을박 논쟁이 여러 단체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세금에 대한 입체적인 검토 없이 정서적인 반감에 기초를 두고 진행되는 논의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며, 서로 논쟁의 평행선을 유지하는 현상은 국민들에게 깨끗하지 못한 기독교라는 오해를 각인시키는 기폭제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기독교인들의 안타까움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가 선택하고 고민해야할 논점은 세금문제의 본질이 무엇이며, 이에 대한 사실관계의 실제적인 적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라고 생각한다.

2. 세금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세금을 ‘국가 권력이 국민에 대하여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때로는 반대급부 없이 강제로 걷는 돈‘으로 이해하고 있다.

세금(조세)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관하여서는 역사적으로 국가와 국민간의 계약에 의한 국민의 부담이라고 보는 국가계약설(國家契約說), 조세는 일차적으로 개인소득의 감소를 가져오지만 국가의 생산적 지출을 통한 개인의 이차적인 생산력을 증대시켜준다는 국가생산설(國家生産說), 지배계급의 권력에 의한 국가착취설(國家搾取說), 사회변동 속에서 형성된 피조물로서의 국가진화설(國家進化說)과 같은 논란이 있어 왔으며 또한 조세부과의 근거로 공공수요를 부담하는 공공수요설(公共需要設), 개인의 존재에 선행하는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설(義務說),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유무형의 공공재편익대가로 본 이익설(利益說), 국가는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네 있어 국가는 국민에 대한 보험자이며 국민을 국가에 대한 피보험자로 보는 보험설(保險說) 등이 있지만 각각의 주장에는 장단점이 모두 있다.

조세생성의 역사적인 발전단계를 살펴보면 고대시대 희랍의 조세제도는 자발적인 납부, 간접적인 과세, 납세대리인에 의한 징수로 특징져지며 로마시대에는 재정수입을 외국 전승지 내지 식민지로부터 조달하였으며 로마인은 비상시에 한해 부과되는 인두세를 부담하였으나 Augustus 이후에는 정부가 재산세, 토지수득세(土地收得稅) 및 인두세(Capitatio)를 부과하였다.

중세봉건시대에는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국민들이 경작하고 이에 대한 지대를 왕에게 납부하였었고, 교역의 발달과 군대를 유지하기 위하여 토지를 매각한 후 지대를 대신하기 위한 세금으로 변천한 것이 근대조세국가형성의 본질이 되었다.

근대법치주의의 시발점인 Magna Carta는 의회의 승인 없는 국왕의 과세권을 제한하여 재정민주주의(財政民主主義, 租稅法律主義)가 싹트기 시작하였고, 미국 독립전쟁의 시발이 된 보스턴 차 사건도 영국이 부과하는 세금에 대한 조세저항으로 시작되었으며, 이는 왕을 두지 않고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제도를 만들게 되었다.

대의기관이 정하는 법률, 왕(또는 대통령)이 만드는 명령, 법률이 명령보다 우위에 있다는 근대법치국가의 3대원칙은 현대국가생성의 기초가 되었다.

동양에서 주나라의 토지제도는 정전제로 공동노동으로 경작하는 공전(公田)을 정하여 그 수확물을 국왕에게 지대의 형태로 납부하였으며, 진한시대에 들어와서는 토지사유제(私有制)를 허용하면서 봉건적 전조(田租)를 징수하였다.

고대 우리나라의 조세제는 공동체적 집단소유기초위에 토지국유제의 영향을 받으며 일정 토지면적을 부여받은 농민은 전조(田租)를 국가에 납부하고 부역노동에 수시로 응해야 하였다. 삼국시대에서는 지배자와 피지배층과의 공납관계에서 비롯되었으며, 중앙집권적 봉건체제를 형성한 통일신라 및 고려시대에는 문무 관료에게 경작할 농지를 나누어 주고 관료는 당대의 전조(田租)징수권을 가졌고, 농민에게는 정전(丁田)을 주어 매년 전조(田租)를 징수토록 한 토지지배중심의 봉건제도였다.

우리나라의 조세제도는 이후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대륙법체계를 수용한 일본의 체제를 가져와서 현재의 조세 체제의 골격을 이루었으며 우리만의 조세체제 정립은 진통을 겪으며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 목회자 세금납부 설명회가 있었던 4월 10일 청어람 현장.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제공)
조세에 관한 동서양의 발전과정을 돌이켜 보면 조세부과라는 국가행위(통치수단) 이전에 이러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관점에서 법치국가의 형성에 맞추어 발전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전에는 지배층의 통치수단으로 사용되었지만 법치국가가 형성되면서 국민의 대의기관에 의하여 결정된 법률에 의하여 구성원이 부담할 세금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또한, 교회와 정치가 동일시되므로 헌금과 세금의 구분이 필요치 않았던 신정국가(神政國家)의 개념을 현재시점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세금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의 재정수요를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세금은 국가의 존재기반이 되며, 국가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인 국민은 어떤 형태로든지 공동체 운영비를 부담하여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부담하는 세금은 복음사역 이전에 구성원으로서의 분담(分擔)이다.

국가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공동체비용분담 성격인 세금을 부담하지 않는 것은 다른 구성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행위가 되며, 세금을 분담하는 것은 이웃사랑의 소극적인 실천행위라 할 수 있다.

한편 법치국가의 일반목표(국민의 행복)와 세수의 확보라는 목적사이의 괴리감은 별개의 논점으로 다루어야할 사항이다.

3. 성직자의 속성

‘성직(聖職)’의 단어적인 의미는 성스러운 직책이며 하나님나라 확장과 관련된 용어라 할 수 있다. 좁은 의미로 목회사역자를 지칭하며,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일하는 모든 사람을 성직자라고 할 수 있다.

천지창조 후 하나님은 이 땅을 다스리고 관리하라는 사명을 지시하였으므로 이 땅을 바르게 세우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활용하여 일하는 모든 사람이 성직자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일에 있어 성스러운 직업(聖職)과 성스럽지 않은 속된 직업(非聖職)을 구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분리작업이다.

4. 일의 대가성 여부

우리는 일을 하고 그 결과인 직∙간접적인 산출물로 생활에 필요한 자원으로 사용한다.  때로는 그것이 직접 먹을 수 있는 곡식일 수도 있고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일 수도 있다. 무형의 간접적인 산출물은 다른 재화나 용역을 획득할 수 있는, 가치의 교환 매개체인 화폐로 대신할 수 있다.

우리가 획득하는 일의 대가는 명칭과는 상관없이 부여되는 산출물이므로 명칭에 따라서 그 속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협의의 성직자가 수령하는 금전의 속성은 명칭(사례비, 성역비, 사역비 등)과는 상관없이 일의 대가 또는 무상으로 수령하는 수증금 중 한 가지에 속한다.

무상수증금이라면 일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수증 받는 자의 특성에 따라 부여되어야하나, 현재는 성직자의 능력, 경험 및 일의 특성에 따른 차등지급이 현실이므로 일의 대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5. 이중과세 및 조세부담

교인들이 이미 소득세를 부담한 소득으로 헌금한 교회재정에 원천징수를 하는 것은 이중과세가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중과세란 동일한 소득에 대하여 동일한 귀속자에게 이중으로 과세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인들의 소득은 근로, 사업, 배당 등 다양한 형태로 발생한 소득이고 목회자가 수령하는 소득은 목회사역에 대한 것이므로 소득의 종류가 다른 것이다. 또한 교인들이 소득세를 부담한 소득세와 목회자가 부담하는 소득세는 소득세의 귀속주체가 서로 다르므로 목회자의 소득에 대한 과세는 이중과세가 아니다.

우리가 부담하는 세금은 소득세와 같이 우리가 직접 부담하는 세금(직접세)도 있지만 물건을 살 때 부담하는 부가가치세와 같이 우리가 때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담하는 세금(간접세)도 있다. 간접세의 경우 우리의 주의의무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직접세의 경우 세법이 정하는 절차를 따라서 신고하여야 한다.

소득세법에서는 명칭과는 상관없이 대가성으로 수령하는 모든 금전적 가치를 소득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소득이 있으면 소득을 지급하는 자(교회)가 지급시마다 소득세를 계산하여 원천징수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6. 세법규정의 준수

현재의 대한민국은 기독교 국가는 아니지만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는 나라이다. 성경의 내용은 우리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기준이지만 이를 공동체의 부담을 비기독교인들에게 전가시키는 근거로 비기독교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세금에 관한 논란들은 교회가 세법에서 정하는 절차들을 무시하고 초월법적인 지위를 계속 주장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교회가 상속세 및 증여세 비과세혜택을 누리는 것은 ‘상속세및증여세에관한법률’에서 교회를 공익법인으로 지정하여 증여세 비과세혜택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며, 성도들이 헌금한 금액을 성도 개인 소득세 계산시 기부금으로 공제하는 것도 소득세법에서 혜택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에서 인정하는 혜택을 누리려면 또한 법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절차를 따라야만 의미가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중소형교회 성직자들은 소득세 면세점 이하를 수령하므로 소득세 신고 및 납부절차를 이행하더라도 실제로 납부할 세금이 거의 없다. 그러나 소득세 신고 및 납부절차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교회가 공동체를 무시하는 탈세기관으로 오해를 받게 된다.

7. 나가는 말

세금에 관한 우리의 논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반문해본다.

세금을 내는 것이 맞느냐 틀리느냐의 차원이 아니라 세금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님나라 확장에 도움이 되는가, 우리의 공동체를 하나님나라로 인도할 수 있는가하는 관점에서의 논의라면 우리는 이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해야만 한다.

또한, 공동체 비용분담으로 우리가 내는 세금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공동체의 약한 자들을 위하여 사용되는가 하는 논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고 하였는데 우리의 논의가 당연히 이행되어야할 소극적인 사랑의 실천차원을 넘어 적극적인 행동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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