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의 내용은 단순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셋·노아·아브라함 등의 선민(選民)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는 물질적 축복과 고지론(高地論)의 교과서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같이 창세기가 철저하게 과거사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경우처럼 과거와 현재의 연결점을 물질적인 축복과 권력의 획득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창세기의 ‘원러 의미를 찾는 사람들과 ‘현재적’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창세기의 내용과 메시지를 통해서 쉽게 절망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창세기를 읽다보면, 창세기속에는 살인·음모·간음·강간·억압·거짓말·음해·폭력 전쟁 등 21세기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주제들이 존재하며 그러한 것들은 심지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존재하게 된 지도 이미 오래다. 이와 같은 친근함의 낯설음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성경을 읽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읽음으로 성경을 읽거나 성경을 읽으므로 세상을 읽는 것에 우리는 지독히 낯설어 한다. 사실 우리는 이에 대해서 등을 돌리거나 미화하므로 ‘그러한’ 세상을 잊으려고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고 있는 한 그것은 결코 망각되거나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될 수 없다.

새롭게 읽는 창세기 12~50장의 개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시작점)이기를 바라셨지만, 아브라함으로부터 요셉에게 이르기까지 이 선택된 자들은 복의 종착점이 되는 데 전념하였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요셉까지의 관심사는 나에게 주어진 물질적인 복과 권세를 어떻게 자기 자식에게 안전하게 전해줄 것인가에 있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자기 종 엘리에셀을 입양하여 자기 재산을 물려주려고 했다면, 사라는 자기 여종 하갈을 통해서 낳은 이스마엘을 입양하여 아브라함의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라는 자기 몸에서 낳은 이삭이 젖을 떼자 아브라함의 재산을 나눠줄 수 없다는 이유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낸다.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에서 만나 그들을 축복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이스마엘이 자기 곁을 떠난 후로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아브라함에게는 두 명의 친아들이 모두 없어지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전에 조카 롯과 엘리에셀을 입양하여 자신의 상속자로 삼으려는 시도를 중지시키셨는데, 이제는 자기 몸에서 나은 아들들들 모두 빼앗아 가시려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서 바치려고 했을 때, 이미 아브라함의 뒤편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어린양이 제물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린양을 제물로 바쳤지만, 아브라함은 자신과 이삭 둘이 함께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하였지만, 종들에게 ‘홀로’ 돌아온다.

어째서 아브라함은 홀로 돌아왔을까? 이삭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브라함은 나중에 이삭의 결혼을 위해서 자신의 집사장(執事長)을 하란으로 보낸다. 아브라함이 보낸 큰 재물을 결혼대금으로 받은 리브가의 가족들은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주기로 결정한다. 이미 아브라함은 죽고 이삭이 집사장과 리브가와 그녀의 일행을 맞이한다.

이삭과 리브가는 쌍둥이 아들을 얻으나, 장자권과 축복의 문제로 부부간에 그리고 형제간에 불화와 반목이 발생한다. 아버지는 큰 아들을 지지하고 어머니는 작은 아들을 지지하여 에서가 ‘붉은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동생에게 팔았듯이 이삭은 맛난 것을 배불리 먹은 후에 큰 아들에게 장자권과 축복을 넘겨주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그것을 먼저 알아챈 리브가와 야곱은 변장을 하고 더 맛있는 음식으로 에서보다 먼저 이삭의 장막에 들어가 축복을 받는다.

형의 진노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가던 중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고 그를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약속에 “자신이 평안히 돌아오게 해주신다면”이라고 말하면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재물과 사리사욕에 밝은 외삼촌에게 도망간 야곱은 둘째딸 라헬을 첫눈에 사랑하게 되고 결혼대금으로 7년간 라반의 일을 돌봐주기로 약정하지만, 7년이 지나고 첫날밤을 지내고 나니, 약속했던 라헬이 아니라, 큰딸 레아가 자신과 함께 밤을 지낸 것을 아침에 술이 깬 야곱이 발견한다. 라반은 뻔뻔하게도 그곳의 풍습운운하면서 자신의 책략을 정당화시킨다. 그래서 다시 7년을 더 일하기로 하고 야곱은 라헬과 결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레아와 라헬 사이에 존재하는 자매간의 갈등은 “누가 더 야곱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가?”였다.

14년의 의무기간이 끝나고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집안을 일으키기 위하여 육년을 라반 밑에서 더 일하였다. 결국 야곱은 라반과의 두뇌게임에서 승리하고 양과 염소를 많이 얻게 되고 부유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라반은 야곱을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야곱의 아내들과 종들과 자식들과 재산마저도 자신의 소유로 여긴다. 이제 야곱은 아내들과 의기투합하여 야반도주한다. 라반은 자신의 재산을 빼앗고 심지어 축복의 신인 드라빔까지 훔쳐갔다고 여기고 이들을 쫓아온 라반과 일행들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결국 라반은 야곱의 소유권을 모두 인정해고 상호불가침협정을 맺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은 20년 전에 원수를 맺은 형 에서와 만나야 했다. 그는 자기가 그동안 모은 재산과 대부분의 가족들을 먼저 앞세우고 한밤중에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을 하게 된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 축복을 약속해줄 것을 강요하고 하나님과 사람들과 씨름하여 이긴 자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 후에 다시 앞장서서 형에게까지 나아가지만 그는 자신의 재산이 이전에 자신이 빼앗아갔던 복이라고 말하고 형을 하나님과 황제와 같이 대하게 된다.

형의 용서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거짓말로 형을 앞세우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세겜 근처로 옮겨간 야곱은 그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게 되고 그녀의 친오라비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표인 할례를 가지고 세겜 사람들을 속여 그들을 몰살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약탈한다.

요셉은 야곱의 사랑을 받는 막내아들로서 야곱의 편애와 요셉의 고자질과 가족과 제국통치와 관련된 두 가지의 꿈들이 다른 형제들과 요셉 사이를 갈라놓고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하다가 그를 노예로 팔았다.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은 이집트에서의 주인 보디발의 아내의 성적 유혹을 물리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투옥된다.

감옥에서 바로의 고위관료들의 꿈을 해몽해주고 바로의 꿈에 대한 해석자로서 총리에까지 오른다. 그가 해몽한 기근 동안에 이집트 사람들을 모두 바로의 종으로 만들고 토지와 가축을 국유화한다. 기근동안에 그는 곡식을 사러 이집트에 온 형제들에게 여러 가지 시험과 고통을 주어 결국 그들이 자신에게 굴복하게 하고 형제들의 죄를 고백 받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준다.

야곱을 이집트로 모셔온 요셉은 당시 고대근동의 대제국이었던 이집트의 막강한 권력을 소유자였던 바로의 총애를 받는 권력자로서 활동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던 여인 라헬의 아들이었던 요셉을 여전히 편애하는 아버지로부터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장자권과 축복을 받는다.

사실 요셉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좋은 것들을 모두 소유한 셈이었다. 그러나 레아에게서 낳은 르우벤을 비롯한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의 과거행적으로 인해서 장자권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여종의 자녀들은 야곱으로부터 특별한 축복을 받지 못한다. 역설적으로 유다는 왕권에 대한 축복을 받지만, 이집트에서 통치권을 누리고 있었던 요셉의 때에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개강: 2006년 3월 30일(6주과정) 매주 목요일 저녁 7:00~9:00
장소: 현대기독교 아카데미
수강료: 4만원
수강신청: http://daeantheology.cyworld.com
강의교재: 성기문, <아담의 가족, 아브라함의 가족> 그리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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