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앤조이 신철민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프랑스의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그를 ‘네 문화의 철학자’라고 불렀다.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히브리어 성경과 러시아 문학을 읽었고, 독일 철학자 훗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해석학에 정통하였으며, 프랑스의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는 초기 50년을 거의 무명의 철학자로 살았으나, 후반부 40년은 유럽의 가장 독특하고도 과감한 지적 사상가로 주목받으며 지냈다. 자아와 주체 중심의 서구철학 전통에 전면적 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그는 포스트모던 사상가의 반열에 꼽힌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이 종종 해체주의로 내달리며 욕망의 무제한적 탈주에 마땅히 제동을 걸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과 달리, 그의 철학은 깊은 윤리와 책임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더구나 히브리 사상의 영향이 짙게 묻어나오는 그의 철학은 우리에게 현대의 어느 사상보다 더 깊이 유대-기독교적 가치의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보도록 해준다. 그 자신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나온 경험을 통해 던지고 묻는 실존적 질문은 아직도 전쟁과 살육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은 오늘날의 세상에 울림이 큰 메시지를 던진다. 

레비나스, 유신론적 포스트모던 사상가?

강영안 교수(53, 서강대 철학과)는 기독교계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공동대표 중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사실 국내 철학계에서는 매우 뛰어나고 성실한 학자로 정평이 나있다. 난해하지 않게 잘 읽히는 글로 써낸 그의 저서와 번역서는 이미 10여 권에 이른다.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근대, 이성, 주체를 중심으로 살펴본 현대 한국철학사>(궁리, 2002) 같은 책은 그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국의 책 100선’에 선정되었고, 2005년에는 일본어로 번역되어 좋은 평을 얻고 있다.

2005년 12월에 나온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문학과지성사, 2005)은 강 교수가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유학하면서 접한 이래 20여 년간 천착해온 레비나스 연구를 정리하는 책이다. 국내에서는 단지 ‘타자의 철학’을 주창한 철학자란 내용 말고는 알려진 것이 없는 이 거장 철학자의 사상이 비로소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인터뷰는 설날연휴가 막 지난 1월 31일 서강대의 강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되었다.

공교롭게도 레비나스의 철학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 손봉호 총장(현 동덕여대)이고, 제자인 강 교수께서도 오랫동안 연구를 해왔다.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는 것인가. 

1974년 <문학과지성>에 당시 갓 귀국한 손봉호 교수가 짧은 글을 통해 레비나스를 소개했다. 손 교수는 유학시절 훗설의 현상학을 공부하다가 레비나스를 접했을 때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아무래도 현상학도 자아중심의 철학인데, 이웃을 말하는 철학을 만나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친근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80년대부터 레비나스의 원전을 읽기 시작했다. 원래는 유학시절 박사논문을 레비나스로 쓰려고 했으나, 지도교수가 석사논문을 칸트로 썼으니 바꾸지 말고 그걸로 마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접었던 적이 있다.

레비나스의 철학이 서양철학사에서 갖는 독특함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

서양철학은 근본적으로 주체의 철학이다. 데카르트 이래로 서양철학에서는 인식론이 주도적이었다. 칸트도 그렇고, 현상학도 그렇고 ‘인식’은 결국 그 인식의 주체인 자아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자아중심, 주체중심으로 모든 것이 환원되고 포섭된다. 레비나스는 이것이 근대주의의 핵심이라고 보았고, 정반대방향으로 나아간다. 즉 주체는 ‘타자(他者)’에 의해서만 제대로 규명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주체가 아니라 타자를 앞세우는 것이 매우 생소하게 들린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발생하나.

서양철학에서는 인간을 이해할 때, ‘자유’를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 ‘책임’은 ‘자유’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누가 유리창을 깨거나 규칙을 어겼을 때, 그가 자유로운 존재인가 아닌가(즉 무엇을 행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를 자발적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었느냐)에 따라 책임을 묻는 것이 달라진다. 그가 불가항력적으로나,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행위를 했을 때에는 책임을 묻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또 인식주체로서 능력을 상실한, 예를 들면 정신지체 등은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능하다.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인식주체로서의 자아가 선행되어야 도덕적 책임의 자아가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인식론을 다루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8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인데, 윤리를 말하는 <실천이성비판>은 그리 두껍지 않다. 논의의 무게가 기운다.

레비나스는 이를 완전히 반전시켜서 인식주체로서의 자아보다 도덕적 주체로서의 자아가 우선이라고 본다. 칸트가 서양철학의 전통적 흐름을 계승해서 자유가 책임에 선행한다고 했다면, 레비나스는 실천적인 것의 우위를 인정하며 책임이 자유에 앞선다는 철학을 전개했다. 근대적 주체 개념이 자신이 주인이고 자유가 있다는 것, 자발성(spontaneity)을 강조했다면, 레비나스는 진정한 주체의식은 남을 위해 대신 짐을 져줄 수 있는 것(그의 표현으로는 대속적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수동성(passivity) 혹은 수용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강영안 교수는 더불어 살아야 할 시대에 레비나스가 큰 통찰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타자’란 표현에서 하나님은 ‘초월적 타자’라는 표현이 연상된다. 레비나스는 신의 존재를 ‘타자’의 개념에서 어떻게 풀어내는가.

‘타자’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흔적이지, 하나님은 아니다. 그러나 공통점은 ‘무한’이란 개념, 즉 ‘제한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나의 권력으로 지배할 수 없는 것이 ‘타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타자란 ‘나와 다르고, 내가 아니다’는 의미가 있고, 동시에 ‘내가 지배할 수 없다’는 의미가 있다. 근대적 세계관은 끊임없이 타자를 자기동일시(identification)하고 자기 안에 포섭하려고 해왔다. 지배하려고 한 것이다. 그 결과 근대적 세계관은 닫힌 우주가 되어버렸다.

레비나스가 그런 면에서 ‘타자’의 발견이 곧 ‘주체’의 발견이 된다고 말한 것은 그 자신이 현대사를 몸으로 겪으면서 터득한 깨우침도 컸을 것 같다.

그는 프랑스 군에 통역하사관 자격으로 입대해서 러시아어와 독일어를 프랑스어로 통역했다. 그는 하노버 근처에서 5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는데, 유대인이었지만 ‘군복을 입고 있었기에 살았다’고 했다. 그 혹독한 생활 속에서 포로들이 숙소로 돌아올 때 반갑게 짖어준 개야말로 ‘독일의 마지막 남은 칸트주의자였다’고 했던 기록이 있다. 나찌독일 치하에서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대하라’는 칸트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은 그 개뿐이었기 때문이다. 레비나스의 이런 경험은 그로 하여금 ‘인격적 다원주의,’ 즉 한 개체 개체가 존중받는 사회를 이상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자유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우리의 자유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레비나스의 사상이 기독교 신앙과 친근성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유대-기독교 사상을 단지 철학적 언어로 옮겨놓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윤리’와 ‘종교’는 타자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참다운 종교가 가능하려면 우선 ‘무신론’이 필요하다. 두 측면인데, 주변의 자연사물을 신격화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탈신화화(de-mythologization)이다. 또한 국가, 문화, 역사, 민족 등 전체성(totality)의 개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개체를 각각 고유한 개체와 인격으로 세울 수 있을 때라야 종교와 윤리가 가능하다.

자연세계의 탈신화화나 전체성의 해체 등을 말하려면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우상숭배’를 경계하는 것이 있지 않나. 굳이 ‘무신론’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단지 종교적 언어 사용을 피하기 위해서였는가.

‘신이 아닌 것을 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레비나스는 개념으로서의 ‘신’마저도 거부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개념으로 신을 포착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마저도 비판하기 위해 ‘무신론’이란 표현을 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하도록 자극을 주지만 결코 우리의 개념 속에 담길 수 없다.

레비나스의 철학에 가장 근접한 신학자로 장 뤽 마리옹(Jean Luc Marion)이 있다. 그는 존재 없는 신(God without being) 이란 개념을 내어놓고, 어떻게 계시가 가능한가, 인간의 제한된 경험을 넘어서는 신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를 탐구한다. 레비나스의 사상은 신학적으로 칼 바르트와 통하는 점이 많다.

레비나스가 ‘대속적 삶’이나 ‘메시아’를 말할 때는 유대교도 아니고, 기독교 신학에 근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레비나스는 인간들에게 보편적으로 ‘타자를 위해 대신 짐을 지는 삶’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회심이나 구원에 대한 전통적인 기독교적 이해로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레비나스에서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기독론과 성령론이 빠져있다. 창조와 계시에 있어서는 분명한데, 구원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 그러나 레비나스의 철학이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존재양식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바는 강력하다. 그리스도인은 ‘타인의 짐을 대신 짊어지는 자’이다. 이런 면에서는 본회퍼가 매우 가깝다. 본회퍼는 그리스도인은 남을 위한 존재(being for others)라고 했다. 우리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에 급급한 신학적 관심을 깨뜨리는 좋은 자극이 된다.

한국사회는 욕망충족이 전부인 세상 속에서 왜, 어떻게 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가를 존재론적 차원에서 묻고 있다. 레비나스 철학은 이런 면에서 주목받는 것 아닌가.

그동안 윤리학과 형이상학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가 되던 레비나스 사상의 정치사회적 의미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이에는 자끄 데리다의 영향이 크다. 데리다는 후기로 갈수록 레비나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그가 사용한 ‘환대(hospitality)’라는 개념은 레비나스로부터 온 것이다. 서구사회가 난민문제, 타민족, 다민족 사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등에 레비나스가 던지는 통찰이 크다. 한국도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의 이론으로 레비나스를 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운동의 이론은 과학이 되고자 하다가 비판대상과 동일한 논리구조에 함몰된다. 근대주의나 포스트모던주의 영향 아래 일어나는 운동들은 결국 그것이 선호나 취향이 최종 잣대가 되는 맹점을 보이곤 한다. 레비나스는 ‘타자성’을 옹호함으로써 더 본질적인 판단근거와 동기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인권운동은 타인의 인권이 보호되고 옹호되어야 하는 이유를 그것이 훼손될 수 없는 고유한 인격, ‘하나님의 흔적’으로서 타자임을 존중하는 데에서가 아니면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사회유지나 발전은 욕망과 취향에 근거해서는 불가능하다. 잠정적 휴전상태에 불과한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생존수단이나 취향 차원이 아니라 ‘진정한 내가 되는’ 삶의 방식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철학자 리차드 로티가 흥미로운 발언을 했다. ‘기독교만이 타인에 대한 관심을 통해 나에 대한 관심을 말하는 드문 종교일 것이다’ 존 스토트 목사도 그렇게 말했다. ‘죄란 자기중심성(self-centeredness)이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이웃 먼저, 하나님 먼저’이다. 운동의 기초철학이 어디에 근거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양희송 / 편집위원장·청어람아카데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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