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월) 정오.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에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는 1000여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국회의사당을 향해 조용히 행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정치와 영성을 주제로 한 3일간의 컨퍼런스를 마치며 가진 이 행진을 통해, 미국 정부가 빈곤층을 위한 예산을 삭감한 것에 항의하고, 하나님의 관심에 합하는 정의와 평화의 정치력을 발휘하도록 촉구하는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3일간의 컨퍼런스를 마치고 난 후 국회의사당을 향해서 행진하는 모습.  (사진제공 양희송)
국회의사당을 향한 행진

1월 14일(토)에서 16일(월),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Capitol Hill)에 바로 인접한 하야트호텔에서는 '정치와 영성: 공적 신뢰성을 찾아서(Politics and Spirituality: Seeking for Public Integrity)' 컨퍼런스가 열렸다. 2005년 <God's Politics>를 출간하면서 <뉴욕타임즈>를 비롯 미국 주요 언론의 집중적 조명 속에 전국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부각된 짐 월리스(Jim Wallis)와 프란시스 수도회 신부이면서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를 운영하며 정력적으로 강연과 저술을 해온 리차드 로어(Richard Rohr)가 연합해서 조직한 이번 컨퍼런스는 미국 주류 백인사회에서 정치와 신앙의 문제를 고민해온 이들을 1600여 명이나 불러 모으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중장년층 백인들이었는데, 그들의 반응으로 보아 가톨릭 신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지지 성향을 지닌 이들이 대다수였다. 아마도 60년대의 반전운동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들이 다시 모인 듯한 느낌이 강했다.

각 세션마다 주강사가 60분  가량 강연을 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10여 분간 코멘트를 하고, 청중들의 질문지에 주강사가 다시 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3명의 주강사들 간의 입장 차이를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청중들의 반응도 적절하게 반영되어서 소통의 간격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한 세션은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E.J. 디온(Dionne)의 사회로 청중들과 세 명의 주강사들 간에 질의응답과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리차드 로어 신부는 미국에서 종교가 점점 더 '위장된 나르시시즘(disguised narcissism)'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야 말로 가장 잘 위장된 영성(the best disguise of spirituality is religion)'이라고 말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영역에서 이런 현상을 타파하는 것이 곧 기독교의 본령을 되살리는 길임을 재차 강조했다.

여류 작가 앤 라모트(Anne Lamott)는 재기 넘치는 풍자와 시니컬한 말투로 시종일관 청중들을 사로잡았는데, 그 중 '낙태는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선택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여 청중의 상당수가 박수로 이에 호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낙태 문제는 청중들 모두가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짐 월리스는 이 문제에 대해서 낙태 찬성론자나 반대론자들 모두 극단적 근본주의자가 될 필요가 없으며, 양자가 다 낙태율이 낮아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다고 정리하면서 논의가 전형적인 '선택(pro-choice)이냐 생명(pro-life)이냐'로 각을 세우지 않도록 정돈을 해주었다. 가톨릭 참석자가 많았음에도 낙태 찬성 입장에 호응이 높았던 것은 의외의 모습이었다.

 '종교'란 '가장 잘 위장된 영성'

▲ 짐 월리스. (사진제공 김두식)
짐 월리스는 현재 미국사회에서 종교적 가치란 것이 특정 정치세력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으나, 진정한 신앙의 자리는 사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도덕적 추동력과 그 사회의 문제를 비추어볼 수 있는 원칙을 제공하는 데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 그가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펼칠 때, 기독교 지도자들이 "베트남전을 반대하라는 말이 성경에 어디 있느냐"고 물어올 때, 그러면 "미국을 축복하라(God bless America)는 구절은 성경에 나오느냐"고 반문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시대의 고통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는 데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기념일을 끼고 이루어진 이번 컨퍼런스 기간에는 그를 기리는 언급들이 많았다. "운동이란 불가능한 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드는 것(movement is to make ‘impossible’ to ‘inevitable’)"인데, 킹 목사의 시대에 인종차별이란 거대한 문제에 도전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고통에 귀 기울였던 이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그 '불가능한 일'은 이제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가피한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사회는 지금 심각한 영적 갈망과 정의에 대한 배고픔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 요구에 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TV 전도자들 때문에 나는 신앙을 버렸습니다"라거나 "나도 신앙인이지만, 지금 미국사회에서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은 내가 믿는 그 신앙이 아닙니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는 짐 월리스는 기독교가 예언자적 종교(prophetic religion)로서 이 사회에 악과 어둠이 아니라, 선과 빛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짐 월리스는 오랜 세월을 사회운동가로 살아왔으나, 그는 스스로 부흥을 갈망하는 자라고 자임한다. 그는 규정하기를 "부흥(revival)과 갱신(renewal)은 다르다. 갱신은 개인이 영적인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을 말하는데, 부흥은 그것이 사회적 수준에서 변화를 몰고 올 때 해당된다"고 했다.

이는 미국의 복음주의운동을 연구한 학자들이 흔히 '거대한 반전(great reversal)'이라고 부르는 19세기 후반부에 일어나는 복음의 사사화(私事化: privatization) 이전 시기에 부흥을 이해했던 방식과 통한다. 제1차, 제2차 대각성운동 때 나타났던 강력한 사회윤리적 강조, 특히 찰스 피니(Charles Finney)에 와서는 노예제 폐지운동이 부흥운동과 함께 진행되었던 사례를 상기시키는 일이었다.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앞둔 한국교회가 그리는 부흥의 그림은 어느 쪽인가 생각해보게 만든다.

짐 월리스, 예언자의 목소리

▲ 1월 14일에서 16일까지 워싱턴 DC하야트호텔에서 열린 컨퍼런스. (사진제공 김두식)
지난 두 번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도덕적 가치'(moral values)를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부각시켰다. 공화당은 낙태와 동성애라는 두 가지 코드를 내놓고 이것이 '생명'과 '가정'을 선택하는 일이라며 시종일관 밀어붙였고, 민주당은 여기에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대목에서 공화당 쪽으로 표를 몰아주었다.

짐 월리스는 자신의 책 <God's Politics>에서 이런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을 분석했다. 첫째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단일 이슈 투표자(single issue voters)’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 즉 후보의 정책을 평가할 때는 그의 정책 전반을 보아야지 한 가지 이슈만 놓고 표를 주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둘째, 그러나 유권자들이 도덕적 가치를 따라 투표한 것은 옳았다는 것. 공화당은 이 지점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가치만 선택적으로 부각함으로써 표를 얻어갈 수 있었으나, 민주당은 이 점에서는 전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다.

짐 월리스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pro-life)는 낙태반대운동이 도덕적 선택의 문제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살상되는 전쟁에 대한 반대 역시 그 못지않은 생명보호(pro-life)의 문제임이 선명히 제기되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통틀어 5~6회밖에 언급되고 있지 않은 동성애가 기독교적 가치에 그토록 심하게 역행하는 일이라면, 성경이 2000회 이상 언급하고 있는 가난한 자를 돌보는 문제를 외면하는 일이야 말로 기독교적 가치의 구현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일이란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도덕적 가치가 유권자들의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부각된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지만, 그 '도덕적 가치'가 한쪽 당파에 의해서는 선택적으로 축소되었고, 다른 당파에서는 전적으로 외면당했다는 점에서 양쪽 진영 모두가 '도덕적 가치' 구현에 중대한 왜곡과 실패를 저질렀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짐 월리스의 책이 전국적으로 주목 받았고, 그의 주장이 주요 언론에서도 크게 소개된 것은 이런 왜곡된 양자택일에 내몰린 미국 시민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가치에 부합하는 정치적 대안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지를 그에게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도 유사한 논쟁을 앞두고 있는 만큼 그에게 한국의 상황을 놓고 질문을 던져 보았다.

지금 한국에서도 다음 대통령 선거에 나선 유력한 후보가 기독교인이다. 부시 정부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얻게 된 교훈은 무엇인가?

사실 그가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정책이 무엇이냐를 봐야 한다. 마틴 루터는 유능한 불신자의 통치를 받는 것이 무능한 그리스도인의 통치 아래 있는 것보다 낫다고까지 했다. 무엇보다 가난한 자를 위해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잘 부합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당신은 지난 대선 전 기독교 지도자들이 부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을 때 '하나님은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니다(God is not Republican, or Democrat)'란 캠페인을 펼쳤다. 이번 컨퍼런스는 압도적으로 민주당 친화적이다. 하나님은 민주당 편인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기독교인이면 당연히 공화당 지지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는 종교인으로서 공개적으로 어느 정당의 편을 들지 않는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특정 정당의 편에 서지는 않았지만, 정치적 과제(agenda)를 놓고 정당들에게 지지를 구하는 방식으로 했다. 나도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

최근 그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빈곤층을 위한 예산이 삭감된 데 대해 항의하는 연좌시위를 벌여 함께 참여한 100여 명과 더불어 체포되기도 했다. 예산이야말로 도덕적인 것이라며 윤리적 예산(moral budget)을 수립하라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정치는 영성에서 나와야 한다'는 그의 소신이 한국 땅에서도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짐 월리스는 누구인가?

미시간 주립대학 재학 시절 베트남전쟁과 인종차별 항의운동에 참여했던 짐 월리스는 1970년에 신학을 공부하러 트리니티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Deerfield)에 입학했다. 그는 학생운동가로서는 비교적 온건한 편에 속했으나, 매우 보수적이었던 신학교 분위기에서 곧 문제적 인물로 부각되었다. 1971년 그는 소수의 학생들과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공동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위해 <Post-American>이란 잡지를 발간했다.

1975년 시카고에서 워싱턴 DC로 근거지를 옮겨 <Sojourners>란 이름으로 공동체와 잡지를 운영해왔다. 그는 니카라과 사태를 비롯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이자 운동가로 살아왔다. 그는 운동의 초창기부터 '영성'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잡지에는 데스몬드 투투 주교, 헨리 나우웬, 로버트 맥카피 브라운 등 폭넓은 신학자나 운동가들이 참여했으나, 그 스스로는 '복음주의자'로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Soul of Politics> <Call to Conversion> <God's Politics> 등을 저술했고, 하버드대학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미국사회에서 빈곤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운동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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