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대한민국에는 세 가지 열매로 나라가 시끄럽다. 첫째 열매 이름은 독수독과(毒樹毒果)라고 한다. 삼성 X파일 사건이 났을 때부터 널리 애용된 과실이다. 서양에서 들여왔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법조인들 중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둘째는 선악과(善惡果)라고 불리는데 성경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역사도 오래고, 중동지역에서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는 애국과(愛國果)이다. 이건 토종 과일이다. 많이 먹을수록 좋다고 잘못 알려져 있어서 식중독 사고가 가끔 나는 과일로 제일 좋은 것은 월드컵 같은 운동경기 볼 때 곁들여 먹으면 무난한 편이다.

옛날에는 과일 먹는 법이 딱 정해져 있었는데 요즘은 다양한 시식법이 등장한다. 먼저 독수독과는 독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라 먹으면 다 죽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삼성 X파일 사건 때에도 그건 ‘도청’(盜聽)이라는 독이 든 나무에서 얻어진 열매이기 때문에 까면 안 된다고 했고 대다수 법조인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나무 탓만 하지 말고, 껍질을 잘 까보면서 먹을 것 못 먹을 것 가려보자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역대 정권들이 다 남몰래 그 열매를 즐겼단다. 그걸 보면 위험하긴 하지만 독으로 독을 해독한다는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선악과와 애국과는 요즘 한창 찾는 사람이 많은 걸 보니 제철인가 보다. 성경이란 옛 문헌에 보면 선악과를 놓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도 할 만큼 탐스럽기도’(창3:6) 하였다고 전한다. 인류의 조상은 뱀의 꼬임을 받기도 했거니와 그 열매의 탐스러움에 자제심을 잃고 따 먹은 게 분명하다. 먹고 나면 무지 똑똑해진다는 것이다. 왜 ‘지혜과(智慧果)’라고 안 하고 ‘선악과’라고 불렀는지 궁금했는데, 지혜를 베어 무는 첫맛보다 그 지혜의 선악을 판별하는 뒷맛이 그 열매의 진짜 맛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그 이름이 붙지 않았나 추측해볼 뿐이다. 선악과를 먹은 사람은 자신이 지혜를 가졌고, 선악 판단의 자율권을 가진다고 주장한다는 특징이 있다.

무슨 과일 드셨수

올해는 황우석 교수의 등장으로 때 아닌 애국과 소비가 크게 늘었다. 우리는 황 교수가 어느 정도 애국과를 즐긴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과하지 않으면 그건 나쁘지 않다. MBC가 애국과를 안 먹은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대신 선악과와 독수독과를 섞어 먹었다. 아직까지 이런 혼합섭취의 부작용에 대한 임상보고는 없다. 다만 MBC는 애국시민들의 애국과 투척으로 하도 얻어맞아서 실신상태인데다, 독수독과를 먹은 사실이 밝혀진 만큼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진실인지 헛소린지 판단 불가능이라고 여긴 여론 때문에 더 이상의 진위 논란을 벌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관건은 황우석 교수가 먹은 열매이다. 황 교수도 어떤 종류의 독수독과를 삼킨 것은 아닌지, 알고 먹은 건지 모르고 먹은 건지, 주변에서 알면서 권했는지 등등 온갖 의혹 시나리오가 순열조합을 이루고 등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듯 애국과를 많이 먹는다고 무슨 과일이든 다 해독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이런 의혹은 빨리 푸는 게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들 선악과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이 독수독과와 섞일 때 인류의 삶에 어떤 부작용을 갖고 오는지 잘 모른다.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지혜 있고 판단력이 있다면서 저지른 과오가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는 나름의 지식과 판단력이 빚어내는 오판과 오만의 이종교배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면 정말 묻고 싶다. “주님, 그래서 선악과를 안 먹는 게 좋았던 거였나요?”

양희송 / 편집장·청어람아카데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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