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우석 신드롬에 빠진 한국 국민은 조작된 뉴스를 듣고 환호하던 김 노인을 닮았다. 영화 '간 큰 가족' 중에서.
오늘 아침 신문에는 황우석 교수가 논문을 조작했다는 서울대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와 함께 황우석 교수가 교수직을 사퇴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섀튼 박사가 황우석 교수와 결별한다는 소식부터 시작되어, 문화방송이 황우석 논문의 조작을 고발하는 PD수첩을 방영하다가 오히려 전 국민적인 반발을 사서, 광고가 중단되는 과정을 거쳐, 급기야 줄기세포는 없다는 노성일 이사장의 발언으로 이어졌고, 드디어 황우석 교수와 관련된 혼란스러운 상황은 이제 종료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최근의 황우석 파동을 지켜보면서, 나는 조명남 감독의 영화 [간 큰 가족]이 떠올랐다. 간 큰 가족은 유산 상속을 위해 온 가족이 통일 연극을 꾸민다는 이야기이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인 김 노인(신구)은 죽기 전 통일이 되면 유산을 가족에게 물려주고, 통일이 안 되면 통일 사업을 위해 50억원이 되는 유산을 기탁할 것을 유언으로 남겨 놓은 상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큰 아들 명석(감우성)은 영화 감독인 동생 명규(김수로), 어머니(김수미) 등과 함께 김 노인이 죽기 전 통일 연극을 꾸미기로 한다. TV 방송을 조작하고, 있지도 않은 사실이 실린 신문을 만들고, 이웃들까지 포섭하는 눈물겨운 노력 끝에 간 큰 가족의 통일 자작극은 성공 일보 직전까지 간다는 이야기이다. 김 노인은 비록 자신이 속았지만, 통일이 되었다는 환상 속에서 살았던 그 며칠 동안은 정말 행복했었노라고 고백한다.

황우석 박사는 그동안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간 큰 가족이 김 노인에게 선사했던 희망과 꿈을 선사했다. 우리나라 과학 분야에서 최초로 노벨상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도 했고, 강원래 같은 장애인들이 벌떡 일어날 수 있는 꿈을 가졌다. 수십 년이 걸려도 어려운 과학적 진보가 불과 1년 만에 황우석 사단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군민들은 행복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꿈과 행복은 헛것이었음이 밝혀졌다. 논문은 조작되었고, 그 동안 황우석 박사가 발표한 논문들과 복제 소, 복제 개 등도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황우석 박사에게 과학적으로 속고 있을 때는 모두가 행복했다. 하지만 이제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통일은 아직도 소원한 일이란 것을 알게 된 김 노인이 통일의 환상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황우석을 믿고 있을 때 행복했던 그 기분으로 앞으로도 행복하게 지낼 수는 없는 것 같다.

Biotechnology를 전공하고 현재 UPenn에 교환교수로 오신 분을 만났는데,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줄기세포는 몸에 이식했을 경우 전혀 엉뚱한 것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같은 줄기세포가 뼈로도 발전할 수 있고, 아니면 다른 세포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암세포로 작용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같은 세포가 왜 다르게 발전하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규명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조절하는 기술까지 얻으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고 한다. 강원래가 일어서려면, 통일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더 길고 먼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1-2년 후면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준 황우석 교수는 그런 점에서 간 큰 가족의 큰 아들 명석과 다름이 없다.

성탄절도 그리고 예수의 사건도 어떻게 보면, 황우석 신화와 닮은 점이 있다. 사람이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우선, 간 큰 가족의 큰 아들과 황우석은 거짓말을 통해 얻고자 하는 분명한 무엇이 있었다. 간 큰 가족의 큰 아들은 50억이라는 아버지의 유산이 있었고, 황우석은 세계적인 명성과 그에 따른 수백억의 지원금이 있었다. 하지만 초대교회 교인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회당에서 축출 당하고, 옥에 갇히고, 심지어 사형 당했다.

둘째로, 간 큰 가족은 통일이 안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줄 일들이 널려 있었다. 황우석의 논문도 BRIC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한 젊은 소장학자들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진실 앞에서 거짓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황우석 파문을 보면서 아브라함 링컨의 말이 떠 오른다. "당신은 모든 사람들을 잠시 동안 속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항상 속일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항상 속일 수는 없다." 그런데 예수의 이야기는 반대의 증명이 결코 나온 적이 없었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행한 기적이 조작된 것이라는 증거를 댈 수 없었다. 앉은뱅이가 일어섰다는 기적에 대해서, 눈 먼자가 시력을 갖게 된 기적에 대해서, 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바알세불의 힘을 빌렸을 것"이라는 추측성 멘트뿐이었다. 시체만 찾아오면 예수가 부활했다는 주장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유대인들은 결코 시체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제자들이 훔쳐갔을 것"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과연 시체를 훔쳐간 제자들이 그 시체를 위해 목숨을 버렸을까?

이제 성탄절이다. 거짓은 진실 앞에서 밝혀지게 되어 있고, 진실은 힘을 발휘하게 되어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었다. 이러한 능력이 이번 성탄절에도 우리에게 임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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