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래 지음/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 김영사 펴냄/ 354쪽/ 15,900원

현재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처음 당선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를 둘러싼 인맥이 과거 그의 아버지나 레이건 정부 때의 인사들인 것을 보고 현실주의적 외교노선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9․11테러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대외정책은 급속히 일방주의(unilateral)적으로 기울었고, 선제공격론(preemptive strike)과 더불어 테러범에 대해서는 고문도 가능하다는 법률 제정 등 파죽지세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모든 과정의 배후에 ‘신보수주의자’(neo-conservative: neo-con)라고 불리는 집단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나 사실상 우리는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른다. 혹은 막연히 국제정치의 흐름에 낯설고 미국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무식한 깡패집단 비슷하게 그려보기도 한다.

KBS 정치부 기자인 박성래는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에서 이런 세간의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거리가 먼 것이며, 네오콘은 누구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류로 국내에 소개된 책들 가운데는 가장 본격적이고 대담한 주장을 펼치며 이 사안을 파헤치고 있다.

그는 네오콘을 이해하는 몇 가지 키를 제시한다. 첫째, 네오콘은 레오 스트라우스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는 스트라우시언들이다. 둘째, 스트라우스는 고대 철학의 관습을 따라 자신의 생각을 암시적으로만 전달하고 있다(이 책에서는 ‘밀교적(esoteric)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스트라우스의 사상을 액면 그대로 읽어서는 안 된다. 셋째, 그는 스트라우스의 사상에 비판적 연구자인 샤디아 드러리나, 전직 스트라우시언인 앤 노턴 등의 도움을 통해 스트라우스의 사상을 재구성해서 볼 것을 주장한다.

네오콘은 레오 스트라우스의 자녀

박성래는 언뜻 보기엔 ‘음모론’처럼 보이는 면이 없지는 않으나 책 전체에 걸쳐 상당히 일관성 있게 논증을 해나간다. 그의 안내를 따라 가면 부시 대통령이 왜 ‘레짐 체인지’, ‘레짐 트랜스포메이션’ 등의 낯선 용어를 쓰는지,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에 이어 왜 ‘독재의 종식’(end of tyranny: 박성래는 ‘독재’가 아니라 ‘참주정의 종식’으로 옮겨야 한다고 본다)이란 표현이 등장했는지 설득력이 있다.

레오 스트라우스(1899~1973)는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마르부르크대학에서 공부했으며 니체에 심취했다.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였고, 칼 슈미트에게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193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주했고, 시카고대학 정교수로 은퇴할 때까지 정치사상과 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유태인이었으나 나치즘에 긍정적이었고, 이는 하이데거나 칼 슈미트 등과도 통하는 부분이었다.

그의 영향력은 미국에서 크게 발휘되었는데 고대 그리스의 고전문헌을 새롭게 재해석하면서 많은 추종자들과 우호적 청중을 얻었다. <미국정신의 실종>을 써서 미국대학 교육의 위기를 설파한 앨런 블룸(Allan Bloom)도 그의 제자이고, 현재 부시 행정부의 핵심인 폴 월포위츠도 그와 블룸에게서 배웠다. 스트라우스의 제자들은 미국의 일류 대학에 포진하고 있는 엘리트 그룹이다. 그들은 철학, 사회학 등을 공부한 이들이고 교수로 재직 중인 경우가 많다. 스트라우스의 추종자이자 네오콘의 대부로 불리는 어빙 크리스톨은 스트라우스를 읽고 일생에 한 번뿐인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듯이 스트라우스가 이 시절 대학사회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한 크기였다. 

그의 사상은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미국은 고대 아테네나 로마제국이 성취하지 못한 제국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자유주의 사상이나 진보주의 등은 오히려 이런 목표를 약화시키는 주범이란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가 언제나 좋은 정치는 아니며 특히 우중(愚衆)의 통치는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아테네의 패망에서도 나타나듯 역사의 후퇴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본다. 좋은 정치는 사실상 어떤 궁극적 가치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철학자, 혹은 엘리트들에 의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윤리적 삶을 살도록 권고되어야 하는데, 이는 그들이 삶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할 용기나 역량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대중과 엘리트 사이의 구별을 당연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50년대에 트로츠키주의자였다가 전향한 네오콘 일세대들의 엘리트적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주사파에서 전향한 한국의 ‘뉴라이트’들과 비슷한 궤적이다) 네오콘은 이렇게 50년대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레오 스트라우스의 사상에서 이론적 토대를 찾으면서 급격히 우파적 성향을 갖게 된 내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엘리트 사상가이자 정치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했는데 70년대 민주당 카터의 대통령 당선을 도왔으나 카터가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을 받아들이지 않자 공화당으로 파트너를 바꾸었다.


이들은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에서 요직에 등용되었고,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 때에는 뉴트 깅그리치 의원을 도와 처음으로 공화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과거의 공화당 정권에서 이들은 중요한 엘리트 공급원이었으나 비교적 현실주의적 정치노선을 선택한 주도세력들에 의해 늘 견제 받는 입장이었다. 현재의 부시 대통령에 와서는 비로소 이들이 견제 받지 않는 최고 권력을 구가하게 된 것이다.

전향한 좌파 엘리트, 스트라우스 읽고 우향우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깡패 집단이 아니라 적어도 70년대 이래로 30년간 정치적 이념과 정책, 관료 경험 등을 바탕으로 집권을 쟁취한 이들인 셈이다. 어빙 크리스톨 같은 이는 <위클리 스탠다드> 등의 잡지를 발간하고, 70년대부터는 헤리티지 재단, 미국 기업연구소(AEI) 등 우파 씽크탱크의 발족에 지대한 영향력을 제공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부시 대통령은 네오콘 세력과 전략적 연대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미국에서 보수주의는 1950년대 이래로 자신들이 주도권을 잃었다는 피해의식 혹은 소수자 의식에 시달려왔다. 그것을 가장 강력하게 반전시킨 이들이 네오콘으로 대표되는 엘리트 그룹이다. 이들의 하부구조는 역시 수적으로는 다수이지만 여전히 소수자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기독교 우파세력들이 떠받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동안 사회의 기득권을 갖고 있었던 세력들이 불과 10여 년 만에 피해의식과 소수자의식으로 중무장하고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의아해하곤 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미국 보수주의의 대반격은 얼마나 고무적이었을까. 우파 일각에서 나오는 전략, 즉 외곽의 씽크탱크를 만들자거나 우호적 사회집단을 확장하는 노력(뉴라이트 등) 등이 다 낯설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국 보수파의 성공 사례에는 미국의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자유주의 세력의 분열과 와해도 한몫했다. 그들은 요즘 무얼 생각하며 대안을 찾고 있을까? 절치부심하는 그들이 요즘 즐겨 읽는 책은 일전에 소개한 짐 윌리스(Jim Wallis)의 <God's Politics>라고 한다. 세상은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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