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전으로 고통받는 시레라리온의 해맑은 아이들과 김혜자 씨. (사진제공 월드비전 웹사이트)
어느 PD가 ‘내 인생의 사람’이란 프로에서 탤런트 김혜자 씨를 소개했습니다. 구호단체 월드비전의 홍보대사인 그녀는 그 프로에서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의 아픔을 증언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감동에 빠진 PD는 이런 느낌이 너무 낯설어 ‘내가 왜 이러지?’ 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여러 곳에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겠지요. 그 아이들을 도우면 좋겠어요.’ 그렇게 결론이 날 게 뻔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에는 자신을 향해 무서운 손가락질을 하고 맙니다. ‘내가 참 더럽게 삶을 살고 있구나.’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그 PD의 경험을 똑같이 했습니다. 신비롭게도 그녀의 이야기는 마치 끝 모를 마음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소리 같아서 영상보다 뚜렷하고 글보다 정확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 씨가 그녀의 연기를 보면서 이 땅의 모든 여인네들을 씌운 듯하다고 말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녀의 얼굴은 아프리카의 모든 굶주린 아이들의 신음과 눈망울을 씌운 듯했습니다.
 

▲ 박명철 / 월간 <느티나무> 편집장.
“나는 유명한 배우고, 너무 많이 사랑도 받았고, 또 너무 많은 걸 이루고, 많이 가졌어요. 그러니 얼마나 권세 가지고 돈 가진 사람들과 만나서 악수를 했겠어요? 그래도 제 손이 기억하는 것은요, 힘없이 죽어가는 그 아이들의 손이에요. 그 손만을 기억해요. 그러니 그들의 손을 더 많이 만질 수밖에 없어요.”

그랬습니다. 그녀의 손이 기억하는 아이들, 아이들의 얼굴을 보듬는 그녀의 맨 얼굴, 티끌처럼 가벼운 아이들을 품은 그의 따뜻한 가슴, 그렇게 그녀는 온몸으로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볼 때면 그 아이들의 눈망울이 그려지고, 그녀가 말할 때면 아이들의 끊어질 듯한 호흡이 들리는 것입니다. 
 
박명철 / 월간 <느티나무> 편집장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