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속 목소리는 귀에 익은 고향의 사투리가 물씬 풍겼습니다. "내 모리겠나? 아무개다." 이름을 듣는 순간 저는 이미 그 이름을 부르던 30년 전의 시간으로 가 있었습니다. 마흔이 된 중년의 목소리였지만 저에겐 열 살짜리 개구쟁이의 파릇한 목소리로 들렸습니다. 서로 집을 오가며 온갖 장난을 다 쳐대던 사이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몇 번 보았지만 큰 키와 껄렁한 말씨들이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더 이상 말도 붙여보지 못했던 친구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흔이 되어 다시 열 살이 되어버린 소년처럼 서로를 향해 그때의 마음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가 밤이 늦었음에도 아직 고향에 그대로 살고 있는 친구에게 달려갔습니다. 마중 나온 친구의 얼굴을 몰라볼까봐 걱정했는데 살이 좀 붙었을 뿐 그때 얼굴에 그때 웃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친구 집에서 이제 새로운 가족을 일군 친구의 아내와 잠든 친구의 아들과 딸을 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풍경이었습니다. 우리는 새벽까지 수많은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꺼내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부와 그들의 옛 모습들을 추억했습니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우리는 자주 그렇게 독백했습니다. 신기하고도 감격적이었으며, 무엇보다 따뜻했습니다.

▲ 박명철 월간 <느티나무> 편집장.
작가 탄줘잉이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책에서 열여섯 번째 할 일로 '동창 모임 만들기'를 제안한 것을 기억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학창시절을 떠올리고, 그 시절의 고민과 사랑과 친구를 확인할 때 얼마나 깊은 감사와 행복과 안도감이 밀려오는지 탄줘잉은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 가을에 먼저 우리가 손을 내밀었으면 합니다.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 존재하는 그 친구들에게 말입니다.

"반갑다, 친구야!"

박명철 / 월간 <느티나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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