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의 가을운동회를 위해 하루 휴가를 냈습니다. 아빠들이 하는 경기종목을 신청해 뒀다니 어쩔 수 있습니까?

제게 어릴 적 가을운동회는 봄소풍과 함께 가장 기다려지는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을운동회를 없애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니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하지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만국기 펄럭이던 운동장, 어머니가 싸오신 김밥, 삶은 고구마와 밤, 달걀, 그리고 운동회가 마칠 때쯤 해 기우는 운동장에서 정리체조를 하던 풍경까지, 가을운동회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추억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리고 그 추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또 얼마나 풍성했는지요. 아들에게도 그런 추억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 박명철.
황규관 시인의 '가을운동회'는 어머니와 겹쳐 있어 눈물겹습니다. 시인은 "살다가 길을 잃어 두리번거릴 때, 언제나 저 멀리서 빛나는 건 흙먼지 뿌옇던 전주남국민학교 1학년 때의 가을운동회, 히말라야시다 좁은 그늘이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고향 같은 가을운동회의 추억이 생기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어느 아빠의 유서에 "운동회에 못 가서 미안하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유서를 읽으며 하염없이 눈물 흘렸을 아이의 아픔을 생각했습니다. 가을운동회는 그러므로 단순한 하루의 행사가 아니라 모든 날 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하루입니다. 그 하루를 위해 엄마 아빠의 정성이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운동회 날, 아들 체면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 일등을 하고 다섯 권이나 되는 공책을 상품으로 받았습니다. 자랑스러움에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달리는 것 봤어?" 그랬더니 이 녀석 별 일 아니란 듯 말합니다. "응, 일등 했잖아." 그렇지만 아빠가 달릴 때 누구보다 소리 질러댔을 녀석을 알기에 이놈 내숭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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