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는 것보다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는 죄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한국교회가 우리를 사랑하시되 도중에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사형제를 포기하자고 한 목소리로 외치는 이때, 일각에서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는 소리가 튀어나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 13장27~29절)

성경은 이렇게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주님의 뜻을 분명히 밝혀주셨습니다. 사형을 언도 받을 정도면 분명히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할 흉악한 죄를 범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은 인간의 판단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오판이 있어 곡식이 뽑힌다면, 이는 한 생명을 죽이는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범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무전유죄 유전무죄(無錢有罪 有錢無罪)"라는 말이 상식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재판의 무오성이 증명될 때까지는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합니다.

또한 법에서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에서는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라는 율법으로 범죄를 막으려 했으나 예수님은 사랑으로 죄인을 구원하시고 범죄를 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나도 정죄하지 않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장21~24절)

우리는 내속에 있는 죄와 끝없이 싸워야 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 죄의 종 되어 흉악범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죄의 노예가 되어 사형수가 된 이들을 율법으로 사형시키기보다는 복음으로 변화시켜 구원하는 것이 십자가에서 회개한 강도에게 낙원을 약속하신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길입니다.

과거에 살인마로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김O두, 고O봉 등의 경우를 보아도, 감옥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후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많은 죄수들을 구원하였습니다. 만약 그들을 사형시키지 않고 종신형을 선고하였다면 그는 전도인의 사명을 더 아름답게 감당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금년 봄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이 기억납니다. 재판정에서 총기를 난사하여 재판장을 살해하고 많은 사람을 부상 입히고 도망가던 범죄자에게 한 여인이 인질로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죽음의 공포에 이성을 잃고 떨고 있는 범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사명이 있습니다. 당신이 형무소에서 범죄인들을 전도하여 당신같이 살인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이제부터 당신의 사명으로 삼으시면 됩니다."

▲ 은현교회 김정명 목사.
이 설득에 그 범인은 사형의 절망밖에 없는 자신에게도 사명이 있다는 말에 동의하고 자수하였습니다. 사형시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죄의 종 되어 살인한 그들을 전도하여 그들도 죄의 종 되어 있는 다른 범법자를 전도하게 하면 일반인들이 범법자에게 전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열매를 얻게 할 수가 있습니다. 흉악한 살인범으로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져 죄값을 치르게 하는 것보다는 죄의 종 되어 있는 다른 죄수들을 감옥에서 전도하는 것으로 죄값을 치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기독교정신에 합당하리라 생각합니다.

김정명 / 은현교회 목사·뉴스앤조이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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