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선포되고 있다. 한국교회와 한국정부,사회에 역사적 행동의 지침을 내세운 이 선언은 교계 지도자들의 혼란스러운 모습 앞에서 비틀거리고 있던 교회가 평신도들의 각성으로 새롭게 태어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특히 정국의 혼미와 경제적 압박감 속에서 한국사회가 자신의 진로를 어떻게 선택해나가야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서 터져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뿐만 아니라 그간 언론매체들을 통해 지적되어 왔던 교계의 문제와, 현재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각종 모순에 대해 각성을 촉구하고 있어 그 의의가 사뭇 크다고 하겠다.

"기독시민사회연대 평신도 협의회"가 작성하고 참여단체 대표회의에서 수정을 거친 이 평신도 3.1 선언문은 서두에 "민족적 존엄성의 회복과 국권의 자주독립을 위해, 하늘의 함성으로 압박의 땅을 뒤흔들었던 선각자들과 민중들의 나라 사랑을 오늘에 되새기고자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선언은 특히 "믿음의 선조들이 감연히 감당했던 자기 희생적 십자가의 결단을 소중히 여긴다"고 하면서 이것이 혼돈의 시대를 생명력 넘치게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펼쳐나가는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선언은 또한 오늘의 시대가 감당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와, 한 인간이 실존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과제가 동일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라며, "하나님의 구원사"라는 관점에서 역사의 행동을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의 현실이 되도록 하는 일에 관심이 없는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을 드러낼 뿐"이라고 못박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신앙은 역사 신앙이며 역사의 주도권을 하나님 나라 운동이 가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오늘날 이기적인 개인 신앙으로 퇴행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영성을 역사의 광장으로 이끌어 내어, "은혜의 때를 선포"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 평신도 선언문은 우선 교회와 1천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담임 목사직 세습, 교회재정의 불투명성 등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의 윤리적 일탈과 신앙적 위선을 비롯한 교회의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가령, 한기총 관련 교계 지도자들이 주도하는 한국교회 언론대책 위원회를 즉각 해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한국교회의 종신제 장로 중심의 당회를 임기제 장로 중심의 운영위원회로 교체할 것을 요구하면서, 여성과 청년의 의사결정권을 반영하며 여성차별적 교회헌법의 개정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로는 목회자 중심의 교권주의적 교회연합보다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하는 공동체적 교회연합운동의 전개를 호소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진정한 교회갱신과 일치를 통한 부흥운동이 일어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넷째로는, 헌금 바로 사용하기 운동을 통해 교회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평신도 선언문은 한국사회와 정부에 대해서는,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기강의 근본인 공평과 정의가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일깨우면서,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대응과 자본의 논리에 대한 일정한 규제를 촉구했다. 그리고 정치권이 봉건적 정치문화의 잔재인 지역감정 부추기기와 파당적 정쟁을 중단하고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마련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과 부패 방지법을 제정하여 개혁정치의 물줄기를 형성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무엇보다도 사회적 약자를 중심에 놓고 한국사회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부분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러한 평신도 선언문의 메시지는 결국 한 개인의 내면적 영성의 변화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 하나가 되는 길에 한국교회가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하겠다. 이 같은 입장은 한국교회의 기득권을 형성해온 이기적인 개인주의와 결별하고, 역사의 현실에 변화를 이루는 새로운 주체가 되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실로 한국교회는 민족교회로서의 역할을 했던 일제시대 이래의 전통을 외면했으며, 역사 속에서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서적 모델도 포기한 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성장하는 기업경영 모델을 추구함으로써 교회의 진정한 정체성을 잃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교회가 돈과 물질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 의로움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당연히 후자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기쁨으로 이를 감당할 것을 일깨워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자에 치우쳐 온 것을 평신도 선언은 힘차게 극복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현실의 승자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기보다는 그와는 반대로 현실의 패자들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종교이다. 민족 전체가 노예가 되어가고 있을 때, 애굽에서 노예상태에 있던 히브리민족이 광야의 여정을 거쳐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성서의 사건은 하나님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계셨는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간 서구 기독교가 현실에서 보여준 정복주의와 승리주의 신학에 파묻혀서, 민족이 처한 어렵고 힘겨운 현실에 대해 절박하게 울부짖으면서 이를 신앙의 터로 삼아 하나님께 나가는 "광야의 민족"으로 우리의 모습을 일구어 나가는데 역부족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민족 전체를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으로 만드는 작업에는 내세울 만한 것이 거의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도리어 이 모든 물질주의의 선두 주자가 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는 비극적 처지에 빠져 있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이러한 처지에 이른 것은 기독교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참 자유인이 되게 하는 성서적 본질에 충실하지 않은 채, 기득권과 결합하여 자신의 위치를 방어하는 일에 힘을 쏟아버린 결과일지 모른다.

그러한 각도에서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에 교회가 무엇을 하지 못했는지, 왜 그랬는지를 치열하게 반성하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이러한 생각의 실마리가 한국교회에 누룩처럼 퍼져나가 썪어 가고 있는 사회와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렇게 교회의 기초를 닦아 나갈 때 우리는 미래를 향한 비전을 세울 수 있게 된다. 그것은 특히 우리 민족의 내부를 들끓게 하고 있는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화해와 평화의 역사로 바꾸는 일에 진력하는 일이다. 지역 갈등을 비롯해서 각종 계층간의 대립, 더 나아가 남북간의 대결과 적대감 등 이 원수됨의 벽을 허무는 이 일에 교회가 아픔을 통렬히 느끼고 순결한 마음으로 나선다면 우리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개인의 실존적 고뇌를 깊이 끌어안고 나가는 교회

그와 함께 우리는 개개인의 실존적 고뇌를 깊이 끌어안고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거대한 논리와 비전에만 사로잡힐 경우, 개개인의 사소한 고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험곡을 가는 목자의 모습처럼 교회는 인간 하나 하나의 실존적인 고뇌의 자리에서는 구체적인 사역에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거대한 비전은 슬로건으로 전락하기 쉽다. 인간이란 실로 자신의 생활, 그 인생사에서 견뎌내야 하는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께 다가가게 되어 있고 이 아픔을 사랑으로 함께 품어주는 사람과 진실로 그 아픔을 터놓게 된다.

교회는 이 "마음 터놓기"를 귀중히 여기는 일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이것은 결국 우리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마음 터놓기로 이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인생사를 둘러싼 그 모든 어려움들 앞에서 부질없는 탐욕과 집착을 버리고 영혼을 활짝 열고 하나님의 사랑에 자신을 무한히 맡기는 사람들로 길러내는 일이 교회의 핵심적인 사명이다. 슬로건으로 인간과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진실한 만남, 그리고 그 만남의 현장에서 나누어지는 깊은 감동과 사랑, 위로와 희망이 이 어려운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성품의 능력을 길러 낸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성령의 열매로 이루어지는 신앙의 성품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이것이 토대가 되는 인간사회의 평화와 은총을 전파한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고 시대적 과제가 달라진다 해도 여전히 교회의 영원한 숙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참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다. 참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문제, 이것과 씨름하는 교회가 되어 갈 때 우리는 참 교회로서의 성장을 기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참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아무 계산 없이 그대로 바칠 줄 아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랑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인간과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꿈으로 벅찬 사람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는 무수한 상처가 있다 해도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무한한 "생명의 힘"을 입어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살려내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이제, 정치권 내부에서도 소장 개혁파들이 여/야를 넘어 결집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계 안에서도 개혁적 목회자와 개혁적 평신도들이 서로 힘을 합해 한국교회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가면서, 역사의 진전을 이룩하는 일에 마음이 하나가 된다면 한국교회는 역사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또 한 차례 감당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들의 놀라운 각성과 행동이 한 알의 씨알이 되어서, 우리 민족사의 영성에 박혀 자라면 때가 이를 때에 분명 몇 십 배 몇 백 배, 아니 헤아릴 수 없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일을 위해 한국교회가 자신을 바칠 것을 결단하면,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힘차게 자라나 그 축복을 우리 모두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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