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22일 새벽 0시30분, 우리 일행을 태운 대한항공 비행기는 신강성의 수도 우루무치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지 꼬박 5시간이 걸렸다.

내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실크로드의 관문을 밟는 순간, 나는 실크로드의 길을 닦았던 중국 한나라의 장건처럼 페르시아의 다리오왕이나 그리스의 알렉산더 그리고 몽골제국의 칭키스칸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었다. 저들은 실크로드의 작은 오아시스의 나라를 정복하면서 동과 서 그리고 남과 북을 잇는 새로운 길을 닦았던 사람들이다. 실크로드를 놓고 벌였던 치열한 전쟁사를 회상하면서 지금 새로운 21세기 실크로드의 화두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 초원 우루무치

▲ 우루무치 야경. (사진제공 정석진)
신강성의 수도 우루무치는 21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도시다.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을 가진 우루무치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도시였다. 남한의 17배가 넘는다는 신강성, 그러니까 몽골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땅 면적이다. 이는 중국 전체 면적의 1/6을 차지한다니 참으로 대단한 크기다.

중국은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신강성에는 그중 49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중 위그르족이 45%를 차지하는 중국 유일의 회교 지역이기도 하다. 얼굴은 이란 사람의 서구형으로, 그러나 몸은 작은 동양인의 체구를 가진 전형적인 동서교합형의 민족이 위그르족이다. 그들은 실크로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동과 서의 경계인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강자의 논리만 존재하고 인정되던 시절에 약자의 서러움과 한계를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하여 타협하고 살아야 했던 지난 실크로드 역사의 민중이 위그르족일 것이다. 그들은 생존을 위한 삶의 법칙을 알았을 것이다.

만년설로 덮인 크고 깊은 '천산'

▲ 천산산맥. 만년설과 울창한 숲 그리고 바람이 있는 곳. (사진제공 정석진)
▲ 천산산맥. 천산은 크고 장대해 우리는 산맥 언저리만 오갔다. (사진제공 정석진)
다음날 우루무치 호텔에서 출발하여 천산의 천지로 향했다. 우리가 간 천산의 천지는 실크로드를 에워싼 천산산맥의 한 지점일 뿐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천산산맥은 실크로드를 나누는 중요한 지형이었으며, 우리는 고작 천산산맥의 언저리를 오고갈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도 크고 깊은 천산, 가도가도 천산의 만년설산을 떼어놓을 수 없는 크고 장대한 산맥이다. 오래 전 실크로드의 장삿꾼들과 선교사들은 저 산을 넘고 엄청난 산맥에 길을 내고 사람과 문명의 통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자연의 위대함과 함께 인간의 의지와 집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천산을 차지하는 지배자가 실크로드의 주인이었을까? 만약 인간이 천산을 넘지 못하였다면 실크로드는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천산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장벽이며, 시험대처럼 보였다. 칭키스칸은 저 천산을 넘어 유럽까지 갔을 것이다. 반면에 알렉산더는 천산을 넘지 못하여 실크로드의 주인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천산을 넘는 자는 천하를 얻으며, 또한 천산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인이 되었던 것이다.

저 천산에 길을 냈던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만년설과 울창한 숲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바람과 고독의 한계를 넘어갔을 실크로드의 주인공들을 상상해 본다. 저들은 어떤 마음을 품고 저 천산을 넘었을까? 길을 만드는 자는 위대하다. 그들에게 실패는 없다. 죽을 때까지 길을 내는 자에게 영광이 있으리라!

실크로드의 본격적인 탐험은 둘째 날부터였다. 싸리무 호수까지 장장 8시간 그러니까 왕복 16시간 동안 우리는 작은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였지만 정말 지루하고, 나중에는 앉아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엉덩이 꽁지뼈까지 아파왔다. 카자흐스탄의 국경으로 통하는 실크로드의 관문으로부터는 서북쪽에 위치한 지역까지 이동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목적지가 어디였을까? 목적지가 없었다면 다시 돌아오고 싶었을 만큼 먼 거리였다. 그랬다. 인간에게 목적지가 없다면 그들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길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벌써 3년 전부터 그곳에 고속도로를 만들고 있다고 하지만 그 길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여전히 수천 년 전 실크로드 그 자체였다. 비포장의 울퉁불퉁한 길은 우리 모두에게 새삼 이 길을 닦고 걸었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르게 하였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것은 또한 실크로드를 만들고 그 길을 이용했을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으로 이어졌다. 하루의 너무도 짧고 긴(?) 비포장의 실크로드를 경험한 것은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인내를 가늠하게 하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광야를 보았고 그 광야를 뒤로 하고 하루의 막을 내리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 싸리무호수에서 돌아오는 길의 석양에서. (사진제공 정석진)
광야의 석양! 나그네들은 광야를 걸으며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하루의 고단함을 저렇게 사라지는 석양에 실어 보냈을까? 광야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우리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몇 년 전 우리 가족이 함께 갔던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바라본 석양이 기억났다. 눈물이 흐를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하게만 느껴지던 광야에서 바라본 석양 말이다. 나는 다시 실크로드에서 그 석양을 보았다. 내 인생의 마지막도 저렇게 아름답고 붙잡고 싶을 정도로 애틋한 석양이고 싶다.

실크로드는 오아시스와 오아시스가 연결된 광야 길의 교통로다. 물론 나중에는 바닷길로도 실크로드가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내게 실크로드는 광야에 길을 만들어 가던 사람들의 역사로서만 의미를 지닌다. 메마른 광야를 걷고 타고 그렇게 길을 내던 실크로드의 주인공들, 적어도 카라반의 대상들을 상상해 보면 그들은 왜 그토록 힘들고 어려운 이 길을 만들고 걸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광야에는 길이 없다. 그곳에는 정말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없다. 길은 만들어져야 하고 그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길 위에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 죽은 자의 백골을 묻고 또다시 그 누군가가 그렇게 길을 내야 한다. 그런 역사의 반복 아니 무서울 정도의 연속성이 없다면 광야에서 길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길은 삶이며, 그 길을 만드는 사람들은 역사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삶 속에 남은 것이라고는 이름 모를 무덤뿐이지만 광야에 길을 닦은 사람들은 성을 쌓은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 고민과 의식을 소유한 자들임에 틀림없었다. 길을 내는 자에게 영광이 있을지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찜질방 '투르판'

▲ 투르판 가는 길. (사진제공 정석진)

▲ 화염산. (사진제공 정석진)

굴속에 새겨진 불상이 천개 가까이가 된다고 해서 천불동이라 불린다. 천불동 입구.  (사진제공 정석진)
투르판은 우리의 실크로드 여행의 정점이다. 섭씨 45도가 넘는 폭염 앞에 인간은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투르판에 도착하던 오후, 투르판의 거리는 유령의 도시처럼 조용했다. 마치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몸이 달아오른다. 10분도 밖에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무서운 더위다. 어떻게 이 무더위를 극복하고 실크로드의 길을 만들었을까? 내가 투르판에서 처음으로 가져본 생각이다. 잠시 들렸다 지나가는 정거장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무더운 땅에 어떻게 도시를 만들고 사람들이 살아갈 생각을 했던 것일까? 투르판의 포도와 와인이 세계적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무더위와 일조량은 도저히 적응하기 어려웠다. 숨이 탁 막힐 정도로 더웠다. 덥다는 표현보다는 지글지글 타오르는 대지였다. 손오공과 사오정, 저팔계가 나오는 화염산의 뜨거운 열기 때문이었을까? 한마디로 그 땅은 세계에서 가장 큰 찜질방임에 틀림없었다.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카레즈

▲ 크고 긴 지하 수로 카레즈. (사진제공 정석진)
그렇게 무서우리만큼 더운 땅에도 길은 존재했다. 천산과 광야를 이어온 길은 투르판에서 땅밑의 수로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카레즈'라 불리는 지하수로는 우리 모든 일행에게 큰 충격으로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오래 전 로마의 카타콤과 터키의 데린구유와 같은 땅 밑의 길을 본 적은 있지만 이토록 크고 장엄한 지하의 길은 처음이다. 천산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 흐르도록 고비에서 투르판까지 그렇게 긴 지하수로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 수로의 길이가 자그만치 5천Km가 넘는 긴 땅 밑의 길이다. 그 정도의 길이라면 대체 어느 정도일까?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경부고속도로를 몇 번이나 오고갈 수 있는 거리인지.
 
이것이 실크로드의 사람들이 만든 길이었다. 긴 세월 동안 인간은 땅 밑을 파고 들어가 물길을 냈다. 그 물길로 생명을 키우고 살았던 것이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죽은 사람이 파다 마감한 곳에서 또 다른 사람이 땅을 파고 수로를 만들었을 것이다. 얼마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땅 밑의 길을 만들기 위하여 죽어갔을까? 참으로 긴 세월 동안 머리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 땅 밑에서 길을 내다가 죽어갔을 것이다.

나는 그 곳 카레즈에서 과연 누가 이토록 엄청난 프로젝트를 만들어냈을까 생각해 보았다. 분명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적어도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이 걸릴지도 모를 이 엄청난 지하수로의 프로젝트를 만들었을 그 비젼나리(Visionary)가 어떤 사람이었까 궁금했다. 그는 누구였을까? 지금 최첨단의 과학과 기술로도 상상하지 못할 놀라운 프로젝트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이용하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지하수로를 만들었다. 왜? 이 물음은 내가 실크로드를 떠나던 날까지 계속되었다.

인간은 분명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존재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앞을 향해 질주하는 인간이 미래를 만들어낸다. 성을 쌓는 사람들은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오직 길을 닦는 사람들만이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성을 쌓는 삶 VS 길을 닦는 삶

실크로드는 길을 만든 사람들의 역사다. 그들은 천산의 높은 장벽을 극복하고 길을 만들었고, 저 광활한 광야의 대지위에 길을 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땅 밑의 수로를 만들어 인간이 살아가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산과 광야와 지하까지 수천 년 전 실크로드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길 만드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집을 떠나 새로운 길을 만들라는 명령이었다. 성을 쌓지 말고 길을 만들라는 명령 앞에 아브라함은 순종하였다. 자신의 일생 동안 그 길의 끝에 다다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는 길을 닦는 길고 긴 역사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결단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은 그 역사를 실현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모세가 바로의 성에서 떠나는 결단 없이 그대로 머물러 성을 쌓고 살았더라면, 과연 모세는 모세일 수 있었을까? 모세가 모세로서의 의미를 가진 것은 바로의 성에 머물러 있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들을 키우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 길을 만드는 삶을 살기 시작한 때부터 진정한 모세가 된 것이다. 그는 길을 만드는 삶을 살았다.

그는 홍해에 길을 내는 기적을 경험하였고, 길 없는 광야에서 길잡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길을 만들었다. 또한 그의 백성은 여호수아와 더불어 가나안의 입구 요단에 길을 내는 민족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길 위에서 살았다. 그 길은 구원의 길이며 생명의 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자신이 스스로 길이라 하지 않으셨던가! 성을 쌓은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부패하고 분열되고 말았다. 길을 닦아야 할 민족이 성을 쌓으므로 얻어질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성을 쌓는 삶이 아니라 길을 닦는 삶인 것을 그들은 망각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길을 닦고 그 길로 걸어가는 나그네 여정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성을 쌓아 그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급급하고 때론 그 기득권의 성을 세습의 성이라는 모습으로 쌓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가 분열되고 부패하고 그래서 서서히 망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는 칭키스칸의 교훈이 떠오른다. 길을 닦는 자만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존재한다. 아무리 돈이 많고 큰 권력을 가졌더라도 궁극적으로 성을 쌓았던 자들은 사라지고 오직 길을 닦았던 자들만이 기록될 것이다. 
 

▲ 유해근 목사.
내게 실크로드는 새로운 비전의 길이며, 또 다시 생명의 실크로드를 만들라는 크고 오묘한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명령으로 들려왔다. 우리는 실크로드의 도상위에 복음과 선교의 씨앗을 뿌리고 다시 길을 닦는 일에 나서야 할 것이다. 호잣트를 우즈베키스탄과 터키의 흩어진 이란인들을 위하여, 츄카와 보르마는 칭키스칸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몽골의 초원 길 위에, 그리고 인도의 빵가지와 그의 친구들은 인도와 해양의 실크로드 위에 있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실크로드는 우리가 차지한다. 그 길을 닦는 자만이 미래가 있다. 여기서 만약 이 작은 기득권이라도 지켜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실크로드는 내게 그렇게 말한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 그러나 길을 닦는 자는 승리한다'

길 닦는 목회를 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광이 있으라! 길 닦는 모든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삶을 살려는 이들에게 영광이 있으라! 새로운 삶의 길을 닦기 위해 집 떠나 길 위에 존재하는 모든 이방인 나그네들에게 영광이 있으라! 외국인 나그네들에게 영광이 있으라!

유해근 /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 서울선교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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