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5 5주년을 맞아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임동원 세종재단 이사장. ⓒ뉴스앤조이 신철민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맞은 지금 임동원 이사장(세종재단)만큼 바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국민의 정부' 시절 통일부장관과 국가정보원장 등을 지내며 햇볕정책을 입안했다. 6·15 직전에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두 차례 북을 방문해, 정상회담에서 합의할 내용을 사전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최근 북측은 6·15 5주년 평양기념행사에 임 이사장을 공식 초청할 만큼 신뢰를 보내고 있다. 참여정부 일각에서는 북핵 문제를 계기로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북의 든든한 신뢰를 받고 있는 임 이사장을 중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임 이사장은 최근 각종 세미나에 강사로 나서 6·15 이후 5년 동안 한반도 정세 변화와 현안을 강연하고 참여정부에도 충고하며, 장로라는 직분 덕분에 교계에서도 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느라 분주하다. 지난 5월22일 기독교대한감리회 남부연회 창립50주년 기념희년대회와 5월25일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가 주최한 제2기 겨레하나통일강좌에서 발표한 원고를 중심으로 그의 주장을 정리했다.

가장 큰 변화는 '불신 해소'

임동원 이사장은 "햇볕정책은 화해와 협력을 통해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평화를 만들어나가면서, 남과 북이 오가며 돕는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실현하는데 목표를 둔 것"이라며 "국민의 정부는 일관성 있게 햇볕정책을 실천해 6·15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북은 선(先) 통일 후(後) 교류 협력을 주장했고, 남은 선(先) 교류 후(後) 통일을 주장해 평행선을 걸었다. 공통점이라고는 없을 것 같던 양측 주장은 6·15 정상회담을 통해 조율되었다. 그는 "6·15 공동선언의 의의는 북한 지도자도 통일은 즉각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 공전을 통해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남측 연합제가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라고 인정했고,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와 남의 연합제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데 있다"라고 강조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내외에서는 "만난다는 의의 빼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라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산가족의 아픔이라도 덜어주자는 생각으로 평양에 갔고, 일단 철로와 육로를 이어 사람과 물자가 오가게 하자고 제의했다. 그리고 이후 우리가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이 남북 관계는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6·15 남북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해 남북 장관급회담을 주축으로 경제·군사·적십자 등 분야별 당국 회담이 제도화되어 1백회가 넘게 열렸다. 바다와 하늘길이 열리고 끊어진 민족의 대동맥인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었다. 남측이 자본과 기술, 북측이 노동력을 투자해 개성산업공단을 건설하고 있고 몇몇 공장은 가동했다. 교역량도 1998년 2억 불에서 지금은 7억 불 수준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임 이사장은 남북 관계가 얼마나 빠르고 크게 변하고 있는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왕래했느냐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1만 명의 가족이 이산가족방문단 교환과 제3국에서의 상봉을 통해 만났고, 2만2천 명이 생사와 주소를 확인했다.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등 여러 방면의 교류와 협력을 위해 남측에서 8만 명이 북측을 방문했고, 북측도 3천명이 내려왔다. 1998년 이전까지 총 왕래 인원이 3천 명도 안된다는 것과 극적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6·15 이후 교류와 협력은 수치로 계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변화인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 해소를 가져왔다. 임 이사장은 그동안 남북은 7·4공동성명(1972), 남북기본합의서(1992), 비핵화 공동선언(1992) 등 좋은 합의를 하고도 고질적인 상호 불신에 발목 잡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6·15 남북공동선언이 반세기를 지배해온 불신과 안보위협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임 이사장은 주장했다.

"그동안 북은 흡수통일 공포증과 북침 위험에, 남은 적화통일과 남침 위험에 시달려 왔지만, 두 정상은 적화통일도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으며 가능하지도 않고, 남침도 북침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러한 변화는 국민의 정부가 정경분리 정책을 꾸준히 고수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남북간의 정칟군사적 대결이 지속되고 있지만 협력할 분야도 있다고 보고 경제 협력을 적극 추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남북정부간 회담과 비료 지원 문제를 연계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대해 임 이사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선(先) 북핵 해결을 전제로 후(後) 경제 협력을 한다는 정책을 고수해 남북 관계에 진전이 없었다"라며 "김영삼 정부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고 우회적인 조언을 했다.

한편 그는 "한반도 문제는 민족 내부 문제인 동시에 국제 문제라는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 없이는 한반도 평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양측이 평행선을 걸어 해결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북에 대해 강경 일변도로 나오는 미국에 일침을 놓기도 했다.

고마워요, 기독 NGO

▲ 2003년 북한을 방문한 남한대표단이 평양 능라도 유원지에서 <8.15민족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  8.15인터넷공동취재단)
또 그는 미국이 흘리는 정보에 대해서도 일방적으로 듣지 말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라크전 때 입증되었듯 미국 국방부가 흘리는 정보는 상당 부분 정치적 목적에서 과장 또는 조작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우리 나름의 정보를 통해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해야지 미국이 흘리는 정보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부시 행정부에 입각하기 전 북한이 5년 안에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핵탄도 무장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그의 주장은 미국 내에서도 회의적이었다"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쉽지 않은 통일의 과정이 그나마 진전된 것은 기독교 NGO의 희생과 노력 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여전히 불안한 한반도를 햇볕정책의 키워드인 '화해, 협력, 북한의 변화, 평화'가 실현되는 땅으로 만드는 과제도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햇볕정책의 네 가지 키워드에 대한 성서적 근거로 로마서 12장 17~21절을 제시했다. 화해는 "네가 직접 원수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는 말씀에서, 협력은 "네 원수가 굶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에서 찾았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은 북을 붕괴시키려 하지 말고 변화시키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롭게 지내라"는 말씀은 법적인 국가 통일은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신념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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