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장로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전남 광양의 <평화를 여는 마을> 주민입니다. 저는 신실한 믿음은 없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애쓰는 늦깍이 신앙인으로 2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시골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입니다.

저는 장로님께서 연일 언론에 주목받는 상황에, 희대의 코미디 주인공으로 등장한 모습에 참을 수 없는 연민을 느낍니다. 세상이 웃는다고 그저 따라 웃기에는 너무나 큰 비극이고 참아 넘기기에는 더욱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 예상돼 두려움마저 갖게 됩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가장 큰 불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분단 혹은 경제난 아니면 부정부패로 얼룩진 나라의 모습입니까. 아닙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난 일입니다. 권력 아래 두려울 것이 없다며 축재를 일삼고, 지역감정을 부추겨 선량한 백성의 마음에 증오와 미움을 심어주는 지도자들 때문에 이 나라에는 피눈물과 절망의 회오리가 그치질 않습니다.

누가 이 난장판의 저주를 조장하고 있습니까?
한 나라의 통치권자가 갖는 위엄과 힘은 막대한 것이지만, 역대 통치권자들은 제 나라의 백성들의 눈물을 씻겨주기보다 그들을 제물로 삼아 권좌에 올랐고 형제간의 증오를 부추겨 권력을 획득했습니다. 그로 인해 하얀 옷의 백성들은 피흘림으로 쓰러졌고, 둘로 갈라진 땅의 백성들은 또 다시 영·호남으로 찢겨져 증오와 미움의 칼을 갈고 있습니다.

오늘도 망나니 칼춤을 추는 자들이 영남으로 몰려가고 호남으로 떼지어 가 <저 놈들을 눕혀야 우리가 계속 산다. 아니 저 놈들이 다시 잡으면 우리가 죽는다>며 끔찍한 보복전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 땅의 비극은 편가름입니다. 왜 그런지 이유도 모르고 몽둥이를 들고 몰려가 패싸움을 벌이는 백성들, 그리고 리모콘으로 TV를 껐다 켰다하듯 배후 조종하는 정치권력의 음모. 아, 누가 이 난장판의 저주를 조장하고 있습니까?

YS-DJ-JP로 불리는 정치권력의 화신들, YS로 불리는 장로님의 죄가 유독 큰 것은 IMF로 나라를 망친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퇴임 후에 보여주시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발언과 행위로 인해, 최소한의 예의마저 벗어버리고 벌이시는 행동 때문입니다. 장로님의 실패한 권력이야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권좌에서 물러난 이상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족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자신의 부덕한 과오에 대해 가슴 찢는 회개로 돌이키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정치 고향을 볼모로 삼아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선량한 백성을 선동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며, 이 찢겨진 백성들의 갈라섬은 장로님이 무덤에 묻혀 육탈될지라도 쉽게 아물지 않을 잔인한 상처로 새겨질 것입니다.

평화의 메신저·가난한 이웃의 벗으로 거듭난 실패한 대통령
우리의 비극을 비춰보기 위해 제가 아는 대통령 한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분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닉슨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제공황을 불러온 에너지 위기와 이란사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재임기간 내내 실패와 시련을 겪다가 영화배우 출신 레이건에게 완패를 당하고 백악관 생활을 청산해야 했습니다.

그 분 또한 예수의 길을 쫓는 분으로 장로님 못지 않게 실패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으며 퇴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 나라를 책임진 지도자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와는 견줄 수 없는 막중한 것이어서 자신을 돌이켜 회개하며 성경학교 주일교사를 맡아 예수의 말씀을 가르치며 조용히 살았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에는 왜 그 분같은 주일교사가 없습니까. 세상 권세를 누리던 기독교인들은 왜 또 다시 교회로까지 권력을 이동시켜 교회를 쥐락펴락이려고만 합니까. 제자의 발을 씻겨 준 예수가 '가장 낮은 자가 가장 높은 자'라고 했는데, 소위 예수의 이름을 들먹이는 이들이 왜들 '내가 대장 아니면 안돼'라며 독사의 간교한 혀로 편가름하며 교회와 세상에 분란만 일으킵니까?

쓸쓸하게 말년을 보내던 그 분 또한 장로님처럼 오래지 않아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분의 각광받는 방식은 장로님처럼 현직 대통령에게 독설(毒舌)을 퍼붓거나, 남북화해 무드에 불을 지르는 기자회견을 열거나, 대학생들의 문전박대에 오기로 버티다 퇴각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휘하를 이끌고 다니며 좌충우돌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던 노구의 전직 대통령은 분쟁이 있는 곳에 평화의 사도로 찾아가 전쟁을 종식시키고 화해의 꽃씨를 심고, 소외된 이들에게 사랑과 빵을 나누어주며 낮은 데로 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분은 1984년 이래 매년 Jimmy Carter Work Project(JCWP)라는, 집 없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전 세계 가난한 서민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에 동참하면서 대통령이나 주지사로 재임할 때보다 더 큰 기쁨과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76세의 노구를 이끌고 직접 벽돌을 쌓고 창문을 달고 페인트를 칠하는 전직 미국 대통령, 그 분은 <자원봉사자>라는 칭호 외에는 달리 불리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수십 개 단체의 우두머리라는 직함을 훈장처럼 달고서도 봉사는 하지 않고 이용만 하려는 정치인과 달리 그 분은 집 짓는 일에 동참한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얘기하고 땀 흘릴 뿐입니다.

장로님 지미 카터 전 미합중국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합니다. 해비타트 운동 25주년을 기념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화합의 망치를 울리게 될 지미카터워크프로젝트(JCWP)를 진행하기 위해 76세의 노구를 이끌고 올해 한국을 찾아옵니다.

국내외 자원봉사자 9천 여명이 참석해 민족화합의 망치를 두드리게 될 JCWP는 올해 8월 5일부터 11일까지 일주일 동안 충남 아산의 '민족화합의 마을' 72채를 비롯해 오산, 진주, 태백, 대구 등 5개 지역의 48채 등 모두 120채의 집을 짓습니다.

장로님 이제 독설(毒舌)과 아집(我執)을 거두십시오
남의 나라 전직 대통령도 우리의 분단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사랑의 망치를 들고 찾아옵니다. 장로님께서 분단 고착화를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한 반대운동을 획책하고, 언론세무조사를 엿 바꿔먹 듯 할 때, 그 분은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짓기 위한 모금운동에 바빴고, 전 세계 고통받는 사람들의 인권회복을 추구하는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하며 예수의 제자로 충직했습니다.

장로님, 이제 그만 거두십시오. 그 독설(毒舌)과 아집(我執)을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대로 원수가 있다면 사랑의 마음을 품어 주십시오. 찢겨지고 갈라진 이 땅의 피울음이 동서로 나뉘어 흉흉히 날뛰고 있는 마당에 그 무엇을 더 죄 지으려 하십니까.

이 나라에 지도자는 없고 패거리의 오야붕만 있습니까? 장로님께서 패거리의 오야붕이 아닌 진정한 어른이라면 지역구 따먹기 충성경쟁에, 지역감정 조장에 여념 없는 휘하에게 손을 씻으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지역감정을 부추겨 표를 먹으려는 자와는 가차없이 손을 끊겠다고, 어서들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씻겨주는 머슴이 되라고 지시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올 여름 <민족화합의 마을>을 짓는 충남 아산 땅으로 오셔도 좋겠습니다. 그 곳에서 사랑의 땀과 망치질로 하나님과 이 민족 앞에 회개 하신다면 장로님의 지은 죄가 횐 광목처럼 희어질 것입니다.

김영삼 장로님, 권좌의 삶보다 더 값지고 아름다운 삶을 사시는 지미 카터 장로를 만나거든 통곡의 기도로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예수 믿는 자로써, 화해의 중보자가 되지 못하고, 사랑과 나눔으로 노욕을 비우지 못한 죄를 뉘우치길 권면합니다.

이로써 장로님께서 이 땅의 지도자로서 거듭나셔서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시고 주일학교의 성경교사가 된다면 이 땅에도 예수의 제자가 있었음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마저 거절하시고 독설과 아집의 독을 품으며 이 땅에 살다 떠나신다면 하나님께서 4천만 민족의 가슴에 심은 원한과 통곡을 불로써 심판하실 것을 미천한 시골 성도마저 믿습니다.

긴 편지 끝에 불쾌한 표현이 있었다면 용서해 주시길 원합니다. 다만 장로님뿐 아니라 이 땅 천만 기독교인들이 가슴 찢는 고백으로 예수를 욕보인 죄를 회개하길 원하는 마음만큼은 진정임을 말씀드립니다. 그럼 편안한 회개가 되길 빌며 글 줄이겠습니다.

                      전남 광양 <평화를 여는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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