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민주공원 부조. (사진제공 박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사도 바울의 선언은 그의 심각한 종교 경험에서 우러나온 신앙고백이다. "내 안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이는 보통 평범한 신자로서는 전혀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심각성이 있는 말이다. 삶의 신비한 경험을 설명하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이러한 삶의 신비를 김의기와 김세진의 삶을 예로 들고 싶다. 그 두 사람은 20대의 아름다운 청춘을 이 민족의 제단에 아낌없이 바쳤다. 무엇이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기에 그 아까운 생명을 내던질 수 있었을까?

김의기는 1980년 5월30일, 광주 학살의 만행으로 얼룩진 참상을 알려야겠다는 신념으로, 김세진은 1986년 4월28일, 이 민족의 장래가 미핵(美核)의 실험장으로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지워 버릴 수 없어 그때 그 시절, 최후의 선택을 하였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일보다 가난한 이웃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갖고 나를 위한 생각이나 행동보다 고난 받는 이들을 위한 생각이나 행동에 더 마음을 기울였다. 때로 나에게는 괴로움과 손해가 되고 짐이 되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민족의 밝은 현실과 장래를 위해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자진하여 희생하기도 하며, 웬만한 고통이나 짐을 즐거운 마음으로 달게 짊어졌다.

그러다 마침내 그들은 꽃다운 아름다운 청춘을 이 민족의 제단에 바치고 말았다.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일은 김의기 김세진 같이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의거하여 진실과 자신의 삶을 온몸과 마음으로 하나를 이루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하나님 품으로 간 두 사람의 형제의 죽음을 반추하면서 그 두 사람이 지향했던 삶의 배후에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상흔이 우뚝하게 각인되어 있었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죽음을 되새김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는 나의 소유나 나의 지식이나 나의 생명보다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 김의기 열사. (사진제공 박철)

▲ 김세진 열사. (사진제공 박철)

나는 김의기와 김세진의 삶을 추적하면서 그 두 사람은 참으로 가식 없는 신앙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두 사람은 사도 바울이 지녔던 진리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고뇌하였고, 젊음이라는 프리미엄을 송두리째 포기하면서까지 예수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이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신음하며 죽어 갔다.

한 시대의 광란과 폭압 그리고 위배된 질서를 온몸으로 저항하며 죽었던 김의기·김세진 형제의 장렬한 죽음을 볼 때, 우리 가슴에 의로운 피가 뛰노는 것을 경험하며, 그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도 된다는 일종의 동참 경험을 가지는 일은 없겠는가?

김의기·김세진 형제는 온갖 위선과 허위의 늪에 빠져 있는 우리들에게 삶의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주었고, 또 그들이 믿고 고백하는 바에 의하여 진리의 길을 향하여, 십자가의 길을 향하여, 좁은 문을 향하여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떠나갔다.

나는 이 두 젊은이의 죽음을 결코 미화시키고 싶지는 않다. 또 그렇게 해서 그들의 죽음의 정당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들을 낳아 주고 길러 주신 부모님의 상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따스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두 사람의 의연하고 용기 있는 삶, 조금도 불의 앞에 비겁하지 않는 그리고 그 바탕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의 빛을 따라 살고자 했던 그 순수한 열정 앞에 너무나 부끄럽고 송구스러워 연약한 눈물을 삼킬 뿐이다.

우리는 그들이 자기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조국의 현실, 당시 정권의 구조적 타살 혐의에 눈뜨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이 죽어 가면서 외치고자 했던 것은 진정 무엇이었는가? 그토록 강한 신념과 의지를 불태우며 일구고자 했던 삶의 이상향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들의 주검은 자신의 생을 저주하거나 포기한 비겁함과 나약한 불신앙의 행위로 모독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김의기 김세진 형제의 죽음을 애도하는 본래의 정신은 그들은 바로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 갔다는 사실을 명확히 깨닫지 않고는 별 의미가 없다. 또 그들은 모든 기성세대와 기성 질서가 저질러 놓은 죄 값을 대신해서 죽어 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그들의 죽음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생명의 모독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분노와 저항의 몸짓으로 한 마리의 희생양으로 우리를 위해 대신해서 죽어 간 것이다. 그들이 참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불의로운 세력 앞에 모르는 체 했으면 그만이다. 한때는 그들의 죽음을 죽음의 배후 세력 운운하며, 생명의 진정한 가치를 왜곡하며 나섰던 무리들도 있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형제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큰 사랑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바로 왕 공주의 아들로서 궁궐에서 호화롭게 지내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민족과 고통을 당하는 것이 났다"라고 말했다.

한 시대, 예수의 사랑으로 의롭게 살다 우리보다 먼저 간 김의기·김세진 두 사람. 김의기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되었고, 김세진이 17년이 되었다.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나갔다. 기독교 신앙은 용기를 요구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일은 하나의 용감한 행위요, 정신이요, 태도다. 그리스도인의 용기란 환경과 조건의 여하를 불문하고 믿음 위에 힘차게 서는 용기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김의기·김세진 두 형제는 참으로 용기의 사람이었다. 그들은 한 인간의 삶의 선택이 얼마나 강한가를 죽음으로 증명했다. 그들은 짧은 생을 예수처럼 살다 갔으나 바울의 선언대로 죽음을 삼킬만한 진정한 삶의 가치를 남기고 떠났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사라져 갔지만 그들이 남기 십자가의 상흔은 영원히 우리의 가슴에 꺼지지 않는 심지로 남아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우리가 불의 앞에 주춤거릴 때마다 이 두 사람이 해맑은 양심과 이 민족의 시대정신으로 살아나, 우리의 삶을 이끌어줄 것이라 믿는다.

박철 목사 / 부산 좋은나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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