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낮설은 이국땅의 광부로 간호사로 용접공으로 기계공으로 떠났던 맨손의 노동자들, 다시는 가난에 넘어지지 말자! 몇 년만 고생하자 이를 악물고 가족 품을 떠났던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덕택에 가난했던 이 나라가 이 만큼 배 뜨뜻하고 등 따시게 됐습니다.

춘궁기로 샛노랗던 이 나라가 부흥된 것은 재벌도 정치인도 학자의 힘도 아니었습니다. 잿더미에서 솟아난 노동의 손들로 인해 굶주림의 쌀 뒤주에 식량거리가 채워졌고, 학교가 세워졌으며, 빌딩과 도로가 놓여졌던 것입니다.

70년대 말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할머니의 아들, 사우디로 떠났던 서른 몇 살의 노동자는 망자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없이 홀어미 품에 자란 그는 진저리쳐지는 가난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아내와 어린 자식을 남기고 이국땅으로 떠났다 잿더미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된 어떤 분은 중장비 삽날에 하반신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고, 또 어떤 분은 팔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은 열사의 노동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소금 알갱이를 씹어 먹으면서 일해 번 돈, 피 같은 돈을 아내 된 여자들이 탕진한 사실을 알고 미친 듯이 울부짖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나라를 부흥시킨 그 위대한 노동의 쓰라린 상처들이 잊혀지고 있습니다. 라인강의 기적도, 한강의 기적도 아닌 오! 위대한 노동의 기적을 일으킨 주역들, 한때는 산업 역군이라 추켜세우며 사탕발림하던 나라가, 이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사로 돌리며 퇴물 취급하고 심지어, 노동자가 나라를 망쳤다며 죄를 뒤집어 씌우고 있습니다.

오! 그네들의 아득히 지워진 노동, 가난 때문에 떠났던 노동자들이 조국에 다시 돌아와 가난의 노동으로 뼈아픈 생계를 잇고 있는데 그대는 홀연히 떠난다고 했습니다. 모가지를 쳐들고 그 어디를 보아도 온통 절망뿐이라며 미련 없이 떠난다고 하십니다.

〈정쟁과 패거리가 장악한 정국〉〈뇌물과 로비로 얼룩진 부패공화국〉〈왕따, 과외 그리고 닫힌 교육의 현실〉〈부도와 파산이 난무하는 경제난국〉...이따위 화두가 숨막혀서 못 견디겠다던 당신은 희망이 손짓하는 드넓은 땅으로 떠나겠다고 하십니다.

그대의 그 절망을 십분 이해합니다. 얼마나 더 절망해야 이 땅의 악한 기운들이 사라질 지? 얼마나 더 싸워야 거짓 세력들은 멸망하고 참된 것들끼리 두둥실 춤을 추는 희망공화국이 건설될까? 생각만으로도 아득해서 몸서리치다가 내 대(代)가 아니면 자식 대(代)에서라도 기필코 쟁취해야 할 싸움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을 뿐입니다.

그래도 그때는 떠난 자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했었습니다. 서릿발 같은 군사독재에 시달리던 지식인들은 암흑같은 조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지원하고 싸우면서 세계 만방에 독재국가의 암담한 상황을 알리는 민주이민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군홧발 사라진 멀쩡한 나라를 떠나겠다고 하십니다. 값 없이 누린 재물과 학식과 명예의 값을 이 땅에 치르지도 않고, 더 이상 누릴 몫이 희박해졌다며 무조건 떠나겠다고 합니다. 그대의 명문 학력과 뛰어난 전문성, 누대에 걸쳐 먹고 살 임대비도 마다하고 온재산 챙겨 저 푸른 초원의 땅으로 떠나겠다며 착실히 수속을 밟고 있습니다.

그대가 떠나는 땅은 강제징용도 사탕수수밭도 아닌, 악머구리 같은 어둠이 입벌린 갱 속이 아니라, 살갗마저 태우는 열사의 나라가 아니라, 끝간데 없는 망망대해의 외항선이 아니라, 드넓은 초원과 자유와 샴페인이 즐비한 무엇이든 꿈꾸는 대로 이룰 수 있는 꿈의 땅입니까?

그 곳은 아무나 갈 수는 없는 땅입니다. 푸른 초원으로 뒤덮인 희망의 나라는 잘 배운 학력과 잘 쌓은 전문성 그리고, 족히 삼 년을 털어 먹어도 동나지 않을 재화를 챙겨 오라 합니다. 그 나라에 올 자격여부를 심사하는 대사관과 이민설명회에는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하더군요.

떠날 자는 떠나고 남을 자는 남는 이 땅에 남아 띄우는 저의 편지는 떠날 수 없는 자의 심기 불편한 푸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 가난의 몸뚱이들이 모국을 떠나 외화벌이로 충성한 나라, 오! 그네들 멸시 천대받던 노동이 벌어 세운 나라의 재화와 지식을 고스란히 챙겨 떠나는 그대들에게 그저 잘 가라고 안부만 전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대가 말하는 절망의 무게가 얼마인지 저는 모릅니다. 혹은 이 나라의 그 무엇이 그대를 그토록 못 견디게 하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대의 절망과 아픔이 아무리 크다할지라도 이 땅을 세운 수천만 노동의 역군들이 당하는 통한의 고통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 풀어보면 새발의 피일 것입니다.

그러나 떠나는 자에게 아름다운 이별을 보내는 이 땅의 전통을 저 또한 존중하겠습니다. 가시는 발걸음 사뿐사뿐 즈려 밟으며 그대 부디 잘 가십시오.

저를 낳은 어머니도 모른다고 부인하는 이 불효의 시대, 떠나는 자는 떠날지라도 누대에 걸쳐 가난과 고통에 절여져 희망의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자들이 버려진 어머니를 거두겠습니다.

이 땅 도처에 그대가 버리고 떠난 절망이 가득차서 우는 사람마다 절망의 잔을 권하고 혹은, 절망이든 희망이든 알 바 아니다며 희희낙락 옷을 벗어 음란의 춤을 추는 자들에 에워싸일지라도 만신창이 된 희망을 부둥켜안겠습니다.

만신창이 뻘밭 삼십리 고추 서말 먹고 기어기어 섬진강에 닿으면 어느덧 매화꽃은 흐드러질 테고, 그 매화향에 묻어나는 매천(梅泉) 선생의 망국도 선연한 빛깔로 살아나겠지요.

산수유 꽃길 따라 오르면 두꺼비가 왜구를 물리쳤다는 섬진 마을, 그 마을 언저리에 정다운 벗들을 불러 매실차도 권하면서 절망이 오면 절망과 어울리고 눈물이 오면 눈물과 한데 섞여 질퍽하게 놀아볼 랍니다.

이 땅 언제 적, 절망이 없었던 적 있었을까? 이까짓 절망에 나뒹굴어 떠나는 사람들, 그대들은 부디 떠나더라도 남은 자들이 다시 재건해야 할 희망의 땅을 찾아오는 봄, 매화 향 그대에게 닿으면 만신창이 절망일지라도 고추 서말 먹고 뻘밭 삼십리 으득으득 기어오십시오. 여기는 절망도 희망도 흐르는 강, 늘 푸른 물이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끝자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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