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 씨(가명)는 지난 1월 21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습니다. ⓒ뉴스앤조이 이승규
1.
최근 며칠 따뜻했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2월 1일 서울의 체감온도는 25도까지 떨어진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 보도를 보고 선배 기자가 한마디 합니다. "영하 20도 넘어가면 회사 출근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야?" 말은 안했지만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렇게 추운 날은 그냥 따뜻한 방구석에 앉아 영화나 한편 봤으면 좋겠습니다.

2.
저는 군 생활을 바다에서 보냈습니다. 28개월 동안 줄기차게 배만 탔습니다. 주로 밤에 근무하는 환경이라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가을바다는 정말 낭만이 있습니다. 바다도 잔잔하고 별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별자리를 찾아보며 제대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또 집이 그리울 때는 '엄마가 보고플 때…'라는 노래를 부르며 괜히 폼을 잡아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겨울에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너무 춥기 때문이죠.

내복에, 운동복에, 군복에, 점퍼까지 껴입어 보지만, 그래도 춥습니다. 바닷바람은 정말 말 그대로 살을 에는 듯이 춥습니다. 누가 겨울바다가 낭만이 있다고 했습니까. 저는 정말 겨울바다하면 몸서리부터 치게 됩니다. 몸에 열이 많아 한 겨울에도 이불을 걷어차고 자던 제가 이불을 꼭 끌어안고 자기 시작한 것이 아마 이 무렵부터였을 겁니다.

3.
지난 1월 20일 김경자 씨(가명)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1월 21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지난 해 한국교회를 충격에 빠트렸던 고 장효희 목사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입니다. 그 일로 인해 아주머니 남동생(여자의 남편)은 신용불량자가 됐고, 가정은 파탄났습니다. 아주머니는 사건 발생 1년 후 한기총과 평화교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하며 책임자의 사과를 그토록 원했지만, 이들은 아주머니의 외침을 외면했습니다.

1인시위를 시작하겠다는 문자를 받은 다음 날 청와대 앞으로 아주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 날 따라 정말 추웠습니다. 옷을 두툼하게 입고 나갔지만, 5분도 채 못 서있겠더군요. 사실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한다고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청와대가 정면으로 보이긴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신경 쓸리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가보니 다들 나름대로 억울한 사연이 있더군요. 얼마나 억울하고 한이 맺혔으면 그 추운 날 그곳에서 저러고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저를 만나자 억울하다는 말부터 꺼냅니다. 중재를 담당하던 목사님께서 1월 12일경 전화를 해 1월 19일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답니다. 교회 쪽이랑 이야기가 잘 되가고 있다고 다시 한번 대화의 자리를 마련할 테니 기다려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약속한 날짜인 19일이 지나고 20일이 지나도 평화교회에서는 전화 한 통화는커녕 어떠한 연락도 주지 않았답니다. 결국 이 아주머니는 청와대로 나섰습니다.

▲ '망자에 대한 예의'보다 중요한 건 '살아남은 자의 슬픔' 아닐까요. ⓒ뉴스앤조이 이승규
4.
아주머니가 원한 건 돈이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책임 있는 사람의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입니다.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사람들의 위로를 통해 평안을 얻고 싶었던 것입니다. 한기총과 평화교회는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놨는데, 우리는 그 아주머니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그 사람의 상처 받은 심령을 감싸주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요.

고 장효희 목사에 대한 기사가 올라가면 많은 분들이 '망자에 대한 예의'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입니다. 망자는 죽음으로 빚을 갚았다고 하지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까요. 슬픔이 어디 금전적인 것으로 보상받을 수 있기는 한걸까요.

지금 이 시간에도 아주머니는 청와대 근처 어디에선가 1인시위를 하고 있을 겁니다. 하필이면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이날 말입니다. 벌써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간수치가 높아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아주머니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한국교회의 책임 있는 분들의 위로와 답변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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