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예배는 지극히 작은 자를 하나님 대하듯 하는 것.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믿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과 구별된 별도의 교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일보다 교회가 버리고 무시하고 죄악시하는 세상 속에서, 그곳에 살고 있는 형제자매를 찾아가 만나 그들을 존중하고 믿으며 함께 하는 일이다.

최고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보거나 듣고 이해하여, 그것을 스스로 듣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려고 열심을 내는 일이 아니다. 어려운 세상 속에 사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을 통하여, 그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잘 들어야 한다.

설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세상에 사는 너'이다. 하나님은 '나'보다 이들 어려움 속에서 신음하는 세상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스스로를 설교자, 신의 말씀을 전하는 대언자로 자처하는 성직자는, 하나님이 저들 지극히 연약한 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저들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설교자는 바로 세상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예배, 최고의 설교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굳이 준비할 것도 없다. 다만 지극히 작은 자들, 연약한 자들을 존중하고 믿기만 하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그래서 그들이 말문을 열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인도해주기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은 절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최고의 설교를 들으며 최고의 놀라운 예배를 드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예수

설교는 상대를 나보다 낮게 여기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한 행동이다. 부모를 향하여 스승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설교하는 자 본 일이 있는가. 그럼에도 저 연약한 자를 향하여 가르치며 설교하려 한다. 아니 그것을 자신의 고유한 업무요 신성한 의무요 본업으로 삼아오기 수백 수천 년이 지났다. 

이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예수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예수 자신을 대하듯 섬기라 하시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섬김 대신에 설교를 일삼고 있다. 아니 이러한 관행이 틀렸다는 것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단상에서 점잔을 빼고 지극히 근엄한 얼굴로 설교를 하고 있다.

설교자들이여, 설교를 즉시 중단하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높은 단상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라. 신도들이여, 설교단을 가까이 하지 마라. 오직 설교에만 공력을 드리는 자가 있는 것은 그대들이 남 섬기기를 게을리 하고 설교듣기만을 탐하기 때문이다.

이제 오랜 세월동안 잘못된 관행을 갖고 있는 '설교'라는 용어는 "(하나님)말씀 나누기"란 말로 고쳐져야 한다. 일방적인 전달이나 계층적인 이질감을 갖게 하는 낡은 용어는 쌍방적이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용어로 대체해야 한다.

나는 이와 같은 생각을 이미 지난 4년 동안 실제사역에서 직접 실현해보았다.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정신병원 환우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관심 있는 사람은 덧글에 물어주시기 바란다. 

전영철 / 나실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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