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들이 본 별은 과연 역사적 사실일까?
동방 박사들을 인도한 베들레헴의 별은 신화나 동화와 같이 꾸며 낸 이야기인가, 박사들에게만 보인 기적인가, 아니면 역사적·과학적 사실인가. 매년 이맘때면 성탄 밤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을 보며 '동방 박사들을 인도하던 별은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추억들과 새벽송을 돌 때 대문 위에 걸려 있는 삼태성을 바라보며 동방 박사 세 사람을 연상하던 기억들이 새삼스럽다.

성경에 베들레헴의 별에 대한 기록은 마태복음 2장 1∼11절에만 4번 나온다. 4번이나 사실적으로 기재된 것을 볼 때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예수님의 전기를 기록한 복음서 중 마태복음은 특별히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했다. '별'은 높음의 의미와 더불어 왕을 상징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민24:17)" 하신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구세주이신 왕으로 탄생하셨고 특별한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나타난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넷째 날,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게 하셨다(창1:14∼18). 여기서 '별들이 이룬 징조'란 무엇일까? 성서는 점성술을 엄중 금지(신17:2∼7)하고 있으므로 별들의 징조는 점성술이 아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시19:1)" 하신 말씀과 같이 하늘은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보여 주며 별자리에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구원과 심판의 징조들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메릴린 히키의 「하늘의 징조」 참조). 여기 베들레헴의 별은 예수님의 탄생과 인류 구원의 징조로서 성탄의 밤하늘을 말없이 밝힌 것이다.

그 별은 크고 밝게 빛난 별이었는가?

외경 중 '야고보의 원복음서'와 '이그나시우스가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19번째 편지'에는 "크고 밝고 신비로운 별"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헤롯은 물론 유대인들도 그 별을 인지하지 못한 것(마2:7)"으로 보인다.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추었다(사9:2)"는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참 빛(요1:9)이요, 생명의 빛(요8:12)이요,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는 밝은 빛이다. 베들레헴의 별도 예수님처럼 큰 빛을 발했는지, 아니면 성화 속의 모습과는 달리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신(사53:2)" 예수님의 겉모습처럼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별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의 시력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별은 약 1,500∼2,000개이다. 그 중 베들레헴의 별은 초대 교회의 전승과 찬송가의 가사 대로 크고 밝은 별이었는지는 모르나, 누구든 쉽게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특별하게 밝은 별인 것 같지는 않다.

항상 볼 수 있는 별 중 가장 밝은 별은 금성과 시리우스이며, 특별한 시기에 밝게 빛나는 별로는 혜성, 신성, 초신성(별이 폭발하며 밝게 빛나는 별), 이성상합(2개의 별이 서로 겹쳐지며 밝게 빛나는 현상), 유성(별똥별) 등이 있는데, 그중 베들레헴의 별은 어느 것일까?

케플러가 발견한 베들레헴의 별

▲천문학자 케플러.
베들레헴의 별에 대하여 최초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정체를 연구한 천문학자는 케플러이다. 케플러(Johannes Kepler,1571∼1630)는 루터교 목사가 되려고 할 정도로 헌신적인 기독교인이었다.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프라하로 와서 천문학을 연구하였으며 별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밝힘으로 점성술이 거짓임을 입증하였다.

행성 운동의 3법칙(타원 운동,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 공전 주기의 법칙)을 발견한 후 그는 "나의 발견으로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만 높아지게 하시고 나의 이름은 쇠하게 하소서"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의 발견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의 기초가 되었으며 인공위성 궤도에도 적용되고 있다.

그는 많은 시간을 드려 베들레헴의 별에 대하여 집중 연구했으며 BC 7년 5월, 10월 및 12월 목성과 토성이 물고기자리에서 3번 이성상합을 이루며 밝게 빛을 발한 사실을 계산해 냈다. 목성은 '왕'의 별이며 토성은 가나안 지방의 방패  유대 민족의 수호성(구원자)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물고기는 익투스의 의미와 같이 메시아(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따라서 그는 이 이성상합이 바로 베들레헴의 별로서 "유대인의 왕이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탄생의 징조"라고 믿었으며, "나는 신학자가 되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을 볼 때 천문학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영광 받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감사를 드렸다.

현대과학 의해 밝혀지는 신비

▲천문학자 케플러는 베들레헴 별애 대해 최초로 과학적인 연구를 했다. 그는 이성상합이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지목했다.
컴퓨터에 의한 계산과 별의 이동 경로를 천정에 비추며 확인하는 프로젝터인 플라네타륨(천상의·천체 투영기) 조사 결과, 3차례 합은 BC 7년 5월 29일, 9월 29일 및 12월 4일에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추측하면, BC 7년 5월 29일 목성(왕)과 토성(구원자)이 물고기자리(메시아)에서 약 1도(달 지름의 2배) 거리로 근접하여 빛을 발하는 1차합을 보고 동방 박사들은 유대 땅에 왕이 탄생하였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두 행성이 서로 멀어지다가 8월초부터 다시 서로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박사들은 구세주 탄생에 대한 두려움과 경이로움으로 여행 준비를 시작한 것 같으며 마침내 9월 29일 2차합이 이루어지자 이들은 메시아 탄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여행을 떠난 것 같다.

약 2달 동안 900km의 먼 거리를 여행한 뒤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당시의 유대왕인 헤롯을 만났으나 왕궁에는 최근에 왕자가 태어난 사실이 없음을 알고 크게 실망했을 것이며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탄생하리라"는 예언의 말씀에 따라 12월 4일, 왕궁을 나서는 순간 3차합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를 본 박사들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다(마2:10).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남쪽으로 약 8∼10km를 걸어 아기 예수 계신 집에 도착했을 때, 그 별은 완전한 3차합을 이룬 상태로 머물러 있었으므로(마2:9), 박사들은 그 집의 아기가 바로 메시아임을 깨닫고 그 분에게 경배하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이다(마2:11).

케플러는 약 400년 전에 이 사실을 밝혔지만 최근에는 컴퓨터와 천체 관측 기술의 향상으로 더 많은 연구와 제안들이 이루어 졌다. 캠브리지 대학의 헨프리즈, 스페인 천체물리연구소의 마르키저(저서 「베들레헴의 별」), 천체물리학 박사 마이클 몰나(저서 「베들레헴의 별-동방 박사의 유산」) 등의 저서를 보면 더 큰 은혜가 넘치리라.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베들레헴의 별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사람들이 우상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세의 시신과 법궤와 성경 원본을 감추신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의 별도 그 흔적을 지우시고 비밀에 부치셨는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는 다시금 하늘의 징조가 나타날 것이며(마24:29∼30), 예수님은 어둠의 권세를 이기는 '광명한 새벽별(계22:16)'로 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님은 언제 탄생하셨나?

▲예수 탄생과 베들레헴 별의 관계를 담은 도표.
크리스마스(Christmas)는 Christ(그리스도)와 Mass(미사)의 합성어이며 동방 박사들이나 목자들처럼 탄생하신 예수님께 경배 드리는 날이다. 서방교회는 2세기부터 12월 25일(북방지역의 수목제날. 당시의 동지. 태양이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가 떠오르는 '태양의 탄생일')을 빛이신 예수님의 탄생일(요1:9∼10)로 지켰으며, 동방교회는 여섯째 날에 첫 사람 아담을 창조 하셨으므로 1월 6일을 둘째 아담(고전15:45∼47)이신 예수님의 탄생일로 삼았다.

AD 525년 디오니시우스는 기발하게도 로마 황제의 재위 기간을 역산하여 예수 탄생 기원을 계산하였으며, 로마기원 753년을 BC(Before Christ, 그리스도 이전·주전) 1년으로 하였고, 로마기원 754년을 AD(Anno Domini, 주님의 해·주후) 1년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옥타비아누스란 이름으로 재위한 기간을 빠트렸고, 기원 원년 없이 BC 1년에서 AD 1년으로 바로 건너뜀으로 다시 1년을 빠트렸으며, 이 문제는 약 1,500년 후인 지난 2,000년도에 Y2K라는 컴퓨터상의 대 혼란을 야기하였다.

예수님의 탄생 시점은 헤롯왕이 죽기 전이며(마2:19), 베들레헴에서 어린아이들을 학살하기 이전이다(마2:16). 마리아가 아구스도의 영을 따라 호적 하러 갔을 때이며(눅2:1),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처음 한 것이다(눅2:2). 동방에서 그의 별이 나타났을 때이다(마2:1∼2). 예수님은 30세쯤 되셨을 때 공생애를 시작하셨으며(눅3:23), 3년 간의 공생애를 마치시고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때에서 역산하면 탄생 시점을 알 수 있다. 세례요한보다 6개월 뒤에 태어나셨으며(눅1:26), 요한이 배태된 때는 아비야 반열이 대제사장 직무를 행할 때이었다(눅1:5-8).

헤롯은 BC 37년부터 BC 4년까지에 유대 왕으로 있었으며, 요세푸스의 역사 기록에 의하면 그가 죽은 해에 월식이 있었고, 월식 후에 그의 아들 안티파텔을 죽였고, 5일 이상 지난 후에 여리고에서 죽었으며, 애도기간(7일)이 지난 이후에 유월절이 있었다. 플라네타륨으로 유대지방에서 볼 수 있었던 월식을 조사한 결과 BC 4년 3월 12일 밤에서 13일 새벽 사이에 월식이 있었다. 그해 유월절은 4월 11일이었으므로 헤롯은 BC 4년 3월 17일에서 4월 4일 사이에 죽었으며, 예수님은 BC 4년 이전에 태어나신 것이다.

베들레헴 부근의 2살 이하의 아이들을 학살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아(작은 마을이었으므로 학살자 수가 많지 않아 기록에 없는 것 같음) 그 시점을 알 수 없으나, 헤롯이 죽은 후 예수님의 가족들이 애굽에서 돌아올 때 학살의 두려움이 가시지 않아 갈릴리에 정착한 것을 보면 헤롯은 아기들을 학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즉 1∼3년 이내에) 죽은 것 같다.

당시 예수님은 6개월∼1년 된 아기였을 것이므로 헤롯이 죽은 해에서 이 기간들을 감하면 예수님은 BC 7∼5년에 태어나신 것이다. 목자들이 경배드릴 때 예수님은 갓난 아기(눅2:16)였으며, 축사 안의 구유에 누워 계셨다(눅2:16). 그러나 동방 박사들이 경배드릴 때의 예수님은 어린 아기(무릎으로 기거나 아장아장 걸을 수 있는 아기, 마2:11)였으며 집에 계셨다(마2:11).

예수님 탄생은 12월 아닌 5월

터툴리안의 기록에 의하면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는 BC 27∼AD 14년 사이의 로마 황제였다. 당시 유대는 수리아 총독 산하에 있었으며, 수리아 지방의 호적조사는 BC 9년에 명을 내려 BC 8∼6년에 시행 되였다.

람세이 교수는 최근 발견된 고대 기록에 의거 "구레뇨는 그의 재임기간 중 2번 수리아 지방의 인구조사를 하였으며, 첫 인구조사는 BC 7∼6년에 시행되었다"고 하였으며, 이는 성경의 기록 "첫 인구조사 때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눅2:2)"과 일치한다.

BC 7년 수리아 총독은 퀸틸리우스이었고, BC 6∼5년에는 사트루니우스였으나, 구나덴시아 전쟁의 지휘권을 갖고 있던 구레뇨는 아구스도 황제의 특명으로 총독 교체기간 전후에 총책임자(특사, 성경의 총독과 동일 의미)로서 인구조사를 한 것이다. "구레뇨는 AD 6∼9년에 수리아 총독을 하였으며 AD 7년에 호적조사를 하였다"는 요세푸스의 기록과 예수님의 탄생 시기가 맞지 않아 곤혹스러웠으나, 구레뇨는 몇 차례 수리아 총독을 하였음과 이것은 그의 2차 인구조사 기록(행5:37)임이 밝혀졌다.

케플러가 발견한 베들레헴의 별(BC 7년 5월 29일 출현)은 그의 생전에는 당시의 역사 기록과 맞지 않아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최근 고고학 연구 결과인 'BC 7년 탄생 설'과 정확히 맞다. 더구나 예수님 탄생 당시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양떼를 방목하던 정황(눅2:8, 12월엔 불가능하나 5월은 적기)과도 일치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유월절 전날인 금요일이었으며 음력 보름날이었다. 플라네타륨 조사 결과 만월과 금요일과 유월절 전날이 겹친 날은 AD 30년 4월 7일이다. 서양 사람들은 예수님이 '13일의 금요일'에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으나 플라네타륨 조사 결과 이런 날과 유월절 전날이 겹친 적은 없으므로 나중에 지어낸 거짓말임이 밝혀졌다.

여기서 약 3년 전인 AD 26∼27년경, 즉 예수님이 30세쯤 되셨을 때(여기 30세쯤의 의미는 30세로 단정한 것이 아니라 30대를 의미한다)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눅3:23). 예수님이 BC 7년에 탄생하셨다면 33∼34세 되셨을 때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37세 때인 AD 30년 4월 7일에 돌아 가셨으며 당일 무덤에 묻히셨다가 사흘 뒤인 AD 30년 4월 9일, 주일 날 새벽에 부활하신 것이다. 할렐루야!

동방 박사들의 경배

'박사들(마고이)'의 어원은 점성가와 같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성경에서 나쁜 의미로 사용되는 점성가가 아니라 '대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롬1:20)한 진실한 천문학자들'이며, 마음이 청결하여 하나님을 본(마5:8) 현자들임이 분명하다. AD 250년경 터툴리안은 "박사들은 왕들이었다"고 말했다. "왕들이 주께 예물을 드리리이다(시68:29)", "낙타를 타고 와서 유향을 드리리이다(사60:3∼6)"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됐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동방 박사들의 수가 적혀있지 않아 몇 명이나 왔는지 알 수 없으나 세 가지 예물을 드린 것으로 볼 때 세 사람인 것으로 추정되며 예루살렘이 소동할 정도로(마2:3) 상당수의 일행을 데리고 온 것 같다.

▲신태수 집사.
초대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박사들의 이름은 가스팔, 발타살, 멜키올이다. 이들은 백인, 황인, 흑인이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이며, 연령도 노인, 장년, 청년으로 각각이다. 이들은 당시 모든 세상, 모든 인종, 모든 연령층을 대표하여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변치 않는 황금은 예수님의 영원한 왕권을, 하나님께 바쳐지는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을, 시신에 사용되는 몰약은 예수님의 인성을 상징하며, 예수님은 존귀하신 왕이시며, 하나님께 향을 드리는 제사장이시며, 십자가상에서 몰약을 맛보시고 죽으신 선지자이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는 금과 같이 변치 않는 믿음을 예수님께 드려야 하며, 향기로운 향인 기도를 드려야 하며, 몰약과 같이 부패를 방지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화곡동교회 신태수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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