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종교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앙하는 우리는 전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로서 살아간다.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란 어떤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예배의 용어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런 신학적인 용어는 접어 버리고, 간단히 말하면 예배란 하나님의 영화로우심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그 영화로우심에 대하여 나 자신의 모두를 드려서 예(禮)를 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분의 모든 삶을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바쳤으므로 예수님의 삶 자체가 가장 훌륭한 예배인 것이다.

주일날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 이것만이 예배의 모든 것은 아니다. 이것도 예배가 맞지만 이런 예배는 예배의 여러 형태 중에서 한 부분일 뿐이다. 이런 예배 형태에서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 자체를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께 예(禮)를 표하는 것이 예배의 의미에 더욱 더 근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이다
우리는 우리가 예배드리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그것은 예배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주일날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드릴 때, 그 예배 순서 속의 설교 말씀 속에서, 찬송 드릴 때 찬송가의 가사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이 묘사되어진다. 즉 말씀과 찬송 속에서 하나님의 영화로우신, 은혜로우신 모습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령하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육체적인 눈으로는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예배에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우리는 예배드리면서 말씀과 찬송을 통해서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뵙고 그분께 감사와 아멘의 마음으로 화답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배인 것이다.

예배당에서 전통적 방식으로 예배를 드릴 때는 하나님과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데, 그럼 예배당 밖에서 드리는, 우리의 일상의 생활을 드리는 예배 속에서는 어떻게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질까?

이 글 서두에서 필자는 예수님의 삶 자체가 가장 훌륭한 예배의 전형이라고 이야기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당하는 자, 가난한 자, 억압당하는 자, 어려움 속에 있는 자, 불의가 횡횡하는 가운데서 정의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자, 등등 이런 사람들과 이런 모든 상황들 속에서 지금도 함께 계신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 전부를 드려서 성부 하나님께 경배 드린 것처럼, 예수님께서 지금계신 그러한 상황 속으로 우리가 따라 들어갈 때, 우리는 그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것이며, 또한 우리 삶을 드림으로서 우리는 그분께 응답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것이 아주 거창하고 큰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든다면 회사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부당하게 대우할 때, 그 불의한 상황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나한데 불이익이 온다고 해도 그 불의한 상황 속에 들어가서 부당함을 지적하고 그 불의한 상황을 올바르고 공의로운 상황으로 바꾸려고 자신을 던지는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예배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릴 때 우리에게는 아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공동체의 모임인 교회는 날로 날로 새롭게 늘 갱신되어야 한다. 즉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날마다 성숙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숙되는 변화가 우리가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릴 때 이루어진다.

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가 하면,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든지 또는 우리의 삶 속에서 삶의 고백으로서 드려지는 예배든지, 이 예배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예배 속에서 만나는 그 하나님은 모든 거룩과 성결, 그리고 정의나 진리 등, 모든 참되고 올바른 것의 근원이 되시고,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결되어서 그 자양분을 공급받는 것처럼 우리도 참되고 선한 것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과 예배 속에서 함께 함으로서써, 그 참되고 올바른 것들을 공급 받음으로써,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 공동체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장성하게 성장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은 더 이상 그 사람과의 인격적인 교제나 교류는 없다는 것인데, 우리가 늘 예배드리는 삶을 살아가면 우리는 그 예배 속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늘 가짐으로써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긴밀히, 친밀히 유지할 수 있고, 그 인격적인 관계 유지로 말미암아 우리 개인은 우리의 첫 모습(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 본래의 모습)으로 날마다 회복되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예배는 상호행위적인 것이다
이제 결론으로 들어가겠다. 예배는 예배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이에 대한 인간측의 응답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기계시만 있고 인간측의 화답이 없다면 우리는 예배자가 아니고 방관자, 구경하는 존재다. 우리가 예배행위에 참여할 때, 즉 예배당에서 예배드릴 때는 그 순서순서 속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감사와 아멘으로 화답할 때, 또 삶의 자리에서는 위에 필자가 예를 든 그런 상황 속으로의 참여처럼 자신의 삶을 던져서 응답할 때, 그래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인간의 응답이 만나는 그 상황이 곧 예배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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