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무지개 색으로 옷을 맞춰 입고 학교 채플에 참석했다. 예배가 끝난 후 강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적극적으로 무엇을 외치지도 않았고 무엇을 나눠 주지도 않았고 무엇을 반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작은 행동으로 누구는 정학, 누구는 근신이라는 징계를 받았고, 학교와 교단 전체가 들썩였다. 학생들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들의 행동은 여러 집단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됐다.

무지개 색 옷을 입고 예배에 참석한 행동은 자신들도 뭐라 이름 붙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것도 아니고, 당시 일을 벌인 8명이 서로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이것을 무지개 '퍼포먼스'라 이름 붙인 것도 언론이었다. 징계받은 학생 중 한 명인 이창기 씨는 이 행동이 퍼포먼스라 하기에는 너무 소극적이었다며 개인적으로 무지개 '행동'이라는 말을 선호한다고 했다. 그만큼 사실은 '별것 아닌' 일이었다.

학생들의 행동을 멋대로 해석하고 여기저기 갖다 붙여 '논란'을 만든 건, 동성애만 연관됐다 하면 침을 흘리는 일부 언론과 목사들이었다.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최대 이슈였던 '명성교회 불법 세습'을 옹호하던 이들에게 이는 좋은 먹잇감이 됐다. 이들은 '세습 불가'를 천명했던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들을 '동성애 옹호' 프레임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교수들은 학생들을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이 '별것 아닌' 행동을 한 학생들을 징계했다.

징계는 불법이었다. 징계받은 학생 4명은 학교를 상대로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과 '징계 무효 확인소송'을 걸어 모두 승소했다. 이 불법 징계로 학생들이 받은 피해 또한 인정됐다. 학생들이 학교를 상대로 건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학교가 학생들의 양심의자유와 학습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이 올해 11월 확정되면서, 학생들은 4년 여간 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3개에서 모두 승소하게 됐다.

징계는 애초에 무효였고, 학교는 법원이 명령한 손해배상금(각각 200만~300만 원)을 학생들에게 지급했다. 학교는 돈 1000만 원으로 법적인 책임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삶은 돈 몇 푼으로 해결될 수 없는 타격을 받았다. 믿었던 스승들과 동문들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없게 됐으며, 사명을 받고 달려가던 목회에 대한 꿈이 심각하게 흔들렸다.

'무지개 행동'으로 파생된 사건이 일단락된 지금,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뉴스앤조이>는 11월 24일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징계당한 학생 중 서총명·김지만·이창기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무지개 행동 후 4년 반이 지났다. 그야말로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흔들렸던 학생들은 이제는 조금 가야 할 방향을 잡은 것 같았다. 진지한 대화였지만 웃음도 빠지지 않았다. 이야기를 마치니 2시간 반이 지나가 있었다.

왼쪽부터 서총명, 오세찬, 김지만, 이창기 씨. 오세찬 씨는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인터뷰 자리에 들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왼쪽부터 서총명, 오세찬, 김지만, 이창기 씨. 오세찬 씨는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인터뷰 자리에 들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정치 싸움에 희생양 된 학생들

- 손해배상 소송을 끝으로 학교와의 소송에서 전부 승소했습니다. 간단하게 소회를 말씀해 주신다면.

이창기 / 후련하지만 후련하지만은 않아요. 손해배상 소송 판결을 들으면서 제일 먼저 한 생각이 '금전적 배상으로만 끝난 거구나'라는 거였어요. 물론 판결문을 보면 학교가 저희의 학습권과 양심의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인정했지만, 결국 학교는 금전적 배상 말고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 거니까요. 저희는 처음부터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원했거든요. 징계가 부당했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부분에서는 후련했지만, 결국 학교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것 같아서 찝찝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어요.

김지만 / 저는 그냥 끝나서 후련하다, 기분 좋다는 마음이 가장 커요. 1심에서 지고 나서 많이 불안했고,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거든요.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생각도 하죠. 그런데 학교나 교단 상황을 봤을 때 크게 달라진 게 없으니까, '과연 우리가 지난 4년 동안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했을까'라는 물음표도 조금 남아 있긴 해요.

서총명 / 저는 처음부터 늘 이런 생각이었어요. '이렇게까지 될 게 도대체 뭐가 있었을까….' 저는 징계위원회 들어가서도 그랬어요. "이런 걸로 징계하면 학교가 진짜 어떡하려고 하느냐"고. 누가 봐도 정치적인 징계였고 이걸 강행한다면 앞으로 학교에 들어오는 압박들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느냐고요. 징계 내리면 정치적으로 굴복하는 모습으로 보일 거라고, 여기서 같이 막아 내자고 교수님들한테 말씀드렸거든요.

재심을 신청한 것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도, 어찌 보면 저는 교수님들한테 명분을 만들어 주려고 했던 거예요. "학생들이 이렇게 반발하니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징계 취소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소송 과정에서 학교가 제출한 증거들을 보면, 오히려 교수들이 저희에게 죽자고 달려드는 것 같았어요. 가처분 결정이 나왔는데도 학교는 이행하지 않았고요. 결국 이렇게 됐는데 늘 같은 생각이에요. '이렇게까지 될 게 있었나….'

- 학교로부터 손해배상 금액이 입금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통장에서 확인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서총명 / 그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제가 정학을 받아서 손해배상금을 제일 많이 받긴 했는데, 그래 봤자 한 학기 등록금도 안 되는 돈이에요. 저희가 돈을 바라고 소송을 한 게 아니잖아요. 그 돈 들어왔다고 기쁜 것도 아니고 오히려 기분이 안 좋았어요. 이런 결말을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무엇보다 발신인이 불분명하잖아요. 물론 학교가, 법인이 보내오긴 했는데, 과연 누가 책임지는 걸까요. 교수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요. 징계를 내린 사람들은 있는데 그 누구도 입장 표명이 없어요. 아마 "돈 줬으니 우리는 책임을 다했다"라고 말하겠죠. 그런 태도가 아쉬운 것 같아요.

김지만 / 그냥 딱 처음 생각은… '우리의 4년이 240만 원 정도밖에 안 됐구나'라는 그 한 문장이 떠올랐어요. 저는 '어떤 목회자가 되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갖고 그런 행동을 했던 건데, 그 행동 하나로 제가 꿈꿔 온 목회의 모습이 다 무너졌거든요. 그 전체가 그냥 240만 원짜리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돈을 의미 있게 쓰자는 친구들도 있는데, 저는 의미 있는 금액이어야 의미 있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이게 충분하지 않은 금액이라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잖아요. 금액적으로만 보면 저희가 승소했다고 보는 것도 좀 어렵죠. 그냥 뭐 용돈 생겼다고 생각하는 게 맘 편한 것 같아요.

이창기 / 저도 비슷해요. '이게 뭔가' 싶은 생각과 '어떻게 써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뭔가 이걸 허투루 쓰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얼마 안 되는 돈이긴 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에 이바지할 만한 투자를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들었어요.

- 저기서는 용돈처럼 쓴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한국교회가 나오네요.(웃음)

김지만 / 나만 용돈처럼 쓴다고 했나.(웃음) 그래도 제 생각엔 변함없어요.

서총명 / 200만 원으로 한국교회를 어떻게 살려. 못 살려. 한국교회를 값싸게 생각하네.(웃음)

이창기 / 그래서 '투자'라고 했잖아.(웃음)

이창기 씨는 현재 복학해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창기 씨는 현재 복학해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결론적으로 징계는 불법이었고 양심의자유와 학습권을 침해한 것이었는데요. 학교가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요? 각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지만 / 그냥 교수들이 본인들 살자고 학생들 방패막이로 삼은 거예요. 이런 게 저희 사건뿐 아니라 계속 반복돼 왔는데 그동안은 무리수가 아니었던 거죠. 그간 쭉 학생들 앞세워서 자기들 안위 지켜 내고, 어느 정도 윽박지르면 학생들은 "네" 하고 따랐던 거예요. 근데 저희는 말을 안 들은 거죠. 그러다 보니 무리수에 무리수를 계속 더하게 된 것 같아요.

교수들은 좋은 이미지, 장신대 교수로서 어느 정도 정의로운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었던 거예요. 근데 그게 동성애 문제로 침해를 당하니까 '얘네 징계할 테니까 우린 건들지 마세요', '지금 얘네하고 싸우고 있으니까 더 이상 시비 걸지 마세요' 한 거죠. 교수들은 우리한테 오히려 고마워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사건 하나 터뜨려 줘서 자기들이 받을 비난을 대신 가져가 줬으니 말이죠. 명성교회 세습 문제도 보면, 처음에는 뭐 정말 자기들 교수직을 다 걸 것처럼 하다가 결국 유야무야됐잖아요. 자기들한테 들어올 비난을 저희를 징계해서 완충한 거예요. 저희가 완충제 역할을 해 줬으니 고마워해야죠.

이창기 / 당시 교수들이 명성교회 세습을 반대하니까 동성애 프레임으로 공격이 들어왔죠. 제가 생각할 때 교수님들은 명성교회 세습 문제에 더 진심이셨던 것 같아요. 명성교회라는 권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일종의 '꼬리 자르기'를 한 거죠. 명성교회를 옹호하는 측에서 자꾸 동성애로 시비를 거니까 '아니야, 우리 사상적으로 이상한 집단 아니야' 하면서 본인들 생존을 위해 꼬리 자르기를 한 거예요.

좀 다른 답변이 될 수도 있는데, 현재는 저만 학교에 다니고 있다 보니까 느끼는 게 있어요. 일부 교수는 학생들을 희생양 삼았다는 게 옳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교수 사회에도 금이 간 거죠. 꼬리 자르고 자기들은 살아남으려 했는데, 결국 모두가 상처받고 명성교회 세습은 이미 넘어갔고…. 살기 위해 몸부림쳤는데 결과적으로 살았지만 산 것 같지 않은 느낌인 거예요.

- 교수들이 명성교회 세습 반대에 진심이었다고 하셨는데, 사실 지금은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김운용 교수도 명성교회 세습 반대 활동을 열심히 했던 거 같은데 총장 되고 나서 별말이 없고. 그거라도 열심히 했으면 진정성은 인정할 수 있겠는데 말이죠.

이창기 / 당시 그들의 명분은 명성교회였죠. 실제로 그렇게 많이 얘기했고. 근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던 거예요. 저는 이제 교수들을 보면 '진짜 속을 알 수가 없구나' 싶어요. 이번 학기 신학대학원 사경회 주강사가 임성빈 전 총장이었어요. 목회가 어렵다는 말을 하면서, 목회가 어려운 이유는 성도들이 다양하기 때문이고 그 다양성을 품으려면 복음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그 복음의 내용은 생명 중시다, 이렇게 얘기해요. 저는 설교를 들으면서 '그걸 아는 사람이 우리를 징계해?'라는 생각이 들었죠. 정말 속을 알 수가 없어요. 이해가 안 가요. 이분들이 그냥 입바른 소리 하고 좋은 얘기 하는 게, 그것마저 자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건가 싶어요.

서총명 / 저는 장신대라는 학교가 애초에 어떤 구조로 만들어졌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봐요. 장신대라는 공간은 큰 교회들의 자본이 들어와서 지어진 거예요. 건물만 봐도, 명성관도 있고 소망관도 있고 한경직예배당도 있고 김삼환기념실도 있고 하거든요. 신학교를 설계하는 데 대형 교회들의 지분 같은 것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 이래로 계속해서 대형 교회들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학교가 운영돼 온 거죠.

그렇게 봤을 때 장신대는 교육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아요. 그냥 공장이에요. 교회에 납품하기 위해 목회자를 찍어 내는 공장 정도의 역할. 지분을 갖고 있는 교회들이 그걸 원했기 때문이에요. 그걸 교수들이 그냥 받아들였고, 누구도 그걸 끊어 내지 않았고, 문제의식조차 갖지 않았던 거죠. '신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교회에서 쓸 수가 없다'는 말을 몇십 년째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교수나 학교는 아무 책임 없다는 듯이 그냥 계속 똑같이 찍어 내고 있어요.

명성교회 세습 초기에 교수들이 반대했던 건, 어찌 보면 공장 지분권 싸움에서 노동자들이 경영자들에게 자신들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나 싶어요. '우리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라고 보여 준 거죠. 명성교회가 자신들의 자리까지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 같아요. '우리 공장 잘 돌아가고 있어'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제품 서너 개 버리는 거야 큰 의미 없던 거예요. 그런데 총회에서 임성빈 총장 인준이 부결됐잖아요. 명성교회가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거죠. '너네 교육기관 아니야. 너희 역할은 그냥 공장이야.'

신학교라는 곳이 애초에 그렇게 세팅됐기 때문이에요. 이건 장신대만의 문제는 아니죠. 다른 교단, 다른 학교에서도 곧 벌어질 일이에요. 다 비슷한 구조잖아요. 이게 지금 단순히 성소수자 문제 이런 게 아니에요. 이번엔 성소수자이고 다음엔 또 다른 거겠죠. 이런 원인을 납작하게 보거나 단순하게 평가하니까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둑이 터지려고 하는데 손가락으로 구멍 하나 막으려는 것과 같죠.

- 납작하게 보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얘기를 듣다 보니까 결국 그냥 '밥그릇'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서총명 / 저는 차라리 밥그릇 때문이라고 인정하면 좋겠어요. 그게 솔직한 태도죠. 근데 자꾸 '성소수자가 신학적으로 인정될 수 있냐 없냐' 이런 토론을 하고 있단 말이에요. '예배학적으로 이 행동이 예배 방해냐 아니냐' 이러고 있어요. 사실 교수들은 성소수자 문제에 별 관심 없어요. 자기들도 다 외국에서 유학하면서 성소수자들과 같이 배우고 생활하고 했을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은 동성애자면 입학조차 거부한다? 사실은 아무 생각 없는 거예요.

무엇이 진정한 도움인가

- 벌써 4년 반이 지났는데요.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어떤 것이 가장 힘들었나요.

이창기 /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사회적 죽음'을 당한 거라고 스스로 정리를 했어요. 이런 걸 처음 겪으니까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뭔가 시도해도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가장 컸어요. 사실 교계만 떠나면 해결되는 문제이긴 했지만, 어쨌든 일단 계속 붙어 있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내가 여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메시지를 갖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또 한 가지는 믿었던 사람들마저도 등을 돌렸던 거. 처음에는 저희 식구들도 저를 설득하려고 했거든요. 제 얘기는 듣지 않고 다른 사람들 말을 듣고 저를 판단했어요. 주변 사람들의 그런 말들이 상처가 됐고 견디기 힘들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어느 정도 제 안에 내구성이 생기고 나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지금 제가 답답함을 느끼는 부분은, 사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거든요. 학교가, 교단이 잘못 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근데 그 누구도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아요. 그냥 비아냥거리고 욕하는 걸로 끝이에요. 문제의식은 갖고 있는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일단 지금은 살아남아서 미래에 뭔가를 해 보겠다는 생각, 그런 태도를 마주할 때가 좀 힘들더라고요.

서총명 / 이 사건이 일종의 정치적 도구가 됐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희 개개인이 사라지는 거예요. 우리를 지지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도, 저 개인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이 사건에 얽힌 교단 내 정치적 권력 구조 안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조언을 하는 거예요. 근데 저희가 그 말대로 하지 않으면 굉장히 배신감을 느끼나 봐요. 그래서 오히려 저희를 공격해 오고 그런 적이 있었어요. 그런 게 힘들었어요.

예장통합 내 에큐메니컬 선배들도 그랬고 청년 단체나 학우회도 마찬가지였어요. 정학을 받았으니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거라느니, 자기를 봐서 반성문 한 장 써 달라느니… 저희 의사는 묻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하려 한다', '너희는 어떻게 해 줬으면 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요. 결국은 찾아갈 사람은 없고, 저희끼리 다 하게 되더라고요. 이동환 목사님 사건 보면 대책위원회 꾸려져서 대응하잖아요. 저희는 그냥 4명이서 결정하고 소송하고 돈 모아서 인지대 내고 했어요.

김지만 / 첫째로는 관계들이 끊어지는 게 힘들었어요. 애초에 말이 통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야 신경 안 쓰지만, 믿었던 사람, 저희를 지지한다는 사람들이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손절해 버리는 일이 있었거든요. 생각해 보면 저희가 먼저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니었어요. 뭐 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신경 써 주는 척하더니 결국 왜 자신들 뜻대로 하지 않느냐면서 돌아서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더 미운 거예요. 사람에 대한 신뢰가 하나하나 무너졌어요.

한 가지 떠오는 게 제가 복학했을 때 모 교수가 저를 엄청 챙겨 주듯이 했어요. 당시는 제가 징계받은 사람들 중 혼자 복학한 상태여서, 뭐라도 해 보자는 생각으로 온라인 수업할 때 화상회의 배경을 무지개로 했어요. 그랬더니 그 교수가 개인적으로 연락해 와서 무지개 배경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저는 싫다고, 이건 내 신념에 의한 행동이고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내가 널 얼마나 보살피고 생각해 줬는데 왜 말을 안 듣냐'는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이런 거죠.

또 한 가지는 징계 이후부터는 저를 위해 살았다기보다 다른 분들, 그래도 뒤통수 안 치고 마지막까지 저희를 응원해 주시고 지지해 주시는 분들을 위해 살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분들은 저희가 예장통합 안에서 목회자가 되는 걸 보고 싶어 한다고 저는 생각했기 때문에, 학교에 복학하고 졸업까지 한 거죠. 사실 저만 생각하자면 복학도 말이 안 되는 거였고, 욕먹어 가면서 무지개 배경 쓰고 졸업까지 할 일이 아니었어요. 그러다가도 진심으로 응원해 주시는 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래, 목사 고시까지는 보자' 이렇게 되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안 해도 그분들이 뭐라고 하실 분들은 아니지만, 너무 감사하니까요. 나를 생각하면서 살지 않았던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김지만 씨는 징계 당사자들 중 가장 먼저 복학해 신대원을 졸업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김지만 씨는 징계 당사자들 중 가장 먼저 복학해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반대로 힘이 됐던 사람도 많이 있었던 것 같네요.

김지만 / 네, 지금 제가 일하는 교회 교인분들에게 제일 감사하죠. 징계 당시 신학대학원장 교수가 제가 사역하던 교회에 찾아오는 일이 있었어요. 그 교회에 피해가 될까 봐 그냥 나왔거든요. 그러고 나서는 전도사 안 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고기교회 안홍택 목사님이 저희 사정을 아시고 교회에 사역할 자리가 있으니까 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할 생각이 없어서 그냥 둘러대고 있었는데, 굳이 밤늦게 제가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 직접 찾아오셔서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사역을 하게 됐죠.

교회에서 틈틈이 설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제 상황들을 공유하곤 했는데, 교인분들이 저를 많이 응원해 주셨어요. 보통의 교회였으면 '저런 교역자에게 내 아이 못 맡긴다' 이런 분위기가 됐을 텐데, 전혀 그런 건 없었고 오히려 제가 갖고 있는 신학적인 방향들을 더 가르쳐 달라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정말 힘이 됐죠. 감사했어요.

이창기 / 저희 소송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성소수자위원회 변호사분들이 맡아 주셨어요. 그분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한동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2019년 12월에 저희랑 한동대 학생들이 같이 간담회를 열었어요. 거기서 장서연 변호사님이 "저는 이분들이야말로 목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게 제가 복학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때는 저도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었거든요. 근데 그 말을 듣고 '쉽게 포기할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프리다(오현선 대표·공간엘리사벳)도 고마운 분이죠. 아까 총명 형도 얘기했지만, 에큐메니컬 선배들이 이래라저래라 할 때 진짜 유일하게 저희 이야기를 들어 주시고 존중해 주셨던 분이에요.

또 이건 저 혼자 갖고 있는 감정인데, 학교 교수님 중 딱 한 분이 계세요. 이분은 엄청 보수적이에요. "동성애는 안 된다"고 해요. 그런데도 이분은 저희가 신앙 양심을 갖고 한 행동이라는 점을 인정하셔서, 이건 징계할 사안이 아니라고 반대를 하셨대요. '진짜 보수'인 거죠. 그 일로 교수 사회에서 불이익을 많이 당하신 걸로 들었어요.

서총명 / 저는 변호사님들에게 감사하기도 하고 좀 죄송해요. 저희도 소송이 처음이다 보니까 서투른 게 많았는데, 정말 온전히 저희 입장에서 변호해 주셨어요. 종교 쪽이다 보니 생소하셔서 공부도 많이 하셨고요. 그리고 이게 4년이 되다 보니까 저희도 좀 지치잖아요. 손해배상 소송 1심 졌을 때는 저희도 정말 '그냥 될 대로 되라' 이랬거든요. 그럴 때마다 항상 붙잡아 주시고 회의하자고 해 주셨어요. 그래서 저희도 마지막에는 '변호사님들 보고 열심히 하자'고 했죠.

4년 여간 사람이 되게 정치적으로 변하더라고요. 누구를 만나도 이 사람의 의도부터 파악해야 하는 일이 많았으니까요. 누구도 신뢰하기가 어려웠어요. 마음의 문을 여는 데도 오래 걸리고…. 그러다 보니까 같이 여기까지 와 준 친구들에게 고마워요. 중간에 의견이 다른 적도 많았죠. 그래도 서로를 잘 다독이면서 왔고 서로에게 제일 믿을 만한 사람이 된 거 같아요. (싸해지는 분위기) 이런 말도 좀 있어야 될 거 아니야.(웃음) 고맙다, 고마워. 아, 그리고 <뉴스앤조이> 고맙습니다.(웃음)

김지만 / 아 진짜 <뉴스앤조이> 감사합니다.(웃음)

- 그 얘기가 왜 안 나오나 했습니다.(웃음)

서총명 / <뉴스앤조이> 아니었으면 저희 사건은 그냥 어디 조용히 묻혔을 거예요.

'반동성애 독재' 흐름, 바꿀 수 있을까

- 각자 진로에 대한 생각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지금은 어떤지 말씀해 주세요.

이창기 / 저는 원래 떠날 생각을 했다가, 지금 복학해서 신학대학원 재학 중이고요. 졸업 후에 목사 고시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그 이후로는 사실 그림이 잘 안 그려져서 현재는 그 정도까지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총명 / 소송이 끝나니까 이제 정말 선택을 해야겠더라고요. 이 교단을 떠날까 남아 있을까, 남아 있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그냥 이대로 복학해서 조용히 목사 되는 게 맞나…. 저는 잘못한 것도 없고 징계도 무효고 하니까 뭐 숨어서 미래를 계획하고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알음알음 제 사정을 이해하는 교회들에 연락해서 어떻게 연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교회는 소수고, 또 제가 그 자리에 가면 다른 사람들은 기회가 없어져요. 이런 구조를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근데 그게 안 될 것 같아요. 구조가 이미 이렇게 짜여 있으니…. 지금은 그냥 고민이 많아요.

김지만 / 그동안 저희를 지지해 주셨던 분들에 대한 감사 차원에서 내년에 목사 고시를 보려고요. 목사가 되든 안 되든 저는 별로 상관없어요. 하는 데까지 해 보자는 거예요. 목사가 되면 좋겠죠. 좀 러프한 생각이지만, 목사가 된다면 모두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교회를 꿈꿔요.

최근 장신대 학생들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여전히 교수들은 '너희는 이 길밖에 없잖아. 내 말 거역하면 너희 미래는 없어' 이런 식으로 학생들을 대하더라고요. 제가 지금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보니 그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꼭 목사가 되지 않더라도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저희처럼 교단에서 도태된 친구들이 있으면 같이할 수 있도록. 제가 하는 일을 통해서 그런 걸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요.

서총명 씨는 현재 휴학 중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사실 학교는 소송에서 졌지만 반동성애 기조를 바꾸지 않을 것이고, 예장통합 교단을 비롯한 한국교회 전체가 반동성애 기조를 계속 강화하고 있는데요. 이동환 목사 사건도 그렇고, 교회는 성소수자와 관련해 계속해서 구체적이고 치명적인 불이익을 줄 것 같아요. 이 흐름을 전환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좀 늦출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서총명 / 없는 것 같아요. 막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오히려 가속화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냥 그대로 두고, 다른 조직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방법밖에 없겠다 싶어요. 교회에서 상처받아도, 그것은 한국교회의 어떤 정치적인 문제이지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내 신앙을 이뤄 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의식을 가질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저희가 하는 '무지개신학교'도 그런 취지인 거죠.

이창기 / 지금은 성소수자와 이슬람인 거고, 예전엔 공산당이고 빨갱이였잖아요. 이 메커니즘을 계속 폭로하고 고발하고 외치고 이야기하는, 공론화 작업이 꾸준하게 필요할 것 같아요.

저는 내부에서 좀 새로운 구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목회자들이 자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유롭고 소신껏 이야기할 수 있고 더 다양한 사람과 함께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거요. '그게 예장통합 내부에서 가능하냐'고 했을 때는 솔직히 반신반의해요. 그래서 제가 학교에는 있지만 제도권 밖 이야기들에도 관심을 갖고 발을 걸치고 있는 것 같아요.

김지만 / 생각해 보면 저도 어렸을 때부터 보수적인 교회 환경에서 말도 안 되는 교육을 받고 자랐거든요. 무지개 행동을 할 때도 저는 거기에 완전히 동의해서 참여했던 건 아니에요. 계속 공부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설득된 거죠. 그렇게 봤을 때, 내부의 변화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최근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더 그런 걸 느꼈어요. 불만이 있거든요. 학교가 계속 그런 식으로 굴러가면 이 억눌림도 가속화할 거고 더 많이 축적되겠죠.

저나 선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축적돼 있는 불만들이나 생각들에 불을 붙여 줄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외부에서의 움직임도 필요하지만 내부에서의 움직임도 있어야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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