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장애인은 시민이 아닙니까?'라고 묻자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는 자격이 없다'고 답했다. 장애인이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가 되는 순간 '시민의 자격'을 박탈했다. 이는 마치 장애인이 행동의 주체가 아니라 사회복지 '대상'이 되는 것이 그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장애여성공감, <시설 사회>(와온), 268쪽]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면 시위가 된다. 최근까지 있었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박경석 대표) 출근길 지하철 타기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어떻게 싸워 왔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비판의 화살을 장애인들이 아니라 정책을 바꿀 힘이 있는 자들에게 돌리는 것이 합당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꿔야 할 것은 장애인들의 시위 방식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는 행위가 시위가 돼 버리는 현실이다.

비장애인과 같은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장애인들의 투쟁은 늘 힘겹다. 욕설과 저주를 내뱉은 시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은 물론, 힘 있는 기관들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전장연 시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서울교통공사가 만든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라는 문건이 그 적나라한 예다.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은 무너뜨릴 수 없으니, 전장연의 실수를 물고 늘어져야 한다며 "여론전 승부는 디테일이 가른다"고 써 놨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이보다 더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상황이 있을까.

전장연은 3월 18일 서울교통공사 본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전장연은 3월 18일 서울교통공사 본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그런데 여기에 갑자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혐오의 불을 질렀다. 이 대표는 지난달 말부터 페이스북으로 전장연 시위를 저격하기 시작했다.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다", "비문명적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는 등 장애인 혐오성 발언들을 거침없이 했다. 이에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같은 당 김예지 의원이 전장연 시위 현장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는데도, 이준석 대표는 편 가르기와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 거대 정당 대표의 한마디 한마디는 언론을 타고 삽시간에 퍼지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이에 그치지 않고 4월 1일,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라는 단체와 국회에서 간담회를 열고 장애인 권리 투쟁의 하나인 '탈시설' 운동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탈시설은, 장애나 연령 등의 이유로 집단 거주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운동이다. 그러나 간담회에는 탈시설을 반대하는 이종성 의원(국민의힘)과 단체 사람들이 나와 외려 탈시설이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탈시설은 세계적인 흐름이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사항이다. 2020년 12월 최혜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탈시설지원법)'을 대표 발의했고, 2021년 8월 정부는 미흡한 점이 많지만 '탈시설 로드맵'을 내놓기도 했다.

이제 곧 여당이 될 정당의 대표에게 뜬금없는 공격을 당한 장애인 인권 운동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뉴스앤조이>는 4월 6일 한국 사회에서 가장 먼저 탈시설 운동을 시작한 단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를 만났다. 김정하 활동가는 20년 넘게 탈시설 운동을 해 왔다. 현재 여러 시설을 운영하는 프리웰재단(구 석암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 프리웰재단이 운영하던 '향유의집'은 거주하던 장애인들이 대부분 탈시설해 작년 4월 폐쇄됐다. 한국 사회에서 누구보다 가열차게 탈시설 운동을 해 온 김정하 활동가와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2회에 걸쳐 싣는다. 첫 번째는 이준석 대표 발언의 문제점과 탈시설 운동에 대한 이야기다.

김정하 활동가와 1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할 말이 거의 없어 인터뷰를 두 편으로 구성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김정하 활동가와 1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할 말이 거의 없어 인터뷰를 두 편으로 구성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전장연의 요구는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

- 매일 아침 인터넷에 '전장연'이라고 검색해 보는데, 요새는 이준석 대표 사진으로 도배가 돼 있더라고요. 언론이 이 대표 발언에만 주목한 나머지, 정작 전장연 시위의 목적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명확하게 시위 목적을 이야기해 주신다면.

이준석 대표가 떠들건 안 떠들건, 우리는 그전부터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요구해 왔어요. 시민들에게는 아마 '권리 예산'이라는 용어도 낯설게 다가올 것 같아요. 저희는 장애인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법·제도·정책을 만드는 일들을 해 왔어요. 그런데 법을 만들어 놔도,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이행하지 않아요. 그걸 경험하면서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 권리는 허울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보건복지부를 설득해 제도를 만드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 뒤에는 기획재정부라는 더 큰 산이 있었던 거예요.

정부가 정책 기조를 바꾸고 새로운 걸 하려고 하면 거기에 대한 예산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 내내 기재부가 복지에 매우 보수적인 입장이었어요. "청와대 위에 기재부가 있는 것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저희는 우리나라 경제 수준과 OECD 가입국 평균 장애인 사회복지 지출 예산 같은 것들을 비교하면서 계속 예산을 요구했는데, 기재부는 답이 없었어요. 그러면서 투쟁이 시작됐죠.

전장연 시위의 목적은 장애인의 권리를 명시한 법을 집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배정하라고 기재부에 요구하는 것이었어요.

- 거대 정당 대표의 혐오 발언이 그대로 전파되면서, 장애 인권 운동계에 대한 허위 정보도 돌아다니는 상황인데요.

이준석 대표 특유의 화법이 있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그랬죠. 페미니즘도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다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코드로 묶어서 그걸 표적화하고 공격하는 방식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이 대표가 탈시설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간담회를 했잖아요. 물론 탈시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설명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은 지하철 시위를 주도하는 전장연과 박경석 대표에게 학대와 비리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이었다고 봐요. '박경석 나쁜 놈', '전장연 나쁜 조직', '밖에서는 장애인 권리를 주장하지만 안에서는 비리·학대를 일삼고 있다'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프레임을 씌워서,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시민들을 호도하는 거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렇게 해서 이준석 대표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진짜 의아했어요. 보통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한다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보는 건지….

이준석 대표가 세력을 규합하는 방식을 보면, 어떤 사안을 하나의 게임같이 만들어서 대결 구도를 부추기는 거 같아요.

이 대표의 발언을 보고 저희가 먼저 토론을 제안하기는 했지만, 이후 이 대표가 자기 페이스북에 토론 주제까지 명시하면서 "토론자는 박경석 대표가 직접 나오시지요"라고 했거든요. 그걸 보면서 저는 영화에서 고등학생 일진들이 "야 너, 옥상으로 올라와" 하는 장면 같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맞춰 언론들은 무슨 스포츠 게임 관전 포인트를 소개하는 듯한 기사를 내고.

이런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논의하는 게 저에게는 너무 어색해요. 한편으로는 많이 모욕적이기도 하고요. 그간 장애인들은 이동하면서 실제로 많이 죽거나 다쳤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리프트 기계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데. 시설에서 장애인이 맞아 죽는 사건도 있었고, 지금도 수많은 학대 사건이 계속 보고되고 있어요. 그래서 절박하게, 진짜 자기 목숨과 존엄을 걸고 싸우고 견뎌 냈던 경험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무슨 게임이나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많은 당사자와 그 주변 분들에게 뭐랄까, 상실감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하거든요.

이준석 대표는… 글쎄요, 공감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 여당이 될 정당의 대표라는 것이 분노를 넘어 막 슬프기도 하더라고요. 장애인의 존엄이나 인권 문제, 그리고 누군가 생명을 빼앗겼던 사건들이 그런 방식으로 조명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이런 거는 희화화하면 안 되는 일이거든요. 저는 이준석 대표가 탈시설 정책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프레임이 필요한 것뿐이죠. 이 대표가 하는 말들을 보면 잘 모르는 티가 나요.

- 탈시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탈시설이 '인권침해'라고까지 이야기하는데요.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까요.

탈시설은 해외에서는 빠르게 잡으면 1940년대부터 추진된 정책이에요. 각 나라마다 추진할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에도 장애인 부모들과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탈시설을 반대했어요. 노동자들에게는 고용 문제가 있었고요. 장애인 부모들은 다시 부양의 부담을 질까 봐 반대한 거죠. 지금 한국 사회 일부 장애인 부모처럼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탈시설을 이행하고 나서 가족에게 부양 부담이 돌아오지도 않고, 자녀가 지역사회에서 잘 사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극렬한 찬성자로 돌아섰다는 연구 보고서가 외국에는 넘쳐 나요.

한국도 마찬가지 상황인 거죠. 시설에 자녀를 맡긴 부모들도 알아요. 자녀가 중증 발달장애인이라 시설에 맡기기는 했는데, 발달장애인에게는 애초에 집단생활이 맞지 않거든요. 규율을 이해하고 인간관계를 쌓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니까요. 발달장애인에게는 개인 맞춤 서비스가 제일 좋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도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시설로 자녀를 보내게 된 거죠. 그때의 경험 때문에 죄책감과 같은 강한 트라우마에 시달려요. 그분들은 탈시설이 그 트라우마를 다시 상기한다고 생각해서 반대하시는 거 같아요. 하지만 탈시설은 장애인이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처럼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게 권리를 보장해 주는 정책이에요.

아무래도 탈시설 운동을 공격하는 포인트는 무연고 장애인들 중에서도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분들에 대한 이야기일 거예요.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의사를 표시할 수 없는 분들도 탈시설시킨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도 사실 전제가 잘못된 거예요. 애초에 그분들이 시설에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갔을까요?

유엔이나 유럽연합이 발표한 탈시설 원칙들이 있어요. 탈시설은 '권리'이고 누구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중증이라고, 의사 표현을 못한다고 제재되는 게 아니에요. 당사자 최우선의 원칙을 고려해 지역사회에서 사는 게 삶의 질이 더 높다고 판단되면 그걸 제공해야죠. 그런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데도 시설에 수용하는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는 게 국제 기준이거든요. 저희는 그런 원칙을 가지고 탈시설 지원을 했고 국가기관으로부터 문제가 없다는 판단도 다 받았어요.

실제로 탈시설한 분들이 지금 우리 법인(프리웰재단)에서만 100명이 넘고, 다 지역사회에서 잘 살고 계십니다. 시설에 있을 때는 침대에 묶여 있거나 갇혀 있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자유롭게 일대일로 개인 활동 지원 받으면서 산책·외출·여행·쇼핑도 하고요. 밥도 개인이 원하는 거 먹고, 동네 병원 다니고, 프라이빗한 공간이 있으니 남들 보는 데서 기저귀 케어나 이런 거 하지 않고, 시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 잘 살고 있어요. 가족에게 부양의무가 돌아가지 않고 당사자도 잘 살고 있으니까, 오히려 가족 관계가 회복되는 사례도 많고요.

탈시설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고 한국에서도 탈시설지원법이 발의됐다.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은 미흡하지만, 그래도 정책 기조를 바꿨다는 의미가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탈시설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고 한국에서도 탈시설지원법이 발의됐다.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은 미흡하지만, 그래도 정책 기조를 바꿨다는 의미가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반대하시는 부모 모임에도 저희가 다 설명드리고 실제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집에 가 보고 만나게 해 주겠다고 했어요. 저희가 여러 번 미팅을 요청했는데, 처음에는 만나겠다고 하더니 거절하더군요. 향유의집 종사자였던 A는 지속적으로 탈시설에 대한 허위 정보를 유포하고 있어요. "탈시설한 장애인들은 골방에 갇혀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거죠. A가 저희에게 무수히 소송을 걸고 국가기관에 진정을 넣으면서 괴롭게 하고 있거든요.

이준석 대표가 연 간담회에서도 A가 나와 여러 가지 허위 사실을 말했어요. 4월 7일 국회에서 탈시설지원법 입법 공청회를 하는데, 국민의힘에서 A를 참고인으로 불렀다고 하더군요. 거대 정당이 팩트체크도 하지 않고 이럴 수 있나요? 저는 공당의 대표가 이럴 수 있다는 것에 좀 놀랐어요. 이 대표는 자기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사람을 세워서 떠들 수 있게 판을 만들었어요. 전장연과 박경석에 대한 공격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말이죠.

시설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 뜬금없이 '탈시설'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부정적으로 조명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는 하지만….

'욕먹어도 관심 받는 게 좋다'는 말은 정치인들만 하는 건 줄 알았어요.(웃음) 우리 활동가들이 예전에 농담처럼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100분 토론에 나가서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올까?" 저희가 오랫동안 열심히 투쟁해서 탈시설이든 뭐든 이슈를 하나 알리려고 해도, 무슨 사건 하나 딱 터지면 언론은 싹 다 그리로 몰려가더라고요. 저희가 그런 경험을 너무 많이 했어요.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메인 이슈가 되기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100분 토론'이라는 프로그램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회 주요 이슈라는 카테고리 안에 장애인이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올까'라는 생각이 있었죠.

지금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이준석 대표 때문에 장애인 권리 투쟁이 사회 주요 이슈가 됐어요. 13일 박경석 대표와 이준석 대표의 토론회도 성사됐죠. 시민들에게 우리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건 좋습니다. 근데 지난번 이준석 대표가 연 탈시설 반대 간담회를 중계하는 유튜브를 보니까, 채팅창에 간담회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냥 자기들 하고 싶은 말들만 하고 의미 없는 말싸움만 계속됐어요. 다들 뭔가 스포츠 게임을 보고 있는 것처럼, 그냥 누가 말을 더 잘하는지 이런 거에만 관심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저는 이번 기회에 시민들이 '시설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왜 탈시설을 주장하는지'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어요.

사실 많은 사람이 장애가 있거나 노인이거나 부모가 부양할 수 없는 아동들은 시설에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이번에 누군가 얼토당토않은 논쟁의 시작점을 만들었지만, 이를 계기로 '시설에 사는 게 당연하다'는 사회 통념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조금 깰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 그러고 보니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홈페이지에 "탈시설 운동은 장애인이 무조건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시설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통념을 깨고자 하는 운동입니다"라고 나오더라고요.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살면서 내가 시설에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내가 언젠가 시설로 보내질 수 있다고, 가족의 짐이 된다고 느껴지는 순간 시설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많은 장애인이 기숙학교나 기도원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시설 생활을 경험했고, 결국에는 자기가 선택하지 않았는데 가족에 의해 시설에 가게 되죠. 또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가족이 유기해, 아주 어릴 때부터 시설에 입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단 시설이라고 하는 공간에 입소하게 되면, 기한 없이 그 안에서 계속 살게 되는 거예요. 시설은 직원들이 출퇴근하는 낮 시간 동안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는 공간이에요. 야간 근무자는 소수이기 때문에 야간에는 뭘 할 수가 없는 공간입니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치우고, 씻고, 싸고, 다시 먹고, TV 좀 본다거나 그냥 앉아 있다가, 직원들 퇴근하기 전에 저녁 먹고, 약 먹고, 자고…. 이런 일상을 십수 년 반복해요. 지금 장애인 거주 시설 거주인들의 평균 입소 기간이 18.9년이에요. 한 방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 수가 4.7명입니다. 정신 요양 시설까지 보태면 아마 더 늘어날 거예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이런 생활을 하게 만드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제도죠.

탈시설을 '장애인이 시설로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고 하는 통념을 깨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사실 탈시설의 범위는 훨씬 넓어요. 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죠. 아프거나 장애가 생겼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하는 이유로 시설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요.

탈시설 운동은 '시설로 가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 조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부연하고 싶습니다.

지금 제 부모님이 80세가 넘으셨는데, 부모님 세대에서는 가장 큰 이슈가 "여기서 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 노인 요양 병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왜? 자식들에게 짐 되기 싫으니까. 근데 "난 너무 가기 싫다"고 하시거든요. 지금 노인 요양 시설이 보통 한 병실을 6~8인이 써요. 누가 거기 침대 한 칸에서 살고 싶겠어요. 그래서 세계 각국의 노인복지도, 노인이라고 해서 시설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살던 집과 공간,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게 환경을 만드는 '커뮤니티 케어' 정책으로 돌아선 지가 이미 수십 년 전이에요.

한국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야 이야기되기 시작했어요. 그 이유도 노인 인권 때문이 아니라, 노인들이 과도하게 요양 병원에 가서 노인 요양 보험 재정 건전성이 우려되니까 논의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런 걸 '사회적 입원'이라고 하는데요. 어쨌든 불필요한 사회적 입원을 막기 위해서는 노인들이 원래 살던 지역사회에서 계속 살 수 있어야 하는 거죠. 탈시설은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고령화한 한국 사회에서는 전 국민의 문제죠.

아동 보육 시설도 마찬가지에요. 한국은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을 비준한 나라예요. 아동 권리 협약에 의하면, 돌봄이 필요한 아동이라도 집단 수용 시설로 보내면 안 되고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양육해야 하거든요. 한국은 고아원이라는 형태의 집단 시설 보육을 유지해 왔어요. 그러다 보니 얼마 전에도 한 유명 보육 시설에서 있었던 학대 사실이 밝혀졌죠. 그래서 아직 미진하지만 청소년 그룹홈이라든지 가정 단위로 쪼개고 있는 거예요. 이제 정책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거죠.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가족이 부양하던 시대는 끝났어요. 국가가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돌봄의 방식이 문제가 되는 거죠. 집단적으로 수용해 놓고 돌봄을 제공할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 따라 다양화하고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게 돌봄을 제공할 것이냐. 후자가 탈시설 정책이에요. 지금 한국은 이러한 갈래에 있는 거예요. 정신장애인도 점차 탈원화 정책으로 바뀌어 가고 있고요. 그런데 지금 탈시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마치 장애인만 문제가 되는 것처럼 이야기해요. 논거 자체가 잘못된 거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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