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개혁실천연대가 3월 31일 서울 서대문구 공간이제에서 '끝나지 않은 이야기, 교회 세습' 좌담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교회개혁실천연대가 3월 31일 서울 서대문구 공간이제에서 '끝나지 않은 이야기, 교회 세습' 좌담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올해 1월 26일, 명성교회 부자 세습에 제동을 거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14부는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의 '대표자 지위 부존재 확인소송'에서 "김하나 목사는 명성교회 위임목사 및 당회장으로서 지위가 없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 내용 대부분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류영모 총회장) 총회 재판국의 2019년 8월 5일 재심 판결에서 인용했다. 김하나 목사 측은 판결에 즉각 항소했다.

명성교회 세습 반대 운동에 앞장서 온 법조인·목사들은 이번 판결을 어떻게 봤을까. 정재훈 변호사(기독법률가회)는 3월 31일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공동대표 남오성·박종운·윤선주·최갑주) 20주년 창립 기념 좌담회 '끝나지 않은 이야기, 교회 세습' 첫 번째 시간에서, 이번 법원 판결문의 의미와 소송에 관여하며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이번 재판에서 명성교회는 원고 적격 여부, 정교분리 원칙, 예장통합 104회 총회 수습안, 교단 재판 전치주의, 교회 정관 우선주의 등을 거론하며 항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정 변호사는 "판결문 내용을 보면, 재판부는 원고(명성교회 세습 반대 교인) 측 주장을 거의 90% 받아들였다"며 "재판부는 종교 단체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지만, 위임목사는 교회 재산을 관리·처분할 수 있는 대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표자 지위를 다투는 것은 사법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또한 (104회 총회) 수습안에서 법적으로 이의 제기할 수 없도록 한 조항이나, 사회 법 이전에 교회 재판을 먼저 거쳐야 한다는 (총회) 헌법 시행규정이 국민의 재판권을 제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총회 재판국의 재심 판결을 주된 근거로 들었다. 정재훈 변호사는 "사회 법에서 재재심 청구를 했는데 취하했다면 재심이 확정되는 건 법리상 아주 명확한 얘기다. 재판정에서도 재판장이 '재재심 청구가 취하됐으면 재심이 확정된 게 맞지 않느냐'고 묻더라. 그건 양측 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고 했다.

기독법률가회 정재훈 변호사. 뉴스앤조이 나수진
기독법률가회 정재훈 변호사.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번 판결의 의미는 사회 법이 교단에 개입한 게 아니고, 총회 재판국 판결의 권위를 인정하고 확인해 준 것이라고 했다. 교단 내에서 이뤄진 재판 결과를 뒤집거나 다르게 해석한 것이 아니라, 총회 재판국의 재심 판결을 존중하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교회가 올바른 상식과 합리적인 해석을 통해 결론을 내리면 사회 법정도 이를 당연히 인정한다는 것을 얘기해 준다"며 "교단 내 총회 재판국은 여전히 정치적인 영향에 취약하고, 전문성에도 부족함이 있다. 교단이 이번 재판의 의미를 잘 새겨 재판 제도를 견고하게 세우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혁연대 집행위원장 김정태 목사는 '1월 26일 판결이 예장통합 교단에 남긴 과제들'을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판을 뒤엎듯이 던져진 1월 26일 판결은 예장통합 교단을 향해 공교회성을 회복하라고 주문한다. 스스로 고칠 능력이 없어 외부에서 큰 문제를 해결했으니, 이제 교단 스스로 나서서 뒷수습을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예장통합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논해야 한다고 했다. 우선 판결의 의미를 축소해 상급법원에서 판결이 뒤집어질 것이라고 낙관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세습 반대 운동을 친동성애 운동의 음모로 몰고 가려는 시도도 중단하라고 했다. 더는 명성교회를 감싸거나, 세습금지법을 폐지하려는 시도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예장통합 총회는 지난 106회 총회에서 조건부 세습이 가능하도록 헌법 시행규정을 개정하려다가 1년 더 연구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김정태 목사는 명성교회를 향해 "힘들다고 해서 교단 탈퇴라는 쉬운 선택을 하지 말라. 그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미봉책일 뿐이다. 정말 명성교회가 교단을 사랑한다면, 정말 예장통합이 명성교회를 사랑한다면, 세습을 철회하면 된다. 그것만이 살길이다"라고 말했다.

김정태 목사. 뉴스앤조이 나수진
교회개혁실천연대 김정태 목사(사진 위)와 이헌주 목사(사진 아래)는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와 예장통합 교단이 지금이라도 세습을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교회개혁실천연대 김정태 목사(사진 위)와 이헌주 목사(사진 아래)는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와 예장통합 교단이 지금이라도 세습을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개혁연대 이헌주 사무국장은 교회 세습은 목사 지위만을 물려주는 게 아니라, 부·명예·권력을 승계해 불평등을 강화하는 '세습 자본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는 "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이유는, 교회에 축적된 자원을 사회적으로 어렵고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 분배해야 하는데, 특정인이 향유하게 되기 때문이다"라며 "세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담임목사 교체에 대한 깊은 성찰과 목사 청빙에 관한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하나 목사는 2013년 장로회신학대학교 강좌에서 "세습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사무국장은 "당시 김하나 목사는 성경에는 세습을 금지하는 구절이 없어도 성경의 가치관과 예수의 삶에 비추어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때 이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돌이키기에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판결 이후 전망과 세습금지법 전반을 논의했다. 만약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될 경우 명성교회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 정재훈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법원이 대표자 지위를 '확인'해 주는 소송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집행력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위 부존재가 확인된 경우, 대부분의 단체에서는 상식적으로 대표를 새롭게 선출한다"고 말했다.

명성교회 세습 이후에도 교단을 불문하고 세습을 강행하는 교회가 늘고 있다. 한국교회가 세습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재훈 변호사는 "세습 금지 조항이 필요하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 보통 축적된 재산이 있거나 재정적으로 투명하지 않은 대형 교회들이 세습을 강행한다. 전범 국가들이 국가 범죄 청산을 위해 '전환기 정의'를 실현하듯, 세습금지법이 현실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교회가 재정 문제를 완전히 공개하고 잘못을 인정할 경우 어느 정도 처벌을 면하게 해 주는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성교회와 같은 예장통합 교단 소속이었던 여수은파교회(고만호 목사)도 불법 부자 세습을 강행했다가 비판이 일자 교단을 탈퇴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명성교회와 같은 예장통합 교단 소속이었던 여수은파교회(고만호 목사)도 불법 부자 세습을 강행했다가 비판이 일자 교단을 탈퇴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김정태 목사는 "우리가 명성교회를 향해 '불법 세습'이라고 한 것은 단기적인 용어다. 법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합법적으로 세습하기 위해 교단을 옮기는 문제가 생긴다. 세습은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결정적인 문제를 일으킨다는 차원에서 세습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 나가야지, 단순히 불법이라는 점에만 초점을 맞추면 많은 것을 놓칠 것"이라고 말했다.

개혁연대는 4월 1일 오전 11시 '끝나지 않은 이야기, 교회 세습' 두 번째 좌담회를 진행한다. 최근 부자 세습을 강행한 여수은파교회(고만호 목사)를 비롯해, 계속되는 한국교회 세습 문제를 다룬다. 이용필 기자(뉴스앤조이), 배덕만 교수(기독연구원느헤미야), 김정태 목사(개혁연대 집행위원장)가 패널로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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