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 컨퍼런스 둘째 날 주제는 '평화 교회'였다. 미국 LA에서 갈등 전환 및 화해 사역을 하고 있는 레컨실리에이시안(ReconciliAsian) 대표 허현 목사와 평화교회연구소 소장 황인근 목사(문수산성교회)가 패널로 나서, 각각 △평화 교회의 역사와 과제 △태도로서의 평화 교회를 이야기했다. 1월 21일 온라인으로 열린 컨퍼런스에는 40여 명이 참석했다. 

평화 교회는 소수지만 가장 오래된 기독교 전통이다. 초기 기독교는 평화의 공동체였다. 이후 수도원 운동(베네딕트회, 프란체스코회), 중세 평신도 갱신 운동(왈도파, 체코 형제회)이 평화 교회 전통을 따랐으며, 현대에는 메노나이트, 아미시, 후터라이트, 브루더호프, 퀘이커, 형제회 등을 평화 교회로 본다. 허현 목사는 이들 '평화 교회'는 평화와 복음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정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평화를 일구는 것은 교회의 주된 과업이다. 이것을 행할 때, 우리는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허현 목사는 '한국형 선교적 평화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제언했다. 
허현 목사는 '한국형 선교적 평화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제언했다. 

평화 교회로 시작한 기독교가 왜 그 전통을 많은 부분 상실하게 됐을까. 허 목사는 4세기 '기독교 국가 체제(Christendom)'가 된 것이 그 이유라고 했다. 그는 "크리스텐덤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평화 교회 전통에서는 이때를 기준으로 교회가 심각하게 변질됐다고 본다. 핵심은 교회가 부와 권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때부터 교회가 제국의 전쟁에 참여하게 됐다. 이들의 선교 방식은 '정복과 세례(conquer and baptize)'였다. 

태어날 때부터 유아세례라는 통과의례로 기독교인이 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nominal christian)'이 많아졌다. 이들의 삶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 하는 제자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다수가 되고 리더가 되어, 오히려 정말 예수를 따르려 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허 목사는 최근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가나안 성도' 현상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기독교 국가 체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동(counter movement)이었다고 했다. 허현 목사는 "아나뱁티스트가 단순히 유아세례만 반대한 것이 아니다. 이들을 사로잡은 건 역사의식과 권력에 대한 이해였다. 당시 기독교가 성서를 통해 알게 된 초기 예수 운동과 상당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들은 복음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회에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 그것을 통해서 오는 평화라고 믿었다. 그리고 교회는 그러한 평화의 복음을 살아 내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허 목사는 평화 교회 전통을 선교와 연관 지어서 이야기했다. "기독교 국가 체제 안에서 모두가 기독교인으로 간주될 때, 선교는 유럽 바깥의 이교도들에게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에게는 기독교 국가 체제에 있는 모든 사람이 선교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운동과 연결했다. "레슬리 뉴비긴은 인도에서 35년간 선교하고 영국으로 돌아오니 오히려 유럽이 선교지가 돼 있었다고 했다. 그의 글을 미국에 있는 선교학자들이 보고 시작한 교회 갱신 운동이 미셔널 처치"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미셔널 처치를 이야기할 때 크리스텐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이해라고 했다. 핵심은 돈과 권력이 중심이 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현 목사는 '선교적 평화 교회'를 제언했다. 복음과 교회에 대한 평화 교회 전통의 이해를 따르고, 바울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군사·가족 등과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지를 선교의 원형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오늘날 한국의 평화 교회가 주목해야 할 영역으로는 △생태 △화해·통일 △사회적 약자들 △다문화 사회를 꼽았다. 특히 "지금은 통일보다는 민족이 먼저 화해할 때라고 생각한다. 통일 담론 이전에 교회가 평화와 화해의 관점에서 복음을 이해해야 한다. 화해는 성서를 가로지르는 핵심 주제다"라고 말했다.

황인근 목사는 평화운동을 한다면서도 태도를 소홀히 여기는 문제를 지적했다. 
황인근 목사는 평화운동을 한다면서도 태도를 소홀히 여기는 문제를 지적했다. 

'태도로서의 평화 교회'를 주제로 발제를 준비한 황인근 목사는 본격적인 발제 전 자기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대학교 생활을 마치고 난 후 '테러리스트'가 돼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과격한 사회운동에 경도돼 있었다. 졸업 후 인권·통일·평화와 관련한 기독교 운동을 하면서 늘 바쁘게 살았는데, 정작 그의 생활에는 평화가 없었다. "내가 평화를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는데, 평화로 싸우지는 않았던 것이다. 평화 없이 평화를 향해 나아가려는 내 모습을 보게 됐고, 그때부터 평화가 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 고민하고 기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답은 자기 안에 있었다. 그는 "본디 사람은 하나님의 본성이 담긴 거룩한 그릇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본질을 간과하기 시작하면, 평화를 추구한다고 해도 그것이 또 다른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고, 아니면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은 되지만 진짜 힘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잘못은, 로빈 마이어스 목사가 쓴 <언더그라운드 교회>(한국기독교연구소)의 한 구절처럼 '영적인 사람들'을 '종교적인 사람들'이 되게 한 것이라고 했다. 황 목사는 "평화를 말하기에 앞서 이 출발선에 서지 않으면, 자칫 평화는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 질서나 정의로 귀결되기 쉽다"고 짚었다.

그는 평화가 이뤄지는 가장 가깝고 구체적인 자리는 자기 삶, 생활 현장이라며, 평화는 곧 '태도'로 드러난다고 했다. 평화의 태도는 자신이 누구이고 신앙의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점검이자 확신이라고 했다. 황 목사는 "초대교회는 속된 말로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였다.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세상을 바꾼 건 지식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삶이 곧 증거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란 평화의 태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평화의 태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믿지도 않고, 그것을 위해 수련하지도 않는 기독교인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평화의 태도를 수련하는 일은 '호명呼名'으로 이뤄진다. 다른 사람을 누구로 부르는지에 대한 문제다. 황 목사는 "돌아보면 정말 부끄럽지만, 내가 테러리스트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상대방을 적, 적폐, 원수로 불렀다. 저 사람의 서사를 모른 채 단순하게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내 안의 폭력성이 정의라고 하는 것과 불이 붙어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 말했다. 그는 "필립 걸리는 '원수를 형제나 자매로 인식하면 더 이상 그는 원수가 아니다'라고 했다. 아브라함 헤셸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폭력은 신성모독이고 우상숭배다'라고 했다. 상대를 누구로 대하고 무엇으로 부르는가는 신앙·평화의 여정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righteousness) 때문이라고 했다. 황인근 목사는 "하나님은 '버림받은 자'라고 조롱당하는 이스라엘을 '헵시바(나의 기쁨)'와 '쁄라(신부)'라고 선언하셨다(사 62:4). 정의가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이라면, 공의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회복시키는 것, 사실상 불의한 자를 사랑하는 것에 가깝다. 정의는 우리 죄를 드러내고 온전한 길로 들어설 것을 촉구하고, 공의는 계속되는 실수와 연약함 때문에 더 이상 고개 들 힘조차 없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주님을 들려준다. 우리 안에서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평화의 힘은 거기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