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1년 6개월 전,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일명 '턱시도'(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의 은어. 검은색 털과 하얀색 털이 섞인 모습이 턱시도를 입은 것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별칭 - 기자 주) 고양이를 입양했다. 생후 2개월 무렵 길에서 구조된 아기 고양이는 어느새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갔다. 고양이와 함께 '집사'도 성장했다. 이전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고, 인간이 아닌 동물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민숙희 사제(대한성공회 광명교회)가 '반려동물 축복식'을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반려동물 축복식은 반려동물의 건강과 평온한 삶을 위해 기도하는 행사다. 고양이 세 마리,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사는 민 사제가 12년째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 '보리'를 축복해 주고 싶었다. 민 사제에게 동물 축복식에 직접 참여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자, 그는 반색하면서도 "고양이는 교회에 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며 동물을 직접 데려오는 대신, 사진이나 애착을 갖는 장난감 등을 가져오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동물 축복식이 열린 11월 28일 일요일, '보리'의 사진을 챙기고, 털이 잔뜩 박힌 코트를 입은 채 대한성공회 광명교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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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숙희 사제가 11월 28일 대한성공회 광명교회에서 반려동물 축복식을 열었다. 집사인 기자도 고양이 사진을 들고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동물의 시선에서

민숙희 사제가 예배당 입구에서 참가자들을 맞이했다. 그의 품에는 주보 대신 흰색 패드가 한 아름 안겨 있었다. 반려동물이 배변할 때를 대비한 패드라고 했다. 사람들이 반려견을 데리고 하나둘 들어서자, 그는 신자를 환영하는 것처럼 반려견을 반갑게 대했다. 반려견의 이름과 건강을 물으며 참석자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예배당 안에 들어서니 좌석이 둥그렇게 놓여 있었다. 앞서 도착한 '반려 가족'들이 자리를 잡고 둘러앉아 있었는데,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꼬리를 흔들며 예배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개, 낯선 환경에 불안해하며 짖는 개, 반려인 근처에 자리를 잡고 바닥에 누운 개까지. 총 8마리의 크고 작은 개들과 18명의 사람이 모였다. 축복식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파주·강화 등지에서 왔다는 참석자도 있었다.

반려견들은 참석자 품에 안기거나 하네스(목줄)에 연결된 채로 예배에 참여했다. 예배를 여는 찬양에는 반려인의 목소리에 개들이 짖는 소리가 더해졌다. 민 사제는 '노아의방주' 구절을 인용하면서 동물과 인간이 동등하다고 설교했다. 그는 "홍수를 피하기 위한 노아의방주에는 사람만 있었던 게 아니라 모든 동물이 함께 탔고, 하나님은 사람들이 먹을 양식뿐만 아니라 동물들이 먹을 것을 넉넉하게 저장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민숙희 사제는 이 구절을 해석하며, 구원의 관점에서 동물과 사람은 공평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이 동물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이 더욱 모범적으로 동물을 대하고 축복하면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함께 이뤄 나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도 말했다.

분명 익숙한 구절인데, 동물의 시선에서 보니 성서도 다르게 읽혔다. 일부 교회는 창조 이야기를 획일적으로 해석하며 '동물은 지배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가족을 잃고 애도하는 반려인들에게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다"며 신앙의 이름으로 폭력을 가하는 일도 여전하다. 반려묘와 함께 살아 보니, 이러한 말들이 '동물은 인간과 다르게 대우해도 된다'는 종차별주의(speciesism)와 잇닿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과 동물이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학대·차별로 신음하는 동물들의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 울림 없는 생명·사랑 교리를 외치는 것보다 낫다.

참석자들은 반려견과 함께 창조·환경을 주제로 한 성가를 부르고, 기도문을 읽었다. 예배 도중 한 반려견이 소변을 보기도 했는데, 반려인은 능숙하게 뒤처리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석자들은 반려견과 함께 창조·환경을 주제로 한 성가를 부르고, 기도문을 읽었다. 예배 도중 한 반려견이 소변을 보기도 했는데, 반려인은 능숙하게 뒤처리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동물이 참여할 수 있는 예배?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예배!

설교 후에는 교회와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기도문에는 세상을 떠난 반려동물뿐 아니라 인간에게 학대받는 동물들, 함부로 살처분당한 동물들을 위한 기도도 포함돼 있었다. 참석자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동물들이 안식을 누리고, 남은 이들도 위로를 얻도록 기도했다. 각자의 곁에 있는 반려동물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했다.

"생명의 주 하느님. 특별하신 사랑으로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가족을 보내 주셨나이다. 이 동물들이 반려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건강하게 살게 하시고, 병중에 들게 되더라도 하느님의 보호하심으로 병을 이겨 내고 회복하게 하소서."

축복식 시간. 민숙희 사제는 "성공회에서는 자동차·가옥 축복식도 한다. 우리는 동물도 축복한다"고 설명했다. 민 사제는 참석자들의 품에 안긴 반려견들을 어루만지며 이마에 성수를 발라 줬다. 반려견 축복을 마친 후에는 참석자들을 향한 축복도 이어졌다. 축복을 받는 순간 '보리'와 함께한 시간이 떠올라 감정이 복받쳤다. 주변을 둘러보니 축복식을 받은 사람들의 얼굴에도 편안함과 안도감이 묻어 있었다.

민숙희 사제는 반려견과 반려인의 머리에 성수를 바르며 축복했다. 축복식에 참여한 이들의 얼굴에는 감격이 묻어났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민숙희 사제는 반려견과 반려인의 머리에 성수를 바르며 축복했다. 축복식에 참여한 이들의 얼굴에는 감격이 묻어났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토록 따뜻하고 뭉클한 예배가 있었을까. 처음에는 '제대로 진행될 수나 있을까' 염려도 됐지만, 예배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순조롭게 진행됐다. 반려 가족들이 모였기에, 혹여나 짖는 소리가 예배를 방해할까 걱정하거나, 반려동물을 향한 사회적 편견에 지레 움츠러들 필요도 없었다. 축복식에 참여한 모두가 다종다양한 서로의 존재를 경험하며 예배 안에서 하나가 됐다.

참석자들에게 소감을 묻자, 너도나도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참석자는 반려동물이 없을 때부터 축복식에 참여하다가 오랜 시간 준비를 거쳐 입양한 개와 처음으로 축복식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개와 함께 살면서 모든 게 새롭게 보이고 새 삶이 시작된 것 같다. 반려동물을 위한 축복식이었지만, 내가 축복을 받은 것 같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예배를 마친 후 민숙희 사제는 "이번 예배는 역대급"이라며 웃어 보였다. 무엇보다 "동물을 위한 예배가 곧 모든 소수자를 위한 예배"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민 사제는 동물이 참여할 수 있는 예배는 결국 기득권 중심의 차별적인 교회 문화를 허물고 소수자를 환대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교회 문턱은 동물들에게 여전히 높다 못해 아직 열리지도 않은 듯하다. 하루아침에 모든 동물에게 교회의 문을 열자는 말은 아니다.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는 인식 속에서 "우리는 동물'도' 축복한다"고 외칠 수 있는 교회들이 더 늘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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