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원 씨는 주변 기독교인 친구들이 하나둘 교회를 떠나는 것에 궁금증을 느꼈다. 가나안 청년들을 심층 연구해 석사 논문을 썼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서도원 씨는 주변 기독교인 친구들이 하나둘 교회를 떠나는 것에 궁금증을 느꼈다. 가나안 청년들을 심층 연구해 석사 논문을 썼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뉴스앤조이-이용필 편집국장] 서도원 씨(33)는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할아버지·아버지가 목사였다. 기독교 대안 학교를 나와 기독교 대학을 졸업했다. 환경이 환경인 만큼 주위에 기독교인 친구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안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아서, 교회에 실망해서 안 나온다는 이야기만 돌고 돌았다.

서 씨는 교회 안에서 '사회적 관계'와 '문화 자본'을 쌓은 청년들이 갑자기 교회를 등진 이유가 궁금했다. 교회를 떠난다는 건 그동안 쌓아 온 세계와의 교류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교회를 등진 가나안 청년 12명을 심층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올해 초 석사 논문 '청년 가나안 성도의 시민 윤리적 종교 정체성과 종교 문화적 실천 - 이데올로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를 썼다.

교계에서 가나안 교인 연구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정재영·양희송 등 학자들을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다. 서 씨는 이미 여러 학자가 가나안 교인 현상을 다뤘다면서, 자신의 연구는 이에 대한 후속 연구로 봐 달라고 했다. 다만 앞선 연구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다시는 교회에 나갈 생각이 '없는' 20·30대 청년을 상대로 연구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연구 대상자들이 여전히 기독교 정체성을 갖고 삶 속에서 시민 윤리적 실천, 다시 말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며 지낸다는 것이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가나안 교인은 '교회의 이중적 행태', '목회자 전횡', '사회적 무관심' 등 여러 이유로 교회를 떠났다. 서도원 씨는 자신이 만난 가나안 청년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교회를 떠났다고 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어떤 이슈가 있을 때 교회에서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이 없고, 있다고 해도 매우 제한적인 형태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 교회를 떠났다는 것이다. 기독교적·윤리적 모습을 갖추지 못한 교회 모습에 실망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현재 서도원 씨는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 문화 연구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한때 목회자를 꿈꿨지만, 문화 현상과 종교 쪽에 관심이 쏠려, 약간(?)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서 씨를 11월 3일 서울 중구 필동 희년평화빌딩에서 만났다. 서 씨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가나안 청년, 가나안 청년을 주목하다
다시 교회에 돌아갈 일 없는 청년 연구

- 가나안 청년을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 대안 학교, 기독교 대학을 다녔다. 그렇게 쭉 기독교 환경에서 컸다. 당연히 친구들 중 기독교인이 많았는데 이 중 많은 수가 교회를 떠났다. 이 친구들이 교회를 떠난 게 단순히 교회에 더는 기대할 게 없어서 혹은 교회에서 어떤 상처받은 일들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다양하고 다채로운 자기만의 이야기(이유)가 있었고, 그 지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나안 청년을 연구하고 논문까지 쓰게 됐다.

- 공교롭게도 연구자인 본인도 '가나안 청년'으로 지내고 있는데.

그렇다(웃음). 간략하게 말씀 드리면 교회에서 상처를 받아 그런 건 아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사랑인지, 무엇이 예수가 말한 가치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이렇게 (가나안 청년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여기(나)는 맞고 거기(교회)는 아니다'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고민하며 답을 찾아가고 있다.

- 가나안 교인을 주제로 한 연구는 교계에서 2010년부터 본격화했다. 기존 학자들의 연구와 본인의 연구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보나.

내가 한 연구는 정재영 교수를 비롯해 그동안 가나안 교인을 연구해 온 많은 선생님의 유산 위에서 태어났다고 보는 게 맞다. 일종의 후속 연구로 보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기존 연구는 청년 세대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시 교회로 돌아올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연구 영역이) 조금은 국한돼 있지 않았나 싶다.

나는 다시는 교회에 나갈 생각이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규정하고 삶 속에서 시민 윤리적 실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들을 연구해 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 그렇게 12명을 섭외해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섭외 과정은 어땠나.

12명이라고 해서 딱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웃음). 교회에 돌아올 마음이 없는 사람을 섭외하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웠다. 소셜미디어·인터넷 등을 최대한 활용해 겨우 섭외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연구 결과를 보고 '가나안 교인은 다 이렇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모집할 때 '지금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기 스스로 기독교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아무래도 기독교인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 연구에 참여했기 때문에 정체성이 확실한 부분이 있고, 기독교적으로 언어화한 분들도 많았다.

"이들은 기존의 제도 교회가 자신들이 궁금해하는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잘못된 윤리관을 심어 준다는 생각이 들어 교회를 떠났다고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B의 경우에는 교회를 다니면서 어떤 행위는 왜 해야 하며 어떤 행위는 왜 하면 안 되는지 교회와 세상의 기준이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 윤리적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는데, 군대에서 이러한 고민이 증폭되었고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D는 교회의 설교에서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납득되지 않는 점들 때문에 교회를 떠났다고 말했으며 F는 지금도 윤리적 고민을 하고 있고 윤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다시 교회를 나갈 의향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청년 가나안 성도 개인이 윤리적 문제로 인식했던 지점이나 윤리적 고민을 안겨 준 계기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기존 개신교 교회에서 윤리적 갈망을 느꼈던 것이다." (논문 53~54쪽)

서도원 씨는 가나안 청년 중에는 여전히 기독교인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다시는 교회에 돌아올 일이 없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보다 더 윤리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앤조이 이용필
서도원 씨는 가나안 청년 중에는 여전히 기독교인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다시는 교회에 돌아올 일이 없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보다 더 윤리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앤조이 이용필

- 논문을 보니, 가나안 청년들은 누구보다 윤리적인 문제에 고민이 많았다. 교회에 안 다니면 얽매이지 않고 좀 편하게(?) 살아도 될 텐데, 윤리적인 실천에 힘을 쓰고 기독교 정체성을 꾸준히 유지하려고 했다는 점이 특이했다.

나 역시 이들이 왜 이렇게까지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연구에 임한 이들은 기독교인 정체성이 강했다. 단순히 '내 종교는 이거야'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삶의 맥락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했다. 이들이 교회를 떠날 때 작동했던 것 역시 정체성과 관련 있었다. '나는 기독교인인데 지금 교회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윤리와 다르다'고 판단해 교회를 떠난 것이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삶에서 윤리가 중요한 화두로 기능했다.

"세상일은 '세상 것'으로 치부하고 교회만 맞다 생각
타자를 향한 차별·배제도 인식론적 오류에서 비롯"

- 가나안 청년들은 기성 교회의 특징으로 '기득권', '약간의 맹신과 폭력과 타자화', '배타적인 집단', '한국교회교', '사회에 해가 될 수 있는 행위들을 정당화해 편 가르기' 등을 들었다. 모두 근거 있는 지적인데, 정작 오늘날 교회는 이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회 안에 문제가 있는 걸 부인하는 게 아니라,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러니까 교회에 인식론적 오류가 존재하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 보니 세상일은 '세상 것'으로 치부하고, '우리가 맞다'고만 생각한다. 나아가 '교회-하나님-목사'가 같은 개념이 되면서 진리와 비진리 혹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이 굉장히 강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것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고 '우리가 옳다' 혹은 '내가 옳다'고만 인식한다. 교회 내 권력·위계·권위에서 비롯하는 타자를 향한 차별과 배제도 이러한 인식론적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 가나안 청년들은 기성 교회의 문제점을 크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 '정치적 보수주의'로 봤다. 이러한 문제는 오랫동안 있어 왔고, 여전히 교회 안에서 강하게 작동하기도 한다.

결국 이런 현상들이 사라지지 않으면 탈교회화 혹은 사회 종교화가 가속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탈교회화·탈종교화는 지금도 엄청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교회가 살려면 혹은 교회를 살리려면 '교회가 이야기하는 진리와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으로 돌아가서, 결국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교회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가치 평가하거나 그들을 대상으로 전략을 세우기에 앞서서 말이다.

- 특히 요즘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동성애, 페미니즘에 관한 이슈가 교회에서도 일고 있는데.

어떤 교단에서는 동성애가 이단이라고도 한다. 동성애든 페미니즘이든 다른 어떤 사안이든 함께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한데, 한국교회에서는 그걸 찾아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답정너'인데 이런 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특정 사안이나 성경 해석 등이 과연 모든 상황과 시대를 다 아우를 수 있을 정도의 진리에 해당하는지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 가나안 청년들은 기성 교회를 "기독교가 아니다", "유사 종교다"라고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교회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도 갖고 있었다.

다수 참여자가 "죽을 때까지 교회라는 문화적 배경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더라. 자기 삶이나 사고방식에 있어서 교회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단순히 교회를 타자로 내치거나, 교회는 잘못됐다고 인식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계속 고민하고 있고, '함께 이것들을 바꿔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기 싫다'라는 양가적인 마음도 있고….

"가나안 성도들은 윤리적 지향을 중심으로 기독교 개념을 전유한다. 그들의 기독교 개념에서 기준으로 작동하는 윤리성은 기존 개신교와의 비교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가나안 성도들은 기존 개신교가 지금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라는 질문에 대해 각기 다른 대답을 하였지만, 방점은 윤리적 실천에 찍혀 있었다. 또한 가나안 성도들은 기존 기독교에도 자신이 정의하는 기독교인이 존재한다고 답변하였다. 이는 이들의 기독교 정의에서 초월적 신에 대한 믿음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년 가나안 성도들은 오직 현세적 윤리성을 기준으로 바람직한 종교의 기능을 규정하고자 하였다." (논문 75쪽)

'공동체 필요성' 느끼는 가나안 청년들 
"교회는 외부 탓 말고 자기 성찰부터 해야"
서 씨가 연구한 가나안 청년들은 공동체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교회 안에는 자유롭게 토론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서 씨가 연구한 가나안 청년들은 공동체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교회 안에는 자유롭게 토론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궁극적으로 가나안 청년들이 지향하는 게 있다면?

가나안 청년들의 경우 (어떤 사안에 대해) 교회에 물어볼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설령 그런 자리가 있어도 굉장히 제한적인 형태로 있었다면서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장' 내지 '공동체'가 있기를 바랐다.

연구에 참여한 12명은 온도차가 있었지만, 최소한 확실한 것 하나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답했다. 단순히 교회나 대안 공동체 같은 게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윤리를 실천하기 위한 혹은 그 윤리를 향해서 나아가기 위한 공동체를 필요로 했다.

"공동체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필요하다고 답변하였다. 사회가 혼자 존재할 수 없는 곳이고, 함께 공유하며 살아갈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그곳이 꼭 교회일 필요가 없다거나 교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점에서는 대답이 갈렸다."(논문 94쪽)

- 윤리라는 게 쉽게 말해서 교회 용어로 '이웃 사랑' 아닌가.

맞다. 다만 연구 참여자들이 말하는 이웃 사랑은 교회가 말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청년들은 내 생각과 판단, 감정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위할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 보는데, 지금의 교회는 시혜적 행위를 이웃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나안 청년들이 지향하는 사랑은 단순히 복지 혹은 돕는다는 맥락이 아니라 내가 틀릴 수 있고, 나도 부족할 수 있지만 같이 고민하고 걸어가는 행위 혹은 '벗 됨'을 뜻한다.

"청년 가나안 성도들은 지금까지 형성되어 온 기독교 윤리가 '진리 앞에서 교만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기독교 외부와 내부를 경계 짓고 시혜적으로 외부를 대하는 윤리적 지향에 머물렀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자신의 윤리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처럼 모든 사람을 목표로 한다고 차별화한다. 이처럼 시민이라는 단어는 기독교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상정하지 않는 개념으로, 가나안 성도의 윤리적 지향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논문 78~79쪽)

- 교회에서는 "청년들이 떠나고 있다", "다음 세대가 끊기고 있다"고 걱정하면서도, 정작 근본적인 이유는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교회 안에 있다. 교회가 외부 탓하지 말고 자기 성찰 먼저 해야 한다. 그게 없다 보니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 상태에서 윤리적 문제를 고민하는 현상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 가나안 청년을 연구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가나안 교인들을 '부적응자' 내지 결핍 있는 사람들로 바라본 지점이 있다. 연구를 해 보니, 가나안 교인들은 각자 삶에서 윤리적인 지향점을 뚜렷하게 설정하고 있었다. 동시에 삶 속에서 여러 실천을 해 나가고 있었다. 현재 가나안 청년들은 1980~1990년대 소위 대부흥 운동을 경험한 세대다. 이들이 교회에서 사회적 관계, 문화 자본의 영향을 받았는데도 스스로 결단해 교회를 떠났다는 건, 단지 '부적응'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내가 예수의 사랑이라는 것을 인식했다'면 혹은 '내가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은 존재'라면 '최소한 어제보다 오늘 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하루하루 쌓이는 것 자체가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가나안 교인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기독교인으로서 무엇을 실천할 것인지' 항상 고민하고 있는 존재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앞서 말했듯이 교회가 '나만 옳다', '우리만 옳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교회가 좀 더 겸손했으면 한다. 그리고 가나안 청년들의 말대로, 서로 질문하고 고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장을 교회 안에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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