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고 불렀지만, 왜 여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지를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

[뉴스앤조이-박요셉 간사] 브라질 로마가톨릭교회 대주교이자 해방신학자였던 돔 헬더 카마라(Dom Helder Camara, 1909~1999)가 남긴 말이다. 올해 6월 출간된 <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필요한책) 저자 탁장한 씨(31)는 카마라 대주교가 던진 물음처럼 한국 사회가 빈곤을 보는 시각을 비튼다.

한국 사회는 빈곤 문제를 한 인생이 받은 초라한 성적표쯤으로 치부할 때가 많다. '가난'은 개인이 재능을 갈고닦지 않거나 '노오력'이 부족해 '부'를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물로 평가받는다. 이런 시각 앞에 빈민이나 노숙인들은 사회적 낙제생이 된다.

탁장한 씨는 빈곤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무분별한 평가를 걷어 낸다.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는 도시 빈민을 양산하고 정체하게 만드는 외적 요인을 추적한다. 강남 고급 아파트보다 높은 쪽방촌 평균 평당 임대료, 부정적인 혐의를 씌우는 미디어, 공급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복지 서비스 등 도시 빈민들을 둘러싼 '빈곤 거버넌스'를 하나씩 분해한다.

연일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가볍게 뛰어넘던 8월 2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 낡은 주택에서 탁장한 씨를 만났다. 이곳은 후암동과 붙어 있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모이는 한지 공예품 공방이다. 탁 씨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이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제공했다.

탁 씨는 서울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를 돕겠다는 선하고 순수한 신앙이 강원도 춘천 출신인 그를 서울 동자동으로 안내했다. 그는 서울역 인근 고층 빌딩의 그림자가 까맣게 드리운 이곳에서 동자동 주민이자 도시 빈민 연구가로, 때로는 쪽방촌 사람들의 친구로 2년 넘게 살고 있다.

도시 빈민을 연구하기 위해 거주하기 시작한 동자동. 탁장한 씨(31)는 쪽방촌 주민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도시 빈민을 연구하기 위해 거주하기 시작한 동자동. 탁장한 씨(31)는 쪽방촌 주민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2년 전 빈민 연구 위해 동자동 거주
매해 똑같은 가난과 질병을
꿋꿋이 버텨 내는 주민들

- 쪽방촌에는 언제부터 사셨나요?

"전역 후 스물 아홉부터 들어왔으니, 한 2년 정도 됐네요. 정확히 말하면 제가 사는 집이 쪽방은 아니에요. 정식으로 등록된 곳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거기도 쪽방과 비슷한 규모라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 이번 여름은 유독 폭염이 심했잖아요. 힘드셨을 거 같아요.

"말도 못할 정도예요. 요즘 같은 때는 밤에 너무 더워서 '악' 소리가 날 정도예요. 건물주들이 전기세 때문에 에어컨 설치를 못하게 하거든요…. 화장실도 너무 좁아서 샤워하기도 힘들어요. 제가 쓰는 화장실은 두 사람이 이용해서 그나마 나은데, 진짜 쪽방은 더 심각하죠. 건물에 한 개 아니면 층마다 한 개 있으니까요."

- 왜 이곳에 사시는 거예요?

"일단 돈이 없었고요. (웃음) 도시 빈민을 주제로 연구하기 위해 이곳을 여러 번 방문했어요. 그런데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이곳 주민분들과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이분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거든요. 저는 이곳을 오가며 무언가를 자꾸 묻고 캐내는데, 이분들은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하는 입장이니 관계가 점점 수직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이분들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하고 싶었어요. 이곳에서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를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제가 이 안에서 '경험해야만' 알 수 있겠더라고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던 모범생. 대학 도서관과 자취방에서 책과 논문을 읽기 좋아하던 대학원생은 그렇게 동자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원래 자신이 이렇게 모험심과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었는지 탁 씨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분명한 건, 군대에서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가 그의 숨겨진 열망을 부추겼다는 사실이다.

그는 2020년 격월지 <신앙과 삶>(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1・2월호에 이렇게 썼다.

"어느 날, '사람이 산다'(2015)라는 르포 다큐멘터리를 우연한 기회에 접하면서 이 낯선 공간에 대한 생소한 열망이 촉발되고 말았다. 현대화된 서울의 한복판에서 인간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1평짜리 쪽방이 가득한 동네가 곳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사람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살아 내고 있다는 내용이 나로 하여금 일종의 외경심을 갖게 한 것이다. 이후 공부의 방향이 빈민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해방신학과 빈민들의 조악한 거주 공간들로 뻗어 나가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끈질기게 삶을 이어 가는 그 공간에 너무 가 보고 싶었다." ('쪽방촌으로의 여정, 그 출발점에 서서')

탁장한 씨는 2년 전 무턱 대고 서울 동자동 쪽방촌을 찾았다. 낮에는 서울역 인근 새꿈공원에 나와 있는 주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말을 건넬 용기가 없어 벤치에 앉아만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많았다. 한두 번 말을 걸어 보기도 했지만, 싸늘한 대답과 함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자신을 밀어내는 느낌을 받았다고 탁 씨는 말했다.

- 주민들께서 처음 보는 사람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건 당연한 반응인데 제가 서툴렀죠. 그때 저는 무척 당황했어요. 몇 차례 거절을 당하자, '이렇게 환대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슨 연구를 할 수 있겠나' 하는 좌절감이 들기도 했죠.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어요.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지금 출석하는 교회를 알게 됐어요. 20년 가까이 쪽방촌 안에서 사역하고 있는 교회예요. 여기서 주민들과 관계를 쌓을 수 있었어요."

- 지난 2년간 동자동 주민으로 지내 보니 어떠신가요? 주민들과 더 가까워지고 그들을 이해하게 됐나요.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아요. 몇몇 분은 수시로 전화해서 힘든 이야기, 푸념을 들려주거든요. 가끔 아이스크림이나 먹을거리를 갖다주는 분도 있고요. 저는 이분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도록 하기 위해 함께하게 됐지만 거꾸로 더 많은 것을 받는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 너무 뻔하죠? 근데 정말 그래요.

저는 여전히 스스로를 '빈곤 코스프레'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막연했던 쪽방촌 일상을 조금이나마 경험해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분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는 거예요."

-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주민들을 보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Sisyphos)가 떠올라요. 예전에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민음사)를 인상 깊게 읽었거든요. 이분들의 삶이 시시포스의 모습과 오버랩되더라고요. 시시포스는 굴러 내려오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을 쉴 새 없이 반복해서 수행하죠. 무한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수행 그 자체로 자기에게 주어진 비관적인 운명에 맞서고 있어요.

주민들 앞에는 매해 똑같은 가난, 폭염, 추위, 질병, 강제 퇴거 위기 같은 온갖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어요. 그럼에도 오늘이나 내일이나 더 나아질 게 없어 보이는 일상을 꿋꿋이 살아 내요. 그 모습을 가까이 지켜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경외심이 일어나요.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나이 들고 술에 쩔고 냄새 나는, 병들어 죽어 가는 빈민으로 보여도, 그 속에 있는 살고자 하는 의지와 신념은 얼마나 단단한지.

어떻게 보면 이곳은 그리스도의 실존을 경험하기 힘든 곳, 하나님이 부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공간이에요. 하지만 열악하고 더럽고 부족한 상황에서도 내면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이분들의 모습이 제게는 고통받고 있는 예수의 모습으로 비치는 거 같아요."

탁장한 씨는 지금 자신이 빈곤을 미화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빈곤은 '절대 악'이 아니다. 부귀를 '절대 선'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빈곤을 '빈곤'으로 바라보기엔 이 개념은 사회적 편견으로 오염돼 있다. 탁 씨가 강조하고 싶은 건 물리적으로 열악한 환경과 부정적인 사회 통념으로도 훼손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복잡하게 얽힌 쪽방촌 문제
"주민들은 가시화된 플레이어
…고통을 자아내는 진범들 추적"

- 쪽방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요.

"가난한 사람들이 살죠. 아무래도 노인·장애인분들이 많고요. 무슨 사연인지 저처럼 젊은 사람도 있어요.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분도 계시고요. 1~1.5평짜리 쪽방에서 지내는 부부도 봤습니다."

- 몇 분이나 계신 건가요.

"제가 사는 동자동은 한국에서 가장 큰 쪽방촌이에요. '쪽방'으로 정식 등록된 70개 건물에 1100여 명이 살아요. 동자동 주민자치 조직 반장님께서는 쪽방과 유사하지만 등록되지 않은 곳을 모두 더하면 실제 거주하는 분들은 2000명 가까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 이 작은 동네에 정말 많이 살고 계시네요.

"쪽방촌은 말 그대로 가난한 동네예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곳은 특이해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동네인데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쪽방촌 주민들은 가시화한 플레이어들일 뿐이고, 실제로 이곳을 움직이는 세력은 따로 있어요."

- 따로 움직이는 세력이요?

"쪽방촌 주민들은 세입자일 뿐이에요. 여기 살고 있지 않지만 '동자동 주민'이라고 이야기하는 건물주들이 따로 존재하죠. 이들의 입김이 더 세요. 언제든지 쪽방촌 주민들을 쫓아낼 수 있고, 정부가 쪽방촌 관련 정책을 결정할 때 대화에 참여하는 그룹도 이들이에요.

이러한 모습이 제게는 굉장히 특이한 지점으로 다가왔어요. 여기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나 중산층이 섞여 살지 않거든요. 거의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로만 이뤄진, 안팎의 경계가 분명한 공간이에요. 완전히 구분돼 있는데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라고만 말할 수도 없는 거죠. 실제 쪽방촌 주민들은 힘이 없으니까."

- 시민단체들이 건물주들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몇 번 봤습니다. 쪽방을 수익 모델로 활용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주민들은 1~1.5평짜리 방에 월 20~30만 원씩 내고 살아요. 단순하게 계산하면 5평에 100만 원, 10평에 200만 원이니 터무니없이 비싸죠. 그렇다고 건물주들이 건물주로서 책임을 다하느냐, 그렇지도 않아요.

건물주들을 비판하면 간혹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갈 곳 없는 사람들 받아 줬는데 왜 우리에게 뭐라 하느냐', '돈도 꼬박꼬박 안 내고 우리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 대체 누군데'라고요.

그런데요. 월세 꼬박꼬박 잘 내거든요? 안 내면 바로 쫓아내니까요. 건물주들은 힘이 있기 때문에 전기·수도를 끊든다든지 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요. 돈 없으면 나가야 된다는 사실은 쪽방촌 주민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나가고 들어오기를 수없이 반복했으니까.

작년 겨울에는 한 건물주가 쪽방 복도에 '전기장판 틀지 마세요' 라는 안내문을 붙였어요. 화재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요. 작년 겨울 진짜 추웠던 거 기억하시죠? 보일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세입자들은 그러면 전기장판 없이 어떻게 살라는 거죠?

건물주 본인들이 한 층에 방을 몇십 개씩 만들어 놓고 돈은 다달이 받아가면서, 어떻게 화재 예방의 책임을 세입자에게 돌릴 수 있나요. 애당초 화재 위험의 원인은 방을 이상하게 쪼갠 '건물주'잖아요.

여름에는 여름대로 고생이에요. 창문이 없는 방은 너무 더우니까 문을 열어 놓고 자야 하는데, 밤에 모기·벌레·쥐들이 방에 들어와요. 수급자들이 겨우 돈을 모아 에어컨을 놓으려고 하면 건물주에게 바로 연락이 와요. 전기세 나오니까 설치하지 말라고요. 쪽방 월세는 모든 공과금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건물주 이름으로 고지서가 날아오니까 그래요.

주민들은 어떻게든 이 안에서 삶을 꾸리고 일궈 나가려고 해요. 그런데 건물주들은 이런 식으로 매번 제재를 가해요.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이분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게 돼요. 이런 삶을 하루하루 버텨 낸다는 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는 쪽방 관리에 소홀하더라도 받아야 할 월세는 예외 없이 수령하는 건물주들의 존재 및 방치된 건물에 거주하면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피해를 고스란히 입어야 하는 세입자들의 삶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건물주가 이제부터 건물을 관리하겠다면서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등으로 세입자들을 내보내는 순간, 추방되는 당사자들로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동전의 양면이기도 했다. 그렇게 국민의 혈세로 수급자 빈민들에게 제공되는 주거 급여는 모두 부유한 건물주에게 현금으로 유입되면서도 수익은 그림자처럼 잡히지 않는 소위 '빈곤 비즈니스'에 사용되며 탈세의 근원이 되고 말았다." [<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 31쪽]

탁 씨는 <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에서  도시 빈민들의 삶을 정체하게 만드는 외부 요인을 분석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탁 씨는 <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에서 도시 빈민들의 삶을 정체하게 만드는 외부 요인을 분석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책을 보면서 쪽방촌을 둘러싼 현안들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마치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막연한 마음으로 이곳에 들어왔지만 계속 지내면서 여기가 한국 사회 뇌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복잡하죠. 많은 문제가 서로 얽히고 연결돼 있으니까요. 건물주나 쪽방촌 주민, 지자체 복지 서비스 어느 한쪽만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돼요.

사람들은 쪽방촌 주민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경향이 있어요. 오랜 기간 수많은 복지와 지원이 쪽방촌으로 들어왔는데 왜 이들은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 원인을 주민들의 알코올 중독, 도박, 성적 문란, 헤픈 씀씀이, 저축 의식 결여 등에서 찾아요. 저는 그런 접근에 굉장히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과거에는 주민들의 '레질리언스(Resilience・회복 탄력성)'가 높고 빈곤에 대처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이 존재하며, 쪽방촌이 고유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점들을 부각했어요.

하지만 제가 봤을 때는, 그렇게 하면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두둔하고 빈곤을 미화할 여지가 있겠더라고요. 가난한 사람들이 쪽방촌에서도 잘 지낼 수 있다면서 현재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건물주로부터 계속 착취를 당하게 되잖아요. 이곳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도 바꿀 수 없고요. 열악한 공간이 주는 고통과 어려움은 실제로 존재하고, 정부의 도움도 필요하거든요.

연구를 계속 진행하면서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쪽방촌 주민들이 지닌 긍정적인 점을 찾았다면, 이제는 이분들의 고통을 자아내는 외부 플레이어들을 찾는 거죠. 주민들의 가난이 누구의 부와 연결돼 있는지, 이 공간이 누구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지 진범을 쫓는 작업이에요."

알렉산더의 검처럼 매듭을 단번에 풀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탁 씨는 그런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푸는 방식은 오히려 갈등을 심화하고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국가는 판자촌을 도시 빈민의 '불법적 무단 침입'으로 만들어 낸 불량촌으로 명명해 왔고, 그것을 효율적 국가 발전을 위협하는 요소, 따라서 박멸해야 할 공간으로 여겨 왔다. 이를 고려할 때, 광주 대단지 사건(1971)을 비롯하여 목동 투쟁(1984), 사당동 판자촌 투쟁(1985), 상계동 철거 반대 투쟁(1987) 등의 사건에서 무자비한 철거와 불충분한 이주비의 지급으로 20세기 후반 내내 도시 빈민과 마찰을 빚어 왔던 당시 정부의 시각 저변에는 그들을 하대하고 그들에게 빈곤의 책임을 전가하며, 끝내 그들의 공간과 생존 방식을 부정하는 빈곤 문화적 관점이 전제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128쪽)

"지역의 재개발이 임대 수입을 높이려는 건물주의 이윤 확대 추구와 맞물리는 과정에서 쪽방 월세를 세입자들이 감당 불가능할 정도로 대폭 인상하는 임대료 상승형 젠트리피케이션, 혹은 쪽방 건물을 아예 용도 변경하는 주거지 파괴형 젠트리피케이션, 구체적으로는 쪽방의 게스트하우스화나 모텔화까지 심화되면서 결국 정부와 시장 모두에 의하여 세입자인 도시 빈민들이 자신의 터전인 쪽방촌에서 쫓겨나는 현상은 더욱 빈번해질 예정이다." (153쪽)

2019년 옥바라지선교센터 반빈곤 연대 활동에 참가한 탁장한 씨(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상인들과 철거된 노량진수산시장을 돌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2019년 옥바라지선교센터 반빈곤 연대 활동에 참가한 탁장한 씨(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상인들과 철거된 노량진수산시장을 돌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매번 비슷한 설교,
가난을 모르는 교회
"빈민의 현존을 외면하는 곳에 구원은 없다"

쪽방촌을 방문하거나 이곳에 상주하는 단체 중에는 교회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교회는 하나같이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고 찬송을 부르며 사진을 찍고 돌아간다. 설교도 빼놓을 수 없다. 술・담배를 멀리하고 근면・성실하게 살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레퍼토리. 탁장한 씨는 기독교인들의 진심 어린 마음은 알겠지만 이들이 돌아가도 현실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 교회가 봉사하러 많이 오나요?

"교회들이 정말 많이 와요. 많이 오는데 맨날 사진만 찍고 가는 거 같아요. 아이러니한 점은 교회가 구제나 봉사 활동을 하면 주인공이 주민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자신들이 주인공처럼 보여요. 제가 너무 삐딱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분들은 우리 공동체가 이런 사역을 했고 그래서 뿌듯하고 오늘도 하나님나라가 확장됐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러나 문제는 그대로예요.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어요. 잠시나마 위로를 얻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구제나 봉사 활동을 진행할 때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주민들 의견이나 목소리가 전혀 존중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그분들이 바라볼 때 주민들은 늘 고통스럽고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에요. 교회가 낮은 곳으로 내려가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혀 있죠. 이렇게 시혜자와 수혜자 입장이 극명한 가운데 구제 활동이 진행되기 때문에, 주민들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해요. 그런 분위기에선 감사하다는 말만 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앞에서 계속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비가시화한 존재로 전락하는 모습이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 모든 교회가 현장 중심의 연대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물론 모든 교회가 현장 중심으로 어떤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뭐랄까요, 저는 교회가 다시 가난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부유해진 교회로서는 가난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려워 보이거든요.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교회도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이 너무 답답해요. '하나님, 대체 뭐하고 계시냐. 이 사람들 지금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당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 거냐' 하는 기도를 많이 하게 돼요.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다고 하는데, 어째서 무고하고 약한 이들이 매일 똑같은 괴로움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 건지, 무력감이 들 때가 많아요."

탁 씨가 지금 출석하는 교회는 20년 가까이 동자동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교회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그는 답변을 거절했다. 사역자들이 교회가 언론에 드러나 주목을 받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다. 이들은 조용히 주민들과 동고동락하길 원한다고 탁 씨는 말했다.

-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빈민 연구를 계속하겠지만, 지금은 그냥 주민들이 춥고 힘들 때 옆에 같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무언가를 주지 않아도 편하게 마주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 말이에요. 언제든지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하고 힘든 일을 나누는 '사람 대 사람'으로 이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빈민의 현존을 외면하는 곳에 구원은 없다(Extra pauperes nulla salus)."

"제가 좋아하는 한 해방신학자 혼 소브리노(Jon Sobrino)의 말이에요.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편파적인 하나님'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가난한 사람을 편애하고 최우선으로 생각하시는 하나님을요. 가난한 자에게는 복이 있다(눅 6:20)는 말씀처럼, 정말 '가난하다'라는 이유만으로도 하나님나라의 1순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많이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가난한 이들의 죄를 붙잡고 낱낱이 회개하게 만드는 식의 설교는 이제 좀 자제해 주시고요. 이분들은 세상 속에서 가장 멸시받고 천대받고 수많은 사람의 권위에 짓눌려 왔어요. 그런데도 죽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 내고 있잖아요. 많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데, 이런 메시지는 부족한 것 같아요.

주민들 중에는 그런 설교를 듣고 스스로 내면화해서 빈곤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분도 있거든요.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잘못 살아서 그래', '하나님 제대로 안 믿으니까 이렇게 됐지'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세요.

'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교회도 자유롭지 못해요. 이제부터라도 편파적인 하나님을 강조하고,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부자들에게 경고했으면 좋겠어요.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나라 복을 선포하는 동시에, 부자들에게는 '화 있을진저'라고 얘기해 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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