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각지대에 놓인 미등록 이주민을 포함하는 3분기 접종 계획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구체적 매뉴얼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열악한 주거 시설과 정보 소외 등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 코로나19 확진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반면, 정작 이들 중 20%를 차지하는 미등록 이주민의 백신 접종은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주민 활동가들은 이들에게도 실질적인 '백신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미등록 이주민 현실을 고려한 구체적인 접종 지침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질병관리청 코로나19예방접종대응추진단(단장 정은경)은 8월 5일 만 18~49세에게 화이자·모더나 백신 확대 접종을 골자로 하는 '코로나19 예방접종 8~9월 시행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입국 이력 부재 등으로 일반 접종 참여가 어려웠던 미등록 이주민 등에 대한 '맞춤형 접종 대책'도 포함됐다. 3분기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예방접종을 추진하면서, 접종·방역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도 백신 접종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백신 예약 시스템에서 배제돼 온 미등록 이주민도 직접 현장을 방문해 등록할 수 있다. 여권을 지참해 보건소에 방문하면 '임시 관리 번호'를 발급받는다. 이후 정해진 날짜에 따라 직접 방문 또는 전화 ARS로 접종 일시를 예약해야 한다. 얀센 백신 기준으로 8월 23일부터 접종이 시작되며, 본인이 등록한 거주지 내 예방접종 센터에서만 접종이 가능하다. 단, 3개월 미만 단기 체류자는 접종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미등록 이주민의 백신 '접근성'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질병관리청 등 백신 접종 정보를 알리는 공공기관이 한국어·영어를 제외한 다른 외국어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염세진 활동가는 8월 18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 발생 후 1년 6개월 동안 미등록 이주민은 정보에 있어서 계속 뒤처져 왔다. 주사를 맞을 수 있다는 것도 알음알음 아는 상황이다. 접종 관련 정보가 미등록 이주민 언어로 제공되는 경우는 전혀 없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에서 발표한 외국인 코로나 백신 접종 안내도 4개 국어로 번역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시행 지침이 구체적이지 않다고도 했다. 다른 대상자와 달리 미등록 이주민의 경우 접종 대상자 규모나 접종 시기를 안내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호함 때문에 지자체별로 시행 지침을 다르게 해석해 혼란이 야기되기도 한다. 실제 <뉴스앤조이>가 서울시 내 지자체별 보건소·예방접종센터 콜센터 5곳에 연락한 결과, 필수 제출 서류를 다르게 안내하거나 미등록 이주민 접종 여부조차 알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염세진 활동가는 "질병청의 발표는 '8월 중순에 미등록 이주민 백신 접종을 시행하도록 한다'는 문구 단 한 줄이었다.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어디로 가서, 어떻게 맞을 것인지에 대한 방침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았다. 따라서 미등록 이주민 접종 계획을 인지하지 못한 지자체도 많았다. 자율 접종 등 지자체별 상황과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기본적인 매뉴얼을 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명숙 활동가(인권운동네트워크바람)도 8월 1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자체별로 재정적 여유나 인권 지침이 있는지에 따라 사회적 소수자 접종 대책이 다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역할이 뒷받침되고, 질병청의 지침이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접종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무료'라고 해서 동등한 접근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 줄 거니까 순서 기다리라'는 식으로는 안 된다. 코로나 백신 접근권 보장을 위해서는 미등록 이주민 임시 합법화 조치 등 일시적으로라도 차별을 낳는 근본적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등록 이주민 신분을 밝힐 경우 강제 출국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도 여전하다. 법무부는 "코로나19 진단 검사나 방역 조치 과정에서 불법체류 여부를 조회하거나 사업장에 인적 사항을 통보하는 등의 불이익은 없다"고 했지만, 현장은 달랐다. 8월 3일 나주시 보건소에서는 사업주와 동행한 미등록 이주민들이 단속반에 체포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활동가들은 "현재 백신 접수 과정은 연락처·거주지를 밝히고, '직접 신청'만 가능하도록 돼 있다. 이런 절차를 따를 경우 불시 단속·추방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며 별도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민이 위험을 감수하고 백신을 예약한다고 하더라도 사업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염 활동가는 "백신을 맞고 싶어도 사업장에서 시간을 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도 하루 이상 시간을 내서 보건소를 가야 하는데 다들 만만치 않아 한다. 정부와 방역 당국이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시민사회 연대체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는 8월 17일 성명에서 "접종이 가능한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이 감염과 위중증의 위험을 다 떠안고 있다. 집단면역 70%라는 과학적 목표는 30%를 배제해도 좋다는 불평등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취약 집단에 대한 접종 과정 전체를 방역 당국이 직접 책임지고, 접종받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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